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한국인] 원로 방송인 강석희 씨의 삶의 역정 ③ 젊음으로 봉사의 길을 걷는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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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seokhee3-305.jpg 원로 방송인 강석희 씨가 자신이 봉사하는 뉴욕한인이민봉사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욕한인이민봉사센터
원로 방송인 강석희 씨가 미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전 참전을 통해서다. 상이군인이었던 그는 당시 서울 이태원에서 미군들과 자주 접촉할 기회를 가졌으며 1954년에 유엔의 소리 방송에 입사, 7년간 대북 방송 담당 기자로 일했다. 1961년 베트남에서 프리랜서 즉 자유계약 기자로 2년간 일했으며 1972년 도미, 이듬해부터 ABC 방송국 뉴스데스크에서 약 13년간 뉴스 편집인으로 활약했다. 이후 활동 무대를 NBC 방송으로 옮겨 88년에 서울올림픽 취재에 이바지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원로 방송인 강석희 씨의 삶의 역정 3부 ‘젊음으로 봉사의 길을 걷는다.’를 함께 한다.

미국 방송계를 떠난 강석희 씨는 미국연방이민국 이민관으로, 뉴욕 시 이민 상담부서에서 전화 상담가로, 그리고 1992년 뉴욕 한인 이민 봉사 실장으로서 봉사자의 길을 걷게 된다.

강석희: 이민자들이 언어 소통이 안 되고 미국의 문화나 법규를 너무 몰라요. 그러니까 피해를 자주 봐요. 사기꾼에게 사기도 당하고 미국 사법기관에서 어려움에 부닥치는 것을 보고 이들을 도우려면 어떤 단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뉴욕 한인 이민 봉사실을 개설했지요.

강석희 씨가 이민자를 위해 봉사한 것만 해도 18년이 된다. 그의 봉사의 이야기 들어본다.

강석희
: 이민문제도 홍보 세미나를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계몽하고 문화 차이로 누명을 써서 유괴범으로 몰린 사람도 있고, 무슨 도난으로 절도범으로 몰리는 사람도 있고 해서 이런 사람들의 법률구제도 많이 했습니다. 영주권도 받아야 하니까? 영주권을 받는 길을 안내해 줘야 하기 때문에 제가 일한 경험으로 책도 냈습니다. 그리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민에 관한 상담도 했으며, 그동안에 한 7,000명에 가까운 이민자에게 영주권을 받게 해 줬습니다. 봉사실에서 거의 18년 동안 무료로 시민권 교육 강좌를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는데 1만여 명이 넘는 이민자들이 시민권을 취득하고 미국 정착에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됩니다.

강석희 씨는 한인들의 문화적인 배경을 뉴욕 신규 경찰에게 교육했단다.

강석희: 신규 경찰의 소양교육으로 한국이 어디에 있고 역사적 배경은 뭐고 문화 습관 등을 알려줘서 문화적 차원에서 오는 마찰을 줄이는 예방 차원의 교육을 했어요.

강석희 씨가 뉴욕 퀸즈 제 7 지역사회 이사회의 이사로 활동한 이야기다.

강석희: 뉴욕 퀸즈는 160인가 170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동네입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우리 권익을 보호하려면 정치세력 즉 이민을 먼저 온 사람들, 메인스트림, 주류를 이루는 사람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야 합니다. 커뮤니티 보드는 소위 기초단체로서 미국의 지방 자치단체 제도하에서 제일 밑바닥에 해당하는 것으로 밤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나가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손해지요. 숨어서 하는 일이지만 그건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10년 넘게 했지요. 이제는 너무 나이가 많아서 그만뒀지요.

뉴욕 북부 퀸즈 보건연맹 회장으로 이민자들의 권리 신장과 건강증진을 위해서도 봉사했단다.

강석희: 퀸즈 지역에 각 인종 단체가 50여 개가 됩니다. 이민자들의 보건 관련문제가 열악하니까 목소리를 높이자 그래서 소위 각 인종단체에서 규합해서 보건연맹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보건 박람회도 개최하고 이민자들의 위생문제 등을 정부에 건의하곤 했는데 한인 동포사회를 대신해 가입해 활동하다 선출로 제가 2대 회장을 했어요. 4년을 하면서 그런 밀접한 사회단체들과 소위 교류를 했다고 보지요.

강석희 씨는 남은 여생 봉사자로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강석희: 우리 세대가 제일 수난과 아주 격동기에 거쳐서 남들이 겪지 않은 배고픔, 죽음의 공포, 목숨도 잃고 부상도 당하고 이념적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시민경제와 통제된 속에서 여태껏 살아 나왔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하고 어려웠다지만 그런 경험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니까는 참 개인으로서는 운이 좋고 복 받은 자라고 생각합니다. 60년 전에 잘못하면 죽었을 몸이었는데 생명을 부지해서 오늘날 남을 위해 봉사도 했다고 자부심을 느끼고 인생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남은 여생을 어디서 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강석희 씨가 뉴욕 한인들 자랑도 들려준다.

강석희: 우리 한인들은 부지런하고 추진력이 대단해요. 옛날 이민 초기에는 길거리에서 행상하다가 조금 있었다가 보면 자영 가게들을 열고 또 도매가게를 열고 조금 발전하면 직접 제품을 만들어요. 그러니까 주얼리, 장신구도 만들고 네일, 손톱을 다듬는 미용실도 하다가 미용 재료를 만드는 공장을 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의복 관련해서 봉제 공장으로 남의 일 맡아서 하다가 나중에는 운동복 같은 잠바도 만들기도 하고 정말 백만장자도 많고 재주가 좋아요. 한때는 캄캄했던 뉴욕시가 한국 사람들이 코너마다 가게를 열고 24시간 장사하니까 뉴욕 골목마다 온 시가 불로다 환해요. 북한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지요. 위성 사진으로다 내리찍어도 뉴욕이 그렇게 밝고 번쩍이는 것은 우리 한인 동포들이 그야말로 뉴욕에서 24시간 오픈 해서 빛을 발휘한 거예요. 다른 민족보다 상당히 발전이 빠르고 자녀 교육에도 열심이에요. 그래 세대가 바뀌면서 젊은 사람들이 전문직에 배치되는 것도 우리 한민족의 자랑 중의 하나입니다.

강석희 씨는 남북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석희: 멀리 있어도 북한 사정을 보면 속 터지고 눈물 난다고요. 그야말로 그 오랜 세월을 억압과 구속된 속에서 속에 매친 것을 밖으로 내 비치도 못 하고 그야말로 개인 우상과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그 광신자들에 구속되어서 묵인 사람들 만나면 속 터놓고 이야기하고 막걸리라도 한잔 나누면서 그래도 어떻게 살아남았구나! 이제부터는 우리가 남북한의 동포끼리 속 터놓고 살자! 이게 누구의 죄도 아니고 다만 이게 시대적인 어떤 비극의 흐름이다. 그러니까 뭐 만나면 그 사람들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얼마나 오랫동안 참았느냐! 우리 생전에는 내가 기대를 못 할 것 같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원로 방송인 강석희 씨의 삶의 역정 3부 ‘젊음으로 봉사의 길을 걷는다.’를 함께 했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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