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이곳 남한에 와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를 했습니다. 대통령 탄핵되는 것도 보았고 국회의원 선거도 두 번 참가 했습니다만 대통령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참가 하는 대통령선거라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좋고 정중한 옷을 골라 입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선거장으로 갔습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장인데도 너무도 조용해 오히려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제가 잘못 오지나 않았는지.......하고 말입니다. 슬그머니 선거장을 들여다보니 분명 선거장은 선거장이었습니다. 저는 대통령 선거투표 안내문에 동봉돼서 집으로 온 선거명부 등재 번호가 적힌 쪽지와 신분증을 보이고 투표쪽지를 받았습니다.
사방이 천막으로 가려진 책상으로 가서 제가 지지하는 후보자 이름에 도장을 꾸욱 찍고는 이걸 세 번 접어 선거함에 넣었습니다.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나도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서 이 나라 대통령도 뽑을 수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투표를 끝내고 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내 고향 평양에서는 지방대의원 선거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합니다. 원칙적으로 누구나 선거권이 있고 선거 받을 권리를 가질 수 있었지만 강제적이었고 무조건적인 선거였습니다.
선거 몇 달 전부터 학생들이 가창 대를 돌고 100%참가 100%찬성 투표하자 라는 구호와 노래들을 불러야 했고 선거 당일 날에는 누가 먼저 선거장에 나왔는가? 누가 선거장의 분위기와 흥을 조성하는가? 가 중요했습니다. 인민반장이 장악과 통제를 하며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제일 먼저 투표를 하기위해 새벽부터 나와 줄을 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선거위원들은 이동 선거함을 가지고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과 노인들을 찾아 다녀야 했습니다. 반대는 생각은 할 수가 없고 선거에 나온 대의원에 인민들이 좋든 실든 무조건 찬성투표를 해야 했습니다. 이런 북한 선거는 100%참가 100%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오고 한번 대의원이 되면 영원한 대의원이 되고 한번 대통령이 되면 영원한 대통령이 됩니다.
지난8월, 저는 이런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한의 이번 선거엔 98% 참가, 100%찬성 투표 라구요. 전체가 다 참가해야 하는 북한 선거에 도대체 2%는 어디로 갔나 궁금했습니다. 저는 아마 40만 명의 탈북자들이 세계 각 곳에서 유랑한다는 사실이 세계에서 인정되기 때문에 북한 당국도 인정하고 그런 발표를 하지 않았을까하고 짐작을 했습니다.
제가 중국에 있던 1998년 7월, 북한에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때 먹고 살기 위해 중국에 있던 탈북자들은 선거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가야 했습니다. 몇몇은 강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경비가 너무도 살벌해 차마 두만강을 건너지는 못하고 두만강 연선에서 고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조였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그때 연길에서 화룡 용연으로 갔습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한분이 선거에 참가 못하면 3대 역적이 되는데... 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는 막내아들이 걱정이 되어 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1999년에 북한으로 재북송 되었을 때 1998년 선거에 참가 했었는가하고, 보위부 종합지도원이 심문했고 저는 참가 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투표소를 나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길에서 탈북자 친구를 만났습니다. 금방 투표를 하고 나온다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마음대로 늦잠을 자고 나와 투표를 해도 누가 통제를 하나 마음대로 내 좋은 사람을 투표해도 누가 감시를 하는 사람이 있나... 선거장에 새벽부터 나와 바가지 북 두드리라는 사람이 있나 줄을 서는 사람이 있나... 이게 바로 민주주의 나라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면서 다음에는 나도 한번 대통령후보자로 나갈 것이라며 농담을 하곤 우리는 마을 주변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처음으로 참가하는 대통령선거에 저는 11명이나 되는 후보자를 놓고 망설였습니다. 이분은 이런 면에서 국민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이분은 이런 면에서 저 분보다 국민들에게 더 큰 선물을 안겨 줄 듯했고 저분은 얼굴도 참 생기고 이분은 엄하게 생겼으니 누구를 투표해야 우리 국민들을 더 잘살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이런 고민 끝에 저도 한 표를 던졌고 제 손으로 이 나라 대통령을 뽑았다는 자긍심을 가졌습니다. 이런 자긍심, 내 고향 주민들도 함께 누리길 바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