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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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이 왔습니다. 저는 매일 주말을 기다리다 보면 시간과 세월이 무척 더디게 흘러가는 것을 느낍니다. 평일에는 아이들이 모두 아침에 출근하였다가 저녁 늦게야 집으로 오지, 그저 아이들에게는 집이 숙박소나 매한가지이고, 그러다 보니 저에게는 말동무가 없답니다. 하여 저는 은근히 주말이 빨리 왔으면 하고 기다립니다.

또 주말이 되어야 친구들과 많은 시간 동안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해먹고, 또 아이들과 친구들과도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과 행복한 시간을 마음껏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말에도 저는 이런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 아이들과 영화구경을 하기로 하고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영등포 전철역에 있는 롯데백화점 8층에 있는 영화관을 찾아 갔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들은 승강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간 순간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20대, 30대의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영화관이 얼마나 좋았던지. 헌데 나이 많은 사람은 저 혼자뿐인 것 같았습니다. 몇 번 갔던 적이 있는 아들은 부지런히 매표소에 가 입장권을 샀습니다.

매표소에서도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아가지고 좋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면 일어나 표를 살 수가 있었습니다. 표 파는 아가씨들도 얼마나 상냥한지 웃으면서 맞아주었고, 6곳에서 표를 팔다보니 기다리는 사람들이 없이 금방금방 표를 구입할 수가 있었습니다. 영화 제목은 ‘미녀는 괴로워’ 라는 것이었습니다. 영화관도 8개나 있어서 시간과 제목에 구애됨이 없이 본인이 원하는 대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실내 장치를 비롯해 모든 조건들이 내 고향인 평양에 있는 영화관, 극장에 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주말이라 가족들이 많이 왔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행복이 가득 하였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옛 고향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 고향 평양에도 대극장과 평양 예술극장과 만수대 예술극장을 비롯해 극장과 영화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극장은 해마다 계속 진행하는 '피바다,' '꽃 파는 처녀,' '한자위단의 운명,' '백두산의 밀영,' '밀림아 이야기 하라,' 등의 5대극을 공연합니다. 그러나 관람하는 사람들이 얼마 모이지 않아 관람객 조직하는 등 강제성을 띠다시피 한답니다.

또한 영화관들은 매 구역마다 한 개씩 있지만 학교나 직장별로, 또 가두에서 조직하여 집단적으로 관람 조직을 합니다. 그러나 대동문 영화관이나 보통강 영화관. 그리고 개선문 영화관들은 1호관과 2호관이 있고 또 이 영화관들에서는 외국영화를 주로 하기 때문에 많은 젊은 청춘남녀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영화표 사기가 하늘에 별 따기로 평양시내에 소문이 났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 애들 아빠와 몇 번 보통강 영화관으로 외국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영화표는 쉽게 구입을 할 수가 있어 갔었는데 줄을 서서 입장하는 도중에 손에 들고 있던 영화표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빼앗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표를 안내원에게 주려는 순간 쇠줄 밖에 있던 손님이 덮쳐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먼저 들어간 저는 안내원에게 아무리 사정을 해도 승인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안내원이 뻔히 다 알기 때문에 응당 승인을 하여 들여 놓을 줄로 알았건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일 재미있는 인도 영화를 볼 수가 없어 애들 아빠에게 불평불만을 부리며 집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평양에는 극장과 영화관들이 많아 인민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가 있지만 지방의 리 소재지들에는 영화관이 없어 한 달에 2번 정도 나무를 세워 백포를 치고 영화 기사들이 필림을 싣고 찾아가 캄캄한 밤이 되면 돌려주는 방법으로 문화.정서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이런 방법들이 여기 남한에서는 해방 직후나 전쟁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저는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저는 남한의 행복한 생활 속의 사소한 것을 경험하면서 자주 내 고향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심한 하늘과 땅 차이를 어찌 비교하지 않을 수가 있답니까?

오늘도 내 고향 주민들의 문화정서 생활에 대해 많은 궁금한 점을 가지고 언제이면 그들도 편하고 자유로운 영화 관람을 통해 조선 사람들의 고유한 문화를 알게 될 수 있을지,,또 예술을 통해 세계문화를 알게 될 수 있을지. 통일된 광장에서 남북의 청년들이 모여 하나된 조국의 예술영화를 관람하게 될 그날을 항상 기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