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또 한주가 지나고 주말. 쉬는 토요일이라 저는 수산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주말이 되면 저는 은근히 걱정거리가 하나 늘어납니다. 주말 부부로 남편 식탁에 올려놓을 찬거리 때문입니다.
일주일 동안 공장에서 고생한 남편을 위해 비싼 고기나 생선을 올려놓을 수 있으면 좋지만, 주부인 저는 싸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차리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집에서 좀 떨어져 있는 도매 시장도 가보고 하는 겁니다.
마침, 수산 시장에서 물 좋은 숭어를 찾았는데 가격도 적당해서 저녁에는 숭어 매운탕을 끓이기로 했습니다. 매운탕에 조갯살 볶음, 돼지고기 장조림, 김치를 차려 놓고 막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손전화기에 문자가 달랑 날아 왔습니다. 친구가 보내온 문자였는데, 심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상에 수저를 한 개 더 올려놓으며 친구에게 저녁 먹으러 오라고 답전을 보냈습니다. 친구의 집은 저의 집 근처라 10분도 안 되어 달려 왔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남편은 숭어탕을 이곳 한국에 와 처음 먹어 본다면서 아주 맛있다고 칭찬이었는데, 친구도 덩달아 언니는 못하는 것 없이 다 잘 한다며 과분한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는 은근히 좋아 하면서도 자기 마누라 자랑하는 것은 3가지 머저리 중 하나라고 남편에게 핀잔을 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우리 마누라는 딱따구리' 이러는 것이었습니다.
딱따구리라는 말이 어떤 의미에서 하는 말인 가고 저는 따져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조건 좋은 말이라며 웃기만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제게 '짠순이'라는 얘기 하고 싶은데, 이렇게 돌려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짠순이 맞습니다.
저는 이곳 남한에 와 살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기 위한 노하우, 저만의 비법을 하나 찾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 사회이며 친척도 아는 사람도 한명 없는 이곳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한 발도 내딛을 수 없고 또 돈이 있어야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탈북자들은 절약하고 또 절약하는 것이 큰 재산이라고 믿고 이곳 남한에 온 첫날부터 돈을 모으고 사는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한 달 수입이 많든 적든 그저 은행에 다만 얼마라도 꼭 꼭 저축을 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저축 생활 관념을 교육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아무리 돈을 저축하고 싶어도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여기처럼 통장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남쪽에서 와는 저는 여러 개의 통장을 만들어서 돈을 관리합니다. 한 달 수입에서 남편이 쓰게 될 용돈은 따로 통장에 넣어주고 살림살이에 쓰게 되는 돈은 또 다른 통장에 넣고 쓰고 그 달에 남으면 다시 다른 통장에 옮겨 저축합니다. 이렇게 되면 매달 통장에 모이는 돈의 액수가 직접 보이니, 돈을 헛되게 쓸 수 없고 자연스럽게 짠순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남편에게 짠순이란 말을 못하겠으니 딱따구리라고 하지 않는 가고 따져 물었지만 남편은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자나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는 숭어탕 하면 잊지 못할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작은 딸 임신으로 입덧이 너무 심해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중에 대동교를 건너 숭어국 집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갑자기 숭어국 냄새가 코를 찌르며 먹고 싶은 충동이 생겨 줄을 섰습니다. 2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표 한 장을 얻게 되어 맛있게 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그 숭어국 한 그릇 먹겠다고 모든 만사를 제쳐 놓고 길 가던 도중에 2시간 이 지나도록 줄을 서서 많은 사람들과 씨름을 해 가며 표를 구입했던 그 모습이 지금에 생각하면 불쌍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 배 속에 들었던 둘째 딸이 벌써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해서 내년이면 아이를 낳습니다. 작은 딸이 숭어탕을 먹고 싶다고 하면 당장 한 그릇 잘 끓여다 줄 수 있겠는데, 작은 딸의 입덧 중에 뭐가 먹고 싶다는 얘기는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런 기억 때문에 과일을 한 개 사다줘도 아주 예쁘고 잘 생긴 것으로 사다 나릅니다.
얼큰한 숭어탕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생각과 얘기 속에서 주말 저녁 시간이 끝나갑니다. 월요일이 되서 남편은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고 저는 다시 돌아오는 주말 찬거리가 걱정입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것이 올라와야 지난 주 만큼 따뜻한 저녁상이 되겠는지... 이런 소소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오늘이 너무 감사하고 또 감사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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