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자원 봉사의 기쁨
2006.02.20
어제는 남들이 모두 쉬는 주말 이였습니다. 저는 탈북자 동지회에서 조직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봉사활동에 처음 참가하는 저는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있는 곳이며 도대체 어떤 곳이며.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것이며. 어디인지 등등 혼자 착잡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차는 어느새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수락산 골자기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수락산 입구로 들어가는 동안 우리는 ‘야. 야. 공기 좋고 경치 좋다’ 는 말이 연방 터져 나왔습니다. 산골에서 흐르는 작은 강도 있었고 나무숲이 우거지고 사시장철 갖가지 꽃들이 필수 있게 여러 가지 수의 꽃나무들이 있었으며 봄. 여름. 가을 이면 더더욱 금강산 못지않을 듯합니다. 저는 혹시 머루 다래나무가 있지 않는가도 은근히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내 고향엔 이 쯤 한 산골이면 머루 다래가 흔하게 있기 때문이며 고향생각이 은근히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정이 풍부하지 못한 저로써는 표현하기 힘든 경치였기에 그저 이런데도 있었구나 하고 숨 호흡을 길게 하며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정부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노인복지관이였습니다.
노인복지관이라는 것은 갈데없는 로인 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며 치료해주고 사망처리가지 무료로 친자식처럼 관리 하여주는 곳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북한에서 부르는 양로원 이지요.문득 생각하기를 80고령인 노인들 이라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모두 자리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밥도 떠 먹여주는 것일 것이라 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생각하고는 너무도 엄청났습니다. 80넘은 노인 들이 사는 곳 같지가 않았습니다. 주변부터가 깨끗하게 정리 되여 있었고 모든 시설이 아담하게 갗 추어져 있었고 방에 들어가 보니 해 빛이 잘 비치고 방 정리 또한 아담하게 되었고 냉동기, 텔레비젼을 비롯한 없는 것이 없이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하루에도 대학생들을 비롯한 우리같은 단체들에서 매일 매일 자원봉사자들이 나와 노인들의 목욕도 시켜주고 노화 방지를 위해 손 발 어깨도 주물러 주기도하고 청소 도 말끔히 해준답니다.
우리가 도착하니 이미 대학생들이 찾아와 그들을 돌봐 주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듯하였습니다. 우리는 준비하여 가지고 간 건강식품들을 일군들에게 전달하고는 걸레를 들고 각방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는 또 각 방에 들어가 이야기들을 하였는데 저는 고향의 우리어머님 생각이나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우리들의 고향이 북한이며 탈북자라는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의 손을 꼭잡아주며 오히려 우리를 위로 해주는 것이였습니다. 또 고향이 함흥인 한 노인은 눈물까지 흘리며 고향에 가보고싶다고 하여 우리는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두가 고향생각을 하였습니다. 고향의 아버지 어머니들과 마주 앉아있는 단란한 가정 분위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리일군들은 자기들의 친부모처럼 할머니처럼 살뜰하고 다정하게 관리해주고 있어서 그들 또한 친자식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5시간동안 봉사활동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노인들은 우리의 손을 하나하나 꼭 잡고 목숨을 걸고 찾아온 고향인데 꼭 건강하여 잘살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수락산을 내려오면서 많은 등산객들을 보면서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와는 다른 고향생각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님도 올해80인데 어떻게 지내는지. 어머님을 못 본지도 8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저분들 못지않게 늙으신 어머님 모습과 고향의 늙은이들은 저 나이면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니 엿을 거란 것 두. 허나 여기남한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이며 국가인가를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앞으로는 90이 청춘이 될 고령의 세상이 된다는 것도 그려보며 고향에 게시는 우리의 모든 부모님들도 그런 세상에서 오래오래 건강하여 사는 모습도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저는 앞으로 고향의 어머님을 그려보는 심정으로 오늘과 같은 남을 도우는 특히 나이 많은 분들을 위해 이런 봉사활동을 더 많이 할 것을 다짐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