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헤어진 가족 찾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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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애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남한의 KBS 텔레비전은 헤어진 가족 찾기 프로그램인 ‘TV는 사랑을 싣고’를 방송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시청합니다. 60년대 가난 때문에 헤어졌던 가족을 찾아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받으며 쓰라린 지난날의 추억을 통해 더욱 뜨거운 사랑과 행복을 기약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의 지난 생활을 돌이켜봅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도 저는 텔레비전 앞에서 모녀가 상봉하는 장면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데 아들이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그때서야 아들이 집에 들어온 것을 알았습니다.

말 수가 적은 아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볼 때마다 텔레비전을 끄곤 합니다.

지난주 방송에 나왔던 주인공은 70년대 가난한 살림 때문에 돈벌이를 하기 위해 사랑하는 세 자녀를 시부모에게 맡기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 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가족을 찾지 못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책감으로 많은 마음 고생을 하며 살아오다가 ‘TV는 사랑을 싣고’ 라는 프로그램이 나오자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KBS 방송 PD들의 고생 끝에 이루어지는 모녀의 감격적인 상봉을 보면서 자식과 헤어져 살면서 숯덩이가 됐을 그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고난의 행군시기인 1997년 8월에 사랑하는 아이들과 헤어져 6년이란 세월을 눈물로 보냈고, 잃은 아이들 때문에 눈물이 마르고 말문이 막혀버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12살 어린 아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큰 딸을 찾아 중국으로 넘어가 작은 딸까지 인신매매 조직인 조선족들에게 빼앗겼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생 끝에 2개월 만에 16살 딸 소식을 알았고 다시 중국돈 (인민페)4000원을 주고 딸을 찾아왔을 때, 다시는 죽어도 헤어지지 말자고 손을 잡고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딸과 함께 북한에 북송 됐을 때 저는 제가 살아야 세 아이들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딸을 단련대에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 땅에서 광고를 내 6년만에 큰딸을 찾았고, 헤어질 당시 12살이었던 아들을 19살이 돼서야 찾았을 때, 저는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도 흐르는 두만강 물 만큼이나 눈물을 흘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제 고향인 평양에는 1996년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공급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기약없는 약속을 남긴 채 사랑하는 아이들과 남편과 헤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와 하루아침에 헤어져서, 학교 갈 나이지만 길거리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며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기차역이나 장마당 유원지들에서 헤매고, 구린내 나는 하수도나 다리 밑에서 사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 달라고 평양시내 이집 저집을 전전하는 아이들도 있고 구호소에서 배고프다며 밥 달라고 울다가 지쳐 쓰러져 죽어가는 아이들도 하루에 몇 명씩 됩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자식들과 헤어져 헤매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어디에서 시체가 발견됐다고 하면 제 자식이 아닌가 해서 달려가는 부모들도 있고, 혹시나 죽지 않았으면 중국으로 갔을까 해서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문을 열어 놓고 지내는 부모들도 많고,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언제 통일이 돼서 북한 사람들도 이곳 남한 국민들처럼 과거에 가난 때문에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감격스런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며칠전 저는 저와 같은 탈북자 한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그 분도 북한에서 사랑하는 마누라와 사랑하는 딸과 헤어진 뒤 서로 죽은 줄로 알았는데 12년 만에 이곳 남한에서 만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8살이었던 딸 아이가 아빠를 못알아 봐서 그분은 너무 가슴이 아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오늘도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중국에서 우리의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헤어진 가족과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그들 모습이 눈앞에 보이듯 합니다.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