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출퇴근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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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잠에서 깨여난 저는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뽀얀 안개 속에 잠긴 서울의 아침거리를 아파트의 높은 곳에서 한참이나 내려다보았습니다. 교통경찰관들이 호각을 불며 일찍 출근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차를 지휘하느라 분주하였고 그 속에는 나이 많은 분들이 노란 줄을 어깨에 두르고 건늠길(건널목) 앞에 마주 서서 어린이들과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노란 기발을 들었다 내렸다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네 거리에 줄지어 서있는 많은 차들과 빈차로 줄 지어운행하고 있는 버스들을 한참동안 내려다보며 지난날 고향에서 출근을 위해 버스를 남보다 먼저 타겠노라고 밀고 닥치며 하는 모습이 환각처럼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직장 출근이 늦으면 당 생활 총화나 여맹 생활총화에서 비판받는 것이 두려워 또는 3번지각하면 식량공급표 하루씩 짤리면 어떻게 하나하는 근심으로 달리는 궤도 전차 문 잡이를 잡고 한 정류소 두 정류소의 거리는 보통이였습니다. 그리고 달리다가 손에 맥이 없어 떨어져 차바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 출 퇴근시간에 차사고로 사망하는 사실도 있습니다.

저는 항상 2시간이나 넘게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남편 때문에 은근한 걱정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저녁에 시간만 조금 늦어도 혹시나 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때도 몇 번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민 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항상 건늠길을 건너져야 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주부들에게는 눈 코 뜰 새 없이 제일 바쁜 시간이 아침 출근시간입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발을 움직일 수없이 많지, 잔등에 업힌 아이는 자꾸 울지 손에 잡힌 큰애는 사람들에 밟혀 울지. 애기 엄마의 얼굴에는 땀이 철철 흐르지. 직장에 도착해 탁아소에 들어가면 큰 한숨을 쉬는 것이 하루 첫 일과랍니다.

저녁에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집에 갈 걱정이 태산 같이 느껴집니다. 이곳 남한은 출근시간이나 퇴근시간에 자가용차들이 너무 많아 도로가 꽉 막혀 답답할 때가 많고 유치원이나 탁아소어린이들은 유치원차가 마을마다 아파트 단지마다 있으며 학원 차들이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실어가고 실어오나. 제 고향 평양은 버스가 많이 부족하다 보니 운행도 제시간간격으로 하지 못합니다. 이것도 또 하나의 평양과 이곳 서울의 차이 점입니다.

북한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콩비지 가마는 정신없이 넘어나지. 잔등에 업힌 아이는 젓 달라 울어 대지. 오줌은 마렵지. 어느 것부터 해결해야 되는가요. 가정에서 항상 콩당 콩당 뛰며 바쁘게 생활하는 우리여성들을 빈잔하여 나온 말인 듯도 합니다. 버스나 열차 그리고 지하전동차에도 이곳 남한에서처럼 애기 엄마와 노인자리가 따로 있으나 버스가 제시간 간격으로 운행을 하지 못하다 보니 이런 도덕적인 규정도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답니다.

바쁜 출근 시간에 남 생각할 여유도 없고 옆 사람 얼굴도 돌아 볼 빈틈도 없습니다. 하염없이 밖을 내려다보며 이런 환상 속에 잠겨있는데 아들이 옆에 서서 엄마는 아침에 누구를 바라보는가. 고 물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많은 차들을 보니 고향 생각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아침에 아이들의 출근 준 비를 한다고 해도 저는 한일이 없습니다.

한달 치고 아침밥을 먹는 날이란 다섯 손가락에 겨우 꼽힐 정도이니까요. 주부인 저로서는 너무도 할일이 없어 아침이면 건강을 위해 약간한 운동을 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고향의주부들은 아마 이곳 남한의 주부들이 한가하게 아침운동과 저녁 운동을 한다고 하면 이해를 잘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쁜 아침시간에 저 같은 가정주부가 무슨 운동인가하고 말입니다. 오후 11시 쯤 되니 보얗던 안개도 어느덧 사라지고 따스한 봄날 그대로였습니다. 회사의 동료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돌아오는 주말이면 쑥 나물을 뜯자는 둥 냉이를 뜯으러 가자는 둥 수다를 떨었습니다.

북한이나 이곳 남한이나 봄을 제일먼저 알리고 좋아하는 것은 역시 주부 들입니다. 이렇게 저는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첫 일과로부터 저녁 잠자리에 누울 때 까지 하루 24시간 행복과 즐거운 생활 속에서도 잠 간 잠간 고향 생각이 영화의 화면처럼 안겨 옵니다. 지난 고향 생활이 아무리 척박하고 고달 푼 생활이었지만 그 속에서의 즐거움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저녁퇴근시간에 버스타기가 힘들 때이면 대동강 유보도를 걸으며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여자이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해보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세월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향이 그립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0년 동안 몰라보게 변한 고향에 단 한번 이라도 가보고 싶습니다. 통일된 평양의 거리로 은빛 색 자가용차를 타고 일주 하고 싶습니다. 승용차 운전대를 잡고 즐거움과 행복에 만취되어 있는 저의 모습을 그려보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