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이었습니다. 저는 친구 숙영이, 애순이 그리고 남한 분들과 함께 오이도 서해 바닷가를 찾았습니다. 모두 7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각기 다른 곳에서 살기 때문에 서울 시내 신도림역을 집합 장소로 정하였습니다. 숙영씨와 애순씨와 저는 아침 일찍 5614버스를 타고 신도림역으로 출발 하였습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각기 자기 가정들에서 있었던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워낙 함경북도가 고향인 그들의 목소리는 한층 높았고 저 역시 음성이 컸음으로 버스와 전철 안은 우리들만이 있는 듯하였습니다.
10시 30분이 되어 신도림 역에서 만난 우리들은 병점 행 전철을 탔습니다. 처음엔 자가용차를 타고 가기로 약속을 하였지만 술 한 잔 하게 되면 운전을 할 수가 없어 우리는 서로 편리하도록 전철을 타고 여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금정에서 다시 전철 4호선을 갈아타게 되었습니다. 오이도 역에 내린 저는 기분이 정말 상쾌하였습니다. 전철역 주변에는 작은 산봉우리들과 벌판이 있었고 구수한 흙냄새가 물씬물씬 나는 듯 하였습니다.
저는 함께 가는 친구들에게 나도 저런 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더니 친구들인 숙영이와 애순이도 저와 같은 심정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결같은 마음들을 서로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한 30분 가량 달렸습니다. 남한에 와 처음으로 오이도라는 곳에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손전화로 사진도 찍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습니다.
목적지에 이르기 전 한 정류소에 먼저 내려 우리는 겨울 바닷가의 황홀한 전경에 대해 감상을 하면서 한 20분 가량 걸었습니다. 기분이 좋았는데 마치도 어린애 같은 심정 그대로 였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서도 바닷가를 한 시간 정도 거닐면서 많은 사람도 구경하고 굴 파는 장사꾼들도 구경하였습니다. 굴을 까고 있는 한 할머니를 보면서 고향에 계시는 늙으신 어머님을 그려보며 그 할머니의 굴을 사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닷가를 돌아본 우리들은 차씨 집이라는 가게에서 우럭이라는 생선회를 떠가지고 서해 바닷가 간판이 붙은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회에 소주 한 잔을 먹고 보니 설이라 고향 생각이 간절히 났습니다. 고향이 서로서로 다른 저희들은 각기 자기 고향 소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지방 사투리를 써 가면서 말입니다.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던 분들이 저희들의 말을 듣고 조선족이 아닌가고 물었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조선족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는 윗동네에서 내려온 사람이라고 사투리를 섞어가며 웃기는 소리를 하였습니다. 그분들은 반갑다고 하면서 저희들과 합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여 우리의 일행은 12명이 되였습니다. 어느덧 서로가 얼큰하게 취하였습니다. 오후 5시쯤되어 겨울 보슬비를 맞으며 바닷가에서 오이도 전철역으로 나왔습니다. 다시 목동까지 온 우리는 헤어지기가 아쉬워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노래방으로 갔었습니다. 각기 장끼 자랑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는데 남한 분들은 저의 춤 실력을 보고는 보통이 아니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밀기도 하면서 최고로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워낙 제 자랑하는 사람은 3대 머저리 중 하나라고 하나 저는 노래 실력은 안 되지만 춤 실력은 대단하다고 생각을 한답니다.
9시가 되어 저는 숙영이와 애순이와 한 마을이라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북한 같으면 우리 여자들이 이렇게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갈수가 없을 것이고 오늘 같은 설에는 부엌데기로 남편들의 술주정이나 들어줘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또 술커녕 먹을 것이 없어 하루 세끼 생계 때문에 웃음은커녕 울음으로 보내고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나간 설날 고향의 한 친구가 아이들의 먹 거리 때문에 두만강을 건넜다가 잡혀 공개 처형을 당해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꽃 제비가 되어 거리에 나앉았다는 이야기며, 또 애순이는 설날에 공급받았던 돼지고기 1kg을 아이들에게 먹이지 못하고 시장에 내다 팔아 쌀과 바꾸었다는 지난 이야기를 하며 눈물도 흘렸습니다.
싸락눈과 섞여 내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느냐고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지내 놓고도 고향 생각을 하며 서로서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름다운 서울의 밤거리를 거닐며 저는 고향의 어머님 생각을 하였습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형제들과 하염없이 넓고 넓은 조국의 삼면의 바다를 “나잡아 봐라” 하면서 거닐고 싶습니다. 언제이면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가 있을까. 갈 수는 없어도 서로서로 편지라도 아니면 전화로라도 자유롭게 소식을 서로 교환 할 수 있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하고 말입니다. 항상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에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