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송환과 그들의 자녀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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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송환과 그들의 자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 노역을 했던 한모(가운데)씨와 사단법인 물망초 등 소송대리인 및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한 씨 등이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한씨와 노씨에게 각각 2천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연합뉴스

MC: 6.25 전쟁 71주년 RFA 기획특집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한반도에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이 있은 지 71 년이 됩니다. 같은 민족이 서로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고 치유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요. 오늘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자녀의 증언과 국군포로 송환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는 남한 인권단체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진행에는 이진서 기자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모든 건물은 초토화 됐고 가족이나 친구 등 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 난리통에 목숨을 부지한 사람도 전쟁으로 인한 심한 후유증을 어느 정도 감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동족간에 있었던 1950년 6.25 전쟁은 발발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 분석관의 말입니다.  

신희석: 국군포로는 정전협정 규정에 따르면 당연히 한국군 포로가 송환이 됐어야 하는데 북한에서 발표한 9만 명 정도인데 실제 송환은 몇 천명 정도이기 때문에 최소한 5만명 정도가 송환이 안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에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에는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의 계속되는 인권침해를 명시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정전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의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고 당연히 한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봐야 할 문제 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종전 이후 단 한 명의 국군포로도 남북한 당국의 교섭이나 협의를 통해 송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신희석: 태반이 우리 군적, 국방부 자료를 보면 전사자 처리 돼있었습니다. 그만큼 6.25 당시 우리 군의 관리가 허술했다는 증거가 되겠는데……

지난 1994년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간 고 조창호 소위에 의해 국군포로 문제가 세상에 알려집니다. 그리고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민간단체가 나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를 구출한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신희석: 국내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많이 다뤘던 단체가 물망초와 국군포로 가족회였습니다. 사실 작년 7월 판결이 났는데요. 북한 김정일을 상대로 국군포로 2명이 원고가 돼서 소송을 제기 했었는데 거기서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국내 경문협이란 단체에서 북한에 지급하는 저작권료가 2008년인가요 그때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지급이 중단이 되면서 그 금원이 계속 공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금액이 대해 배상을 집행하라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고요. 그리고 유엔에서는 이번에 예를 들어서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국군포로 문제가 언급이 된 것이 NGO들 예를 들어서 북한인권시민연합이라든가 국제적으로 휴먼라이트워치 이런 단체들이 국군포로와 가족문제를 언급할 것을 계속 요구를 해왔습니다.

지난 2012년 설립된 민간단체 사단법인 물망초는 나를 잊지 마세요란 꽃말처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일은 잊지 말자면서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기억하고 행동하자며 사회여론을 만들었습니다. 박선영 이사장의 말입니다.

박선영 이사장: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 없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올라타지 못하고 지금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 대표적으로 국군포로,사할린 한인, 탈북자, 납북자 등 일 것 입니다. 자기 잘못이 전혀 없이 국가가 수렁에 빠지게 되면서 지금도 구출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분들을 기억하고 기억하게 되면 무언가 행동하게 될 것이니 우리 모두가 그분들을 기억합시다.

전쟁의 아픔을 몸으로 겪은 많은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2세, 3세들은 한국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이산가족은 어떻게 생겨났고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또는 민족 고유의 명절 때마다 무슨 기념행사마냥 왜 남북한이 이산가족 행사를 갖는지 혼란스러워 합니다. 남북한의 관계가 좋을 때는 여러 방면의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지만 북한 핵 문제가 불거지고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와 코로나 19가 더해지면서 현재 두 당국간의 교류는 끊어진 상태입니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불편해 하는 문제는 거론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입장인 듯 보여집니다.

박선영 이사장: 전제가 잘못 됐다고 생각하는데요. 국군포로 문제가 남북관계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남북관계를 가져 가는데 지금 길 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일본은 모든 문제를 올리기 전에 가장 먼저 납북자 문제를 내세웁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사 확인 여부와 함께 돌려 달라고 얘기 합니다. 북한은 일본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납북자가 살아있다, 그의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다 그리고 유골이 심지어 가짜라고 해도 보내주는 쇼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북핵도 마찬가지에요.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권 문제를 거론해야 됩니다. 국군 포로의 문제를 얘기하면 남북관계가 경색된다고요? 그 이유가 뭘까요?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죠. 국제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뜻이죠. 제네바 협정을 지키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박 이사장은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이나 포로 송환의 문제 또는 납치자 송환의 문제는 예전 분단 독일의 사례를 배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박선영 이사장: 동독은 서독과 협상을 하면서 서독이 돈을 줄 때마다 조건을 전부 충족시켜 줬어요. 많은 돈도 아니었습니다. 그 돈을 주면서 누구를 보내라.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누구를 보내라, 보내고 돈 받았습니다. 왜 다른 나라는 하는데 우리는 못합니까? 국가가 무엇인지 국가의 책무가 무엇인지 통치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분들에게는 국가가 어떻게 예우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이 서있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국군포로의 자녀로 탈북해 어버지의 고향인 남한에 간 탈북자의 수는 200여명 정도가 됩니다. 현재 6.25 국군포로 유족회 손명화 대표는 최근 “침묵의 43호”란 책을 통해 북한에서 이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손명화 대표: 탄광광산으로 정전협정이 되면서 국군포로들을 안정성 건설대에 동원해서 1956년 5월 11일에 김일성이 정원결정 43호라는 결정을 하면서 국군포로들에게 여기로 하면 신분증 북한으로는 공민증을 주면서 이 사람들은 43호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평생 죽는 순간까지 통제와 감시 그리고 가족들도 연좌제로 탄광광산에서 죽을때 까지 일해야 해요. 국군포로와 그 가족은 온성, 아오지, 회령, 무산, 검덕광산 주로 그 지역에 배치가 돼있었습니다. 함경남북도에 있고 드문히 있었던 것이 평남지역에 탄광이 한 두 개 있었던 곳은 국군포로가 몇 명 없었습니다. 주로 국경지역의 탄광광산에 국군포로를 배치했죠.

손 대표는 이제 국군포로와 그 자녀들의 문제를 한국 사회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알리고 국제적 연대를 맺기 위해 활동 중입니다. 그래서 6월 한달 자신이 쓴 “침묵의 43호” 책을 가지고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의 실상을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손명화 대표: 국군포로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 현재 80명이 남한에 돌아왔지만 다 돌아가시고 18명이 살아 계십니다. 우리 아버지처럼 3년동안 전투에 참여했고 포로가 된 사람은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죽는 순간까지 북한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지 않습니까? 그런 삶이 너무 억울했고 또 국군포로 자녀들도 연좌제로 해서 인권침해를 받은 것에 대해 아직 국제 사회에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총살 당하고 정치범 수용소 가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죽을 때 고국에 묻어 달라고, 그래도 부모 형제를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했던 국군포로들의 영혼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자신은 탈북에 성공해 남한에 살면서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활동을 하지만 북한에 사는 같은 국군포로 자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손 대표는 말합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후유증이 깨끗이 치유되는 그날을 기약하며 전세계를 돌며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손명화 대표: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은 영혼들의 명예를 꼭 찾아드리고 싶고 자녀들이 탈북해 여기에 와 있기 때문에 아버지 유해가 어디에 안장됐는지는 다 압니다. 그래서 그 국군포로 유해 한구 한구를 대전 현충원과 서울 국립 현충원에 안장하는 사업을 하고 싶고 대한민국의 영웅들이라는 그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6.25 전쟁 71주년 RFA 기획특집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자녀의 증언과 국군포로 송환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는 남한 인권단체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진행에는 이진서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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