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이들과 함께 남한에 와 보금자리를 잡고 생활한 지도 벌써 시간이 가고 또 가고 세월이 지나 어느덧 4년이 되었습니다. 1년은 365일, 지나간 4년 세월 1460일. 이 기나긴 세월 저는 텔레비전을 볼 때 마다 고향생활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저희 집은 아이들이 저녁에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면 TV와 컴퓨터를 제일 먼저 켜군 하며, 아들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엄마에게 전화를 합니다. 컴퓨터를 켜놓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주말 휴식 날에도 혹시 밖에 나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TV를 켜놓다시피 하며 매일 드라마와 주말 연속극은 빠짐없이 본답니다. 아마도 어떤 날에는 하루 24시간 TV만 가동 할 때도 있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전기 값은 얼마 나가지 않는답니다. 처음 남한에 와 저는 하루 종일 TV를 켜놓아 전기 값이 많이 나간다고 아이들을 통제도 하였답니다. 저는 고향 평양에 있을 때부터 TV에 대한 남다른 깊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저의 시아버님이 6.25전쟁에 참가하였다가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하여 저의 애들 아빠는 전사자 가족이었습니다. 1982년 4월15일 태양절을 맞으며 평양시에서는 전사자가족들에게 일본에서 수입한 소나무 TV를 배려로 공급을 한다면서 한 가정에 하나씩 공급하여 주었는데 저의 애들 아빠는 둘째 아들이라 그나마 차례지지가 않았습니다. 그 TV 하나 놓고 겨우 발걸음마를 떼는 저의 큰딸이 TV를 만지면 큰집아이들은 자기 아빠가 선물 받은 TV를 만진다면서 못 만지게 하여 많이 울었고 그때 제 마음 또한 아팠던 추억도 많았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제가 분가하여 1989년 13차 세계청년 학생축전을 맞으며 1선도로 옆에 사는 가정과 전사자 가족에게 또 다시 한번 TV공급사업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사는 동당위원회에서는 저의 애들 아빠 이름이 명단에 올라갔었고, 동당 비서로부터 이번에는 천연색 텔레비전을 공급하니 그때 당시 북한 돈으로 1000원 이상 준비하라는 분공까지 개별적으로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저는 지방에 있는 친척집에 나들이를 가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나들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불길한 소식을 듣고 당 비서를 찾아 갔었는데 저의 애들 아빠가 유복자라면서 해당이 안 된다고 하여 상급기관에서 제외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분하여 저는 시어머님을 찾아가 정말 유복자인가 알아 보니 애들 아빠가 태어난 지 3개월 후에 시아버님이 군에 나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복자가 아니라는 것임을 알고 아무리 신소를 해도 소용이 없었고, 이미 때가 늦은 뒤였습니다. 하여 저는 그 때 두 번째 기회마저 놓쳐 버렸습니다.
국가에서 공급을 받지 아니하면 야매 가격으로. 본 가격의 몇 배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평민들은 TV 하나 가정에 사놓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여 저는 아이들이 남의 집에 가 TV를 볼 때마다 수모를 받을까봐 인민반에서 TV가 있는 세대와는 남다르게 친했고 인민반에 나오는 배정표에서 제일 좋은 것을 그 세대에 먼저 주군 하였습니다.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에 저는 항상 TV를 볼 때마다 지나간 추억이 머리에서 맴돌이 쳐 하루 24시간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켜놔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이 세월이 흐르면 없어지겠지 하고 말인데, 4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텔레비전을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가 않네요. 저는 매일매일 드라마를 빼놓지 않으며 9시뉴스를 비롯한 모든 방송을 다 돌려 가며 본답니다. 이렇게 저는 남한생활을 하면서 자그마한 텔레비전을 하나 놓고도 지나간 아픈 추억에 대해 잊을 수가 없습니다.
텔레비전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먹고 입고 쓰고 사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항상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텔레비전 하나를 통해서도 국제, 국내 정세를 모두 알 수 있습니다. 미국 타이가 없나 중국 타이가 없나 인도 영화와 로씨아 영화를 비롯한 세계 어느 나라 영화든 다 볼 수 있고, TV를 통해 세계 그 어느 나라의 뉴스도 다 들을 수가 있답니다. 주말인 오늘도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특히 만수대 타이를 보기 위해 이집 저집 기우뚱하며 들락날락 조심조심하고 있을 고향의 주민들과 어린이들을 그려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빨리 통일이 되어 내 고향 북한도 온 나라에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북한의 모든 주민들도 조건에 구애됨이 없이 매 가정에 편안히 앉아 행복한 웃음 속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게 될 그날을 기원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