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집들이

김춘애∙ 탈북 방송인
201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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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장지동 '위례신도시 송파 푸르지오'에서 이사대행업체 관계자들이 짐을 나르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위례신도시 송파 푸르지오'에서 이사대행업체 관계자들이 짐을 나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은 아들의 새집들이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주 모이는 가족이지만 이날만은 다른 때보다 더 의미와 보람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 아들의 마음은 여느 때 없이 마냥 들떠 있답니다. 왜냐구요?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아마도 이해하기 조금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달 아들은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20평에서 34평으로, 비록 내 집이 아니라 전세이기는 하지만 아들 이름으로 계약했거든요. 딸들도 사위들도 제 가끔 집들이 선물을 전해 주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새집은 햇볕도 잘 들어오고 너무도 아늑해서 이미 오랜 세월 내가 살아온 듯한 내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베란다에는 벌써 며느리가 심어 놓은 파가 파릇파릇 마치 봄인 양 자라고 있었습니다.

집들이를 한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저 역시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아들의 새집들이에 무슨 선물을 해줄까, 뭐를 해주어야 더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 끝에 냉장고를 하나 구입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리 아들 집을 방문한 저는 며느리와 함께 전자 제품가게에 들려 새로 나오는 신식으로 근사한 냉장고를 구입해 배달해 주었습니다.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곱씹어 하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저는 인제는 아들도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하게 되었습니다.

12살 어린 아들, 한창 엄마의 품속에서 어리광을 부려야 할 어린 아들을 고향에 남겨 두고 고향을 떠났던 지나간 세월은 저에게는 씻을 수 없는 비극이었으며 야속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아들이 19살 되어서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19살 청년으로 한창 자라나야 할 나이었건만 12살 때의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피지 못해 있는 아들의 모습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곳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저는 아들에게 진 빚을 갚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 주고 싶었고 새로운 것이 있으면 아들부터 챙겨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엄마의 심정이었습니다만 이 엄마의 깊은 심정을 모르는 딸한테 "엄마는 그저 아들밖에 모른다"고 투정하는 말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까지도 이곳 대한민국 엄마들은 누구나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있는 ‘아들 사랑해’라는 말을 쑥스러워 한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에게 자주 사랑한단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다 자란 아들 앞이라 아무래도 쑥스러웠거든요.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에게 아들은 소중하고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내 아들이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또 집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손자 녀석이 숯불에 구운 소고기를 할미의 입에 넣어 주며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보입니다. 남편은 우리 가족들에게 서비스 봉사를 잘해 주는 음식점 서빙 아줌마에게 팁을 줍니다. 손자 녀석들도 서로서로 작은 손을 내밀며 팁을 달라고 해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웃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면서 아들은 고향에서의 지나간 가슴 아팠던 얘기를 합니다. 없어진 엄마를 하루하루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죄 없는 아빠마저 감옥으로 가고 철없는 내가 집을 관리 못한다고 북한 당국에서는 집을 빼앗아 남에게 입사 시켰을 때 며칠동안 그 집 문 앞을 떠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금방이라도 누나와 엄마가 찾아 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부모 잃고 가족 잃고 집까지 잃고 보니 막막했던 그 때엔 정말 앞이 보이지 않고 설움마저 없어졌고 그저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겨울에도 비가 내리는 장마철에도 갈 곳이 없어 평양역 대합실에 들어갔다가 관리원들에게 쫓겨났고 온몸에 비닐을 감고 대성산 유원지나 만경대 공원에서 뜬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은 뭔가에 얻어맞은 듯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짠해졌고 나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왔습니다.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된 이 엄마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부모 없는 설움. 집 없는 설움. 춥고 배고픈 설움. 모든 것이 부족한 설움. 설움이란 설움을 어린 철부지가 다 안고 살아온 내 아들의 어린 추억. 다른 집 애들처럼 부모와 가족의 품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행복하고 즐거웠던 추억 대신 이 세상 설움이란 설움을 다가지고 살아온 내 아들의 가슴 아픈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하니 엄마로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아들이기에 비록 전세집이지만 오늘 제 이름 석자 적힌 집을 갖게 되니 마냥 행복해 합니다. 아들의 목표는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해서 제집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엄마로서 부모로서 응원합니다.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꼭 실현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언제인가는 꼭 그 목표를 실현하리라고 엄마인 나는 아들을 굳게 믿습니다.

많이 늦은 감은 있지만, 또 아직도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제라도 말해봅니다. ‘아들아! 사랑한다.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고 하는 일에서 꼭 성공을 바란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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