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은 2006년 중 제일 분주하고 바쁜 달이면서도 참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들이 제일 많은 달이었습니다. 12월25일 크리스마스 행사를 비롯한 송년회 등 단체 모임에 이틀이 멀다하게 참석을 하게 되어 정말 시간과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습니다.
어느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단체 송년회에 은희 엄마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탈북자는 단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복분자라는 술에 오리고기 구이를 하였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2차로 화면반주음악을 하는 노래방으로 갔었습니다. 노래 기계를 틀어 놓자 마치도 기다린 듯이 너도나도 나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었습니다. 단체의 최고 책임자인 총재님과 본부장님도 노래를 불렀고, 다른 많은 분들도 노래를 불렀는데 참 남한 분 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저와 은희 엄마는 그저 '야! 야 !'하고 감탄만 하였었습니다. 드디어 은희 엄마 차례가 되었고 저는 그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습니다. 모든 분들은 우리들의 노래와 춤에 홀딱 반하는 듯하였고 함께 춤을 추었으면 하고 요청도 들어 왔었습니다.
정말 나이들도 있고 뜻이 있고 직업 때문 인지 모두가 점잖고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나이에 걸맞게 두만강 푸른 물에 대한 노래와 고향에 대한 노래 그리고 칠갑산을 비롯한 뜻이 있는 노래들을 불렀는데 정말 고향 생각을 저는 많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그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건강하고 잘 살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고무해 주었습니다. 은희 엄마는 저를 보고 좋은 분들과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부럽다고 하면서 자기도 남을 사랑하고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며 회원등록을 하였습니다.
저와 은희 엄마는 송연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향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였고 은희 엄마는 고향인 무산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였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연말이 되어 송년준비를 위하여 매 사람 당 쌀 500그람과 돈 20원을 모았었습니다. 세포별로 떡도 하고 술과 고기도 사고 당과류도 사서 모든 준비를 하였는데 당 조직으로부터 식량 탐오 양비와 관련하여 일체 송년회를 하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이미 다 준비한 것이라 세포에서는 31일 행사를 끝내고 어느 한 종업원집에 가 조용히 놀았습니다. 북한에는 노래방도 없고 노래기계가 없었기에 그저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기분들이 좋아 젓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1월1일 명절을 쉬고 3일 날 새해 첫 출근을 하였는데 벌써 당 비서는 알고 세포비서를 불러 추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세포비서는 분기당 생활총화와 직당 공개 당 총회에서 강한 비판을 받고 세포비서 직책에서 해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북한에서는 가정에서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술 놀이도 자주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입 지출에 대하여 항상 인민반 반장들이 감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여 저와 은희 엄마는 우리의 천국 같은 생활에 대하여 자랑을 하며 집으로 돌아 왔었습니다. 또 한번은 이런 행사에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현대미술협회 문화의 밤이라는 행사였는데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다채로운 큰 행사였습니다. 2만 명의 회원들이 참석을 하였는데 왕 종근 이라는 KBS아나운서와 김 종수 개그맨이 직접 사회를 했고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 명박 전 서울시장도 참석을 했으며, 가수 등 연예인들이 나와 노래도 불렀으며 서양식 음식도 있었습니다. 정말 남한의 유명한 많은 분들을 만나도 보았고 그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도 하면서 저는 남한의 미술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12월에 뜻이 깊은 많은 행사들에 초청받아 참가하였고, 또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저의 인생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남한생활은 가면 갈수록,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들을 쌓아가게 하고 있어 저에게 있어서 커다란 재산으로 남게 됩니다. 이런 값비싼 재산을 저는 통일이 되면 고향의 형제들과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겠습니다. 하여 저는 항상 통일된 그날에 대해 꿈을 꾼답니다.
언제이면 내 고향 사람들도 우리 남한 사람들처럼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될까. 항상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