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지난 주말 저는 친구의 초청으로 한국의 동해쪽에 있는 포항으로 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회포를 풀며 우리는 물 회집으로 갔습니다. 포항에서는 물회가 전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회가 어떤 것인지. 궁금증을 안고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처음 먹는 음식이라 한 젓가락을 찝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다른 회나 별로 다를 게 없었습니다. “이 좋은 안주에 소주가 없으면 안 돼지” 하며 우리는 소주를 청했습니다. 식당은 6층이라 넓은 포항 앞바다와 포항 제철소를 한눈에 바라보며 소주를 마시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김일성이 생존해 있을 때 전쟁을 해도 포항제철소만은 다치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그런데 정말 포항제철소는 정말 큰 회사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친구의 신랑은 차를 타고 포항제철소의 크기를 구경시켜 준다면서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소리 없이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검푸른 바닷물의 파도 소리는 듣기 좋았습니다. 이렇게 넓은 바다를 바라보니 제 마음도 확 뚫리는 듯 시원했습니다. 포항 앞바다에서 이렇게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2차로는 노래방에 갔습니다. 그러다 밤 11시쯤 돼서 친구 집으로 갔습니다. 친구와 저는 고향에서의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향엔 가지 못해도 금강산 구경이라도 한번 다녀왔으면 하는 등 우리도 언제나 이산가족의 상봉 대열에 참여하게 될까?.. 등등 그리고 아직도 우리가 북한에 있다면 언제 오늘처럼 이렇게 친구를 만나 소주도 마시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바다도 구경할 수 있었을까? 정말 북한에서 태어나 이곳 남한에 와 너무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 꿈만 같다고 우리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곱씹어 이야기했습니다.
그날엔 새로 건설된 포항 시청도 구경했습니다. 서울 시청보다도 더 크고 환했습니다. 마치 높은 언덕에 우뚝 서있는 포항시청을 바라보며 저는 평양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만수대 동상보다 더 멋있다고 감탄해 친구들을 웃겼습니다.
다음날 저는 갑자기 서울로 오라는 급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늦은 밤이라 올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강남까지 오면 집으로 택시를 타고 올 수 있지만 친구는 비행기가 있다면서 아침에 김포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면 빨리 갈 수 있다고 하면서 그 야밤에 전화로 예약을 했습니다. 아침 8시에 포항 비행장으로 나온 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마침 좌석이 창문쪽이라 창밖을 내려다보니 마치 제가 손오공이나 선녀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절반 땅인 이곳 남한의 온 강산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듯 했습니다. 한 시간이면 김포공항에 도착하게 되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남과 북이 어쩌면 이렇게 하늘과 땅차 차이일까?
평양에 있을 때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올려다보며 비행기를 한번 타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비행사가 되는 꿈도 많이 꾸었답니다. 순안 비행장 행사에 가면 비행기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바라보면 정말 부러웠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비행기를 한번 타보 는 것이 누구나 꿈이랍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릴 때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겠는가고 물으면 10명중 9명은 비행사가 되겠다고 힘차게 말을 합니다. 저도 그랬고 우리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서울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예쁜 승무원 아가씨가 주는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을 구경하는데 어느덧 제가 사는 서울 상공입니다. 서울에 도착해 저는 급히 행사장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날 만나는 사람마다 포항에서 김포까지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자랑하고 또, 자랑했습니다.
한 친구는 아무 증명서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가 북한인 줄 아느냐고 되물었습니다. 하루빨리 남북이 통일이 돼서 서울에서 평양까지 비행기 타고 가게 될 그 날을 기원하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