서울생각, 평양생각: 5월

0:00 / 0:00

김춘애

5월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온 국민에게 웃음가득 기쁨가득 안겨주는 행복한 달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의 즐거운 모습과 행복한 모습이 빨간 장미꽃과 더불어 활짝 피워 있습니다. 5월은 가정에서의 어린이날부터 시작하여 어버이날. 스승의 날. 또 부부의 날도 있고 석가모니 오시는 날도 있습니다.

어린이날에는 온 나라 어린이들이 웃음기득 기쁨가득 했고 어버이날에는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날이라 카네이션을 들고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 떠나는 차와 사람들로 분비였고 스승의 날에는 제자들이 스승들을 찾아 기념품과 선물을 들고 교정들에서 웃음꽃이 만발했답니다. 또한 21일 부부의 날에는 미운 정. 고운 정. 사랑으로 부부동반 하여 등산으로 여행으로 온 나라를 붐비였습니다. 이런 행복한 사랑이 넘쳐나는 부부들을 보니 은근히 부러웠답니다. 온 지구 땅덩어리는 마치도 우리 대한 민국국민 국민의 것과 같이 행복한 달이 바로 5월 이였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싶네요.

어린이날은 북한에도 있지만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부부의 날이란 말은 제가 고향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날이랍니다. 어버이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여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아들은 어디론가 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안 되여 아들은 아름답고 고운 카네이션을 손에 들고 들어와 저의 가슴에 달아 주었습니다.

전날 밤늦게 까지 알바를 하다 보니 시간이 맞지 않아 미리 구입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어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축하해 준다는 말까지 하여 저는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아들의 사랑이 담긴 꽃을 가슴에 달고 하루를 보내는 저의 마음은 뿌듯하였습니다. 저녁에는 시집간 큰딸과 사위가 꽃을 들고 왔고 용 채 돈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으며 아들은제 손으로 직접 선물을 마련해 선생님을 찾아 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였습니다.

저는 또한 석가모니 오신 날을 맞으며 지난 주말 절을 찾았습니다. 절을 찾은 저는 서툰 동작으로 절을 하며 건강한 손녀 손자가 태여 나게 달라는 것과 자식들의 건강과 가족의 영원한 행복과 저의 건강을 빌고 또 빌었답니다. 속이 다 후련한 것처럼 개운했습니다. 저는 절을 내려오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나간 5월에 있었던 즐겁고 재미있었던 일들과 내 고향 평양에서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였습니다.

태양절이면 온 나라 인민들이 만수대 동상으로 꽃을 드려야만하고 그것도 꼭꼭 당 조직에 보고 해야 하던 일들. 꽃이 없어 애간장을 태우던 일들. 결혼식 날에만 달아 볼 수 있었던 꽃송이. 이곳 남한에 온 저는 오늘 날 제 가슴에 아름답고 고운 꽃을 달게 될 줄이야. 소박한 한가정주부인 제가. 자식밖에 모르는 이름도 없는 제가 앞가슴에 꽃을 달고 자식들과 세상에 부럼 없이 행복가득 웃음 가득 안고 산다고 생각을 하니 진정 눈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생활이 저 하나만이 아니 랍니다. 이곳 남한에 온 우리 탈북자들의 생활이 다 그러 하답니다. 평양에서 아무리 잘 산다는 고위급장관들의 생활보다 저는 더 잘살고 있다고 큰 소리로 자랑하고 싶습니다. 고기에 이밥은 물론이고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외국이면 외국 그 어디든 마음대로 자유롭게 여행도 할 수 있고 술과 고기 맥주도 마음대로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즐거운 인생을 마음껏 누리며 살수가 있습니다. 어린이 날이든 스승의 날이든 어버이 날이든 부부의 날이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부부 호상 간 서로 사랑한다는 말들도 자유롭게 부담 없이 표현도 하고 선물도 한껏 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북한에서는 우리와 같은 일반 주민들은 선물이라는 단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차창을 내다보며 고향의 주민들을 그려 보았고 고향의 형제들을 그려 보았습니다. 또한 5월은 가장 뜻 깊은 역사에 기록할 수 있는 달이였습니다. 분단된 60년 긴긴 세월 멍들고 막혔던 가슴을 열어 주었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를 상징하는 통일 열차 개막식이 있었습니다.

언제이면 남과 북의 주민들이 통일 열차를 타고 자유로 히 고향을 다녀 갈수 있게 될까? 저도 언제이면 저차를 타고 평양에 가 볼 수 있을까. 그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금강산과 개성으로 달려가는 기차를 보면서 고향에 있는 형제들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좋아라 춤을 추는 모습을 영화의 화면처럼 그려 보았습니다.

내 고향 평양으로 통일 열차는 달려갑니다. 열차에 몸을 싣고 그리운 부모 형제가 있는 내 고향 평양으로 갑니다, 그날은 과연 내년 빨간 장미꽃이 피는 이맘때일까?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