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저는 친구들과 저의 집에서 소주 한잔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갑자기 아들이 '며칠 있으면 선물을 받겠네요,'하며 뜬금없이 하는 말에 철이 엄마. 영애 엄마와 저는 눈길을 한 곳에 모으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뒤에야 우리들은 '정말 그렇네,' 하며 웃었습니다. 서로서로 하는 말이 2월16일에 지방에서는 선물이라는 것이 고작 벽돌과자 1킬로그램이었다는 것이었고, 술 한 병에, 기름 한 병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들 보기가 민망스러워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의 고향인 평양에서는 지방 사람들 보다 한참 좋은 편이었거든요, 그래도 2월16일이면 고급 사탕과자 선물 한 아이당 1킬로그램이었고, 또 식료상점에서는 40% 인삼 술이나 생강술, 아니면 태평 술 한 병에 고급담배 2곽, 알사탕 1인당 500그람, 닭 알 2알, 두부10전, 돼지고기 200그람 씩 공급을 받았고 남방과일 바나나 아니면 귤 한 알씩, 옥수수기름 한 병씩 공급을 받았기 때문에 지방에 비하면 훨씬 좋은 편이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남한생활에 비하면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지만 말입니다.
그나마 말도 제대로 번지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것도 선물이라고 받아 안고, 먼저 초상화 앞에 서서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사탕과자 봉지를 들고 '아버지 대원수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야 봉지를 터뜨려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웃었습니다. 또한 누군가는 '우리 인민이 참 좋은 인민'이라는 말을 하여 우리는 서로 묵묵히 조용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순간 각자가 자기 고향 생각들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셋은 오늘도 고향 집 문밖에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딸들과 손자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들과 형제 친척들을 순간이나마 그리며 눈에 눈물이 글썽 하였습니다. 고향에 소식이라도 전할 수만 있다면 먹고 쓰고 사는 모든 것을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보내 주고 싶은 것이 모두의 하나같은 마음들이었습니다. 이런 소리를 하며 우리는 소주 세 병을 마셨습니다. 2차는 철이 엄마가 쏘겠다하여 우리 셋은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자주 가는 부부노래방 아저씨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한 시간을 공짜로 더 주어 우리는 두 시간을 마음껏, 실컷 즐겁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3차는 영애 엄마가 쏘겠다 하여 집으로 오는 도중에 있는 생맥주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칠면조 구이 안주에 시원한 맥주 한 잔씩 먹기로 하였습니다. 칠면조 고기는 생각과는 전혀 달리 참 맛이 있었습니다. 단골인 저희들에게 봉사(서비스)한다면서 따끈한 계란찜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즐거운 기분에 취한 우리들은 영애 아빠와 철이 아빠를 불렀습니다.
여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가면 남편들의 꾸지람을 들을까 두려워하는 친구들의 심리를 파악한 저는 전화로 남편들을 부르게 하였습니다. 두 집 남편이 하나 같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저는 더 즐거웠습니다. 북한 같으면 이런 일들을 상상도 못할 것이나 여기 남한에서는 이런 생활이 보통이며 이런 즐거운 맛과 재미 때문에 부부 사이의 행복이 더 깊이 이어 질 수가 있답니다.
부부라 하여 매일 좋은 날만 있을 리 없고, 남남이 모여 살아가기에 힘든 모습도 있지만 이런 분위기로 서로를 이해하고, 이런 자리를 통해 행복과 즐거움을 찾는답니다. 저는 이런 친구들이 항상 부러우며 질투가 난답니다. 제가 질투를 하면 친구들은 더 샘이 나도록 자기 남편들에게 고기를 집어 먹여주고 하는데, 저는 그런 행복한 모습이 더욱 대견스러웠습니다. 우리는 그날 4차로 다시 노래방으로 갔었는데 노래방 사장님은 엄지손가락을 내 흔들며 잘 익숙해 지지 않은 자본주의 생활이 힘들겠지만 참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부럽다고 까지 하였습니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각자 서로서로 다정한 인사를 하며 헤어져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이렇게 여인들이 시작한 주말 휴식에 남편들까지 끼어 더더욱 신이 나고 즐거웠습니다. 진정으로 남한 생활은 날이 감에 따라,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저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답니다.
행복감과 자신감이 하루하루 더욱 커지는 저의 모습과 함께 고향의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맵짠 칼바람 속에 분토생산을 위해 보통강 하천을 퍼내고 있을 고향의 주민들을 그리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