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각, 평양생각: 유쾌한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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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산에는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짝 피였고 마을마다 길거리는 노란 매화꽃이 활짝 피어 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남한 국회의사당 근처의 여의도 공원에서는 봄 꽃 축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물결치듯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저는 한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봄꽃 축제 꽃놀이 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 아침 일찍 집집마다 장소와 시간을 알리였습니다. 신정 네거리 전철역에서 오전10시에 만나 여의 나루 역으로 갔습니다. 영철이 엄마와 아빠. 철남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노원에 사는 친구와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영철이 아빠는 큰 사진기를 메고 나왔는데 제법 기자 냄새를 풍기였습니다.

여의도에 도착한 일행은 봄 꽃 축제 입구에 높이 세워놓은 꽃 탑에서 사진을 찍었고 꽃물결처럼 흘러가는 군중 속에 섞여 봄 꽃구경에 취하였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우리는 다시 순 복음 교회 쪽으로 방향을 돌려 먹을 것도 파는 상점을 찾아 갔습니다. 저마다 자기 먹을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는 깡통맥주를 몇 개 들고 나왔고 영철이 아빠는 김밥 4개와 영철이 엄마는 맥주 안주 감을 몇 개 들고 나왔고 철남 아빠는 떡 두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결산은 노원에 있는 친구가 한턱을 쏜다면서 계산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공원놀이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시원한 봄바람이 부는 한 강가에서 우리 일행은 간단한 식사와 맥주를 하였습니다.

세 시간 정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즐겼습니다. 오후4시 되여 일행은 다시 벚꽃구경을 위해 국회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벗 꽃나무를 안고 사진도 찍었고 어린이들의 놀이 기구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벚꽃 속에 들어가 찍기도 하였습니다. 영철이 엄마는 벚꽃 나무에 올라 앉아 사진을 찍어 많은 사람들을 웃기었습니다.

해마다 봄 꽃 축제 기간에는 국회의사당 마당에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들어 갈수가 있답니다. 의사당 마당으로 들어간 우리 일행은 의사당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런 즐거운 하루를 보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치도 북한에서 태양절을 맞는 기분인 것 같다고 말입니다. 마치도 대동강 유보도에서 행복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기분인 듯하였습니다.

한강에서 다른 아이들과 보트를 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저는 이런 추억을 하였습니다. 평양에서 살던 그 시절 저는 해마다 태양절이면 김밥과 떡을 해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대동강 유보도에 나가 즐거운 하루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무섭다고 우는 아이들과 함께 보트도 탔습니다. 그때 저는 그래도 철없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봄이면 만경대 유희장으로 가을이면 대성산 동물원과 대성산 유희장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생각하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만들어주지 못해 마음이 아플 때도 있었습니다. 이곳 남한에 온 저는 해마다 진행되는 벚꽃 축제에 가족과 함께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웃고 떠들며 여의도 공원으로 왔습니다. 로라 스케이트를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수라고 뽐내던 저는 그만 넘어져 친구들을 웃기었습니다. 아픈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어쩔 줄을 모르는데 친구들은 배를 쥐고 좋아 라 웃었습니다. 이렇게 한참을 어린아이들 마냥 즐기던 우리들은 여의도전철역주변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갔습니다. 배가 출출하여 잔치 국수를 한 사발씩 게눈 감추듯이 다 먹고 다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파트 단지로 돌아와 그냥 헤어지기가 아쉽다며 다시 마을 주변인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노래방에서 부부 동반하여 재미있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봄 꽃 축제 구경으로 시작 한 것이 식당으로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너무도 행복한 주말이었습니다. 서로서로 외로운 사람들끼리 주말이면 모여 행복한 생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녁이 되여 오지만 많은 사람들이 봄 꽃 축제장을 끊임없이 찾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북한 주민들의 문화와 이곳 남한주민들의 문화적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모든 것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이지만 이곳 남한에서는 자각적으로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행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4월의 행사를 위해 고향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