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애
참 흘러가는 세월은 것 잡을 수가 없네요. 화창한 봄날. 주말은 참 바쁜 스케줄이 이어 집니다. 거리마다 마을마다 아름다운 진분홍 철쭉꽃들이 활짝 피워있어 황홀 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서울시민들 속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는가 하면 등산을 비롯한 야외활동을 통해 주말을 알차게 보내는 사람들이 수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인제는 서울 사람이 다 되여 주말이면 그들과 함께 있답니다.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랍니다. 주말이 지나고 화요 일이 되면 사방에서 전화가 분주히 걸려 옵니다. 이번 주말엔 어디가 좋을까? 어디가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어디가 더 아름다운 곳일까?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주말 휴식 계획을 세우기가 참 요즘엔 바쁘답니다. 토론 끝에 수락산 등산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말이 등산이지 저에게는 산에 놀러가는 심정입니다.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온 강산을 한눈에 바라보며 웃고 떠들면 가슴에 구멍이 펑 뚫린 것처럼 시원합니다. 이렇게 주말에 많은 사람들 속에 끼워 등산을 하고 다음날 출근하면 기분이 그 어느 때 보다 상쾌해지는 것이 마치도 중독이 된 듯하네요. 저는 금요일 강원도 속초에 초청강연에 참가하고 그곳에서 백두산 둘 쭉 술 한 병을 구해 가지고 왔습니다. 고향의 술을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고 고향의 술을 한잔씩 대접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아침 8시가 되여 등산복차림에 들쭉술을 가지고 친구들과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가 기다리려고 했는데 벌써 친구들이 수락산역에서 저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10시가 되여 일행은 산으로 올랐습니다. 모두 5명이었습니다. 평양사람2명과 서울사람3명. 남북이 하나가 되여 등산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산 중간에 오른 우리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는 주변에 자리를 잡고 간단히 휴식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침을 먹지 않은 것이라 배가 고파 김밥을 꺼내 한 줄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 버렸습니다. 다시 출발 명령이 내려 등산객들 속에 끼워 더 높이 올랐습니다. 정상에 채 오르기 전에 우리는 좋은 자리를 잡고 모여 앉았습니다. 저는 그때에 가지고 간 들쭉술을 내놓으며 고향의 백두산 들쭉술이라 자랑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눈아 커졌습니다. 지영이라는 친구는 다 마시지 말고 한잔만 남겨 달라는 것입니다. 등산에 오지 못한 자기 남편에게 대접하며 우리들 자랑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준비해가지고 간 음식을 꺼내 놓고 들쭉술 한잔을 하면서 고향을 그려보았습니다.
함께 간 친구는 북한에 있을 때 한 번도 가볼 수가 없었던 백두산과 금강산을 그리며 한번 가 보았으면 하고 말했고 가보지 못한 사람은 나이 들기 전에 한번 꼭 가보겠다고. 이곳 남한이 고향인 지영이는 중국 장백산을 가본 일이 있다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저는 백두산은 못 가보았지만 학창시절에 묘향산에 갔던 자랑을 하였습니다. 비가 온 뒤에 안개가 보얗게 끼면 높고 높은 묘향산 봉우리들에서 그야말로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하다고 말을 하자 영실이는 이 수락산에도 안개가 끼면 그럴 듯 할 것 같다고 하여 웃었습니다. 저는 이들이 하는 말들을 들으며 우리 고향 주민들도 통행증이라는 법이 없이 자유롭게 그 어디든 마음대로 다니고 관광을 할 수 있다면, 그들에게도 자유의 날개를 달아 줄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두 시간 정도 즐겁고 재미있었던 지난날들에 대해 수다를 떨던 우리는 산에서 내려 왔습니다. 2차로 얼큰한 닭발과 부추 전을 시켜 시원한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3차로 택시를 타고 수유사거리 쪽으로 나와 노래방으로 갔습니다. 노래방에서 1시간 정도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다시 4차로 호프집으로 갔습니다.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잔씩 시원하게 마시고 헤어지기로 하였는데 이곳 남쪽이 고향인 좋은 친구들은 헤어지기가 아쉽다며 다시 다른 호프집으로 우리를 안내 하였습니다.
참 제가 아직 남한에 와서 가보지 못했던 희한한 호프집입니다. 14층이었는데 그야말로 분위기도 끝내 주었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구라파들에 있는 그런 호프집이었습니다. 기분이 저절로 좋아 지는 것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술이 한잔 잘된 한 친구는 괜히 접대원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별이 별 시비를 다 걸어도 접대원은 웃으며 인상 한번 찌그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북한 같으면 접대원들이 단번에 욕을 할 것인데 접대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웃으며 다 들어 주고 답변해 주는 것입니다. 평양에 있을 때 저도 한때는 수산물 상점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겨울 김장 공급으로 생 동태를 판매하면서 부러진 동태를 저울에 올려놓았습니다. 손님은 같은 값이면 좋은 것으로 부러지지 않은 것으로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의 비우를 어떻게 다 맞추겠는가고 하면서 저울을 맞추느라 부러진 동태를 올려놓은 것이라고 내편에서 짜증을 부리다 나중에는 목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제 편에서 못해 먹을 직업이라고 큰소리를 치군 하였는데 이곳 남한에서는 식당이나 상점에 가나 백화점에 가나 버스를 타던 그 어디를 가든 손님을 왕으로 모시고 최대의 정성을 다해 모시는 것이 법으로 되여 있습니다. 버스 기사아저씨들은 매 정류소 마다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는 것이 규정입니다.
저는 지나가는 시간과 세월을 또 하나의 즐거운 추억으로 장식하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줄 것 고향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런 즐거움과 행복한 생활을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보냈으면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입니다. 이곳에 와 새로 사귄 친구들이라 때로는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고향의 친구들아 보고 싶구나, 항상 너희들을 잊지 않고 있단다. 어제도 오늘도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