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즐거운 송년회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09.12.16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12월이라 단체 마다 또는 친목회와 회사들에서 요즘 송년회가 한창입니다.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단체들에서도 송년회에 참가해 달라는 초청장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저는 북한인권시민연합 단체의 사무국장 초청을 받아 3명의 동료들과 함께 송년회에 참가했습니다.

저녁 회사 업무를 마치고 전철을 타고 수다를 떨며 송년회 장소인 서대문역으로 갔습니다.송년회를 주관한 단체 관계자는 인사말과 함께 단체 총회 사업과 한 해 동안의 활동 소식을 소개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과 대학생들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송년회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이름있는 가수가 와서 기타와 하모니카 선율에 맞춰 노래를 불러 더욱 흥이 났습니다. 젊은이들은 ‘와와!’ 소리까지 지르며 환호했습니다.

문제에 빨리 답변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순서도 마련됐습니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시가 평안남도에 소속되었는가’ 하는 문제가 나왔을 때 저는 평양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답변은 그냥 자리에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식탁에 앉은 사람 중에 자기 마음에 드는 이성의 손목을 잡고 나오라는 주문이 나왔습니다. 저는 날쌔게 옆에 앉은 청년의 손을 잡고 달려나갔습니다.

하지만, 달려 나가는 순간까지도 저는 그 청년의 얼굴 생김새를 잘 몰랐습니다. 송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무대에 서서야 비로소 그 청년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잘 생겼고, 키는 저의 두 배나 되는 듯 했습니다.

‘왜 이 청년과 함께 나왔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저는 50살이 넘었지만 마음은 28청춘이라고 말해 모든 사람들이 웃었습니다. 저는 평양시는 평안남도가 아니라 특별시라고 말하며 평양이 제 고향이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순간 터져 나온 큰 박수 소리는 마치 격려의 박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큰 웃음을 선사한 저는 1등을 하게 됐고 큰 상품까지 받았습니다.

즐거운 송년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수다를 떨면서 ‘우리가 북한에 있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오늘처럼 이런 즐거운 송년회를 보낼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아파트들에서 새어 나오는 환한 불빛은 가족들의 웃음소리인양 행복해 보였습니다.

북한에서도 지금쯤이면 송년회가 열립니다. 하지만, 남한의 송년회 모습과는 너무 다릅니다.

송년회가 있어도 술 한 잔 자유롭게 마실 수 없었고, 더구나 여자들이 술을 마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 사람당 돈과 쌀을 거두어서 작업반별로 조직별로 망년회를 하던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가정주부들은 망년회라는 것을 누가 내 놓았는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습니다. 남편들 월급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이것저것 제하는 것이 많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설도 다가오는데 식량도 부족하고, 더구나 지금은 화폐 교환으로 장마당에서는 쌀과 강냉이 값이 껑충 뛰어올랐다고 하니 북한 주민들이 얼마나 고달플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희망 없는 새해를 맞을 고향 주민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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