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본다] ⑯ 변화하는 몽골-북한 관계

워싱턴-장명화 jangm@rfa.org
2010.01.28
mongol_nk_summit-305.jpg 2007년 7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왼쪽)이 엥흐바햐르 몽골 대통령과 20일 울란바토르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몽매한 야만인’이라는 의미의 ‘몽고’는 이제 옛말에 불과합니다. ‘용감한’이란 뜻의 ‘몽골’은 이제 긴 잠에서 깨어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고 서구의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등 개혁, 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 체제를 버리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돌아선 몽골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보는 ‘몽골을 본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사회주의 형제국이었던 몽골과 북한의 변화하는 관계를 짚어봅니다. 진행에 장명화입니다.

(몽골 기록영화 해설) (in Mongolian) 김일성 북한 주석이 울란바토르에 있는 북한 전쟁고아원을 방문해 북한 고아들이 펼치는 다양한 행사를 관람하고 있습니다.

몽골영화제작소가 제작한 ‘이웃나라 귀빈’이라는 기록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3년 뒤인 1956년에 제작된 영화 속에는 10일간의 몽골 공식 방문 기간에 북한의 전쟁고아원을 찾은 고 김일성 주석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앞으로 북한과 몽골의 교류에 힘쓰겠다는 아이들의 다짐에, 김 주석은 이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워준 몽골정부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고 영화는 전하고 있습니다.

이 고아원 건물은 지금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남쪽에 있는 벅드산 근처에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4살에서 7살까지의 북한 고아 200명이 1952년부터 몽골 정부의 도움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7년 뒤 북한으로 돌아갔습니다.

북한 고아 지원 사업 외에 몽골은 한국 전쟁 기간에 북한에 많은 구호품을 원조했습니다. 4만 400필의 말, 1만 두의 소, 8만 마리의 양와 염소, 2만 벌의 모피, 4,500벌의 두꺼운 외투, 1만 켤레의 가죽 부츠, 5만 장의 양 가죽, 3천 톤의 육류 등이 그것입니다. 몽골이 구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북한을 공식 인정해, 1948년 10월 수교하고 나서 긴밀해진 양국 간의 협력관계를 잘 보여주는 몇몇 사례입니다.

몽골과 한국의 1990년 국교 수립은 그러나 오랫동안 우호관계에 있던 몽골과 북한 관계의 분수령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몽골과 한국 양국 간의 수교는 몽골에서 북한의 입지를 갑작스럽게 축소시켰던 겁니다. 몽골국립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일했던 단국대학교 몽골학과의 강신 교수의 말입니다.

강신: 1990년 이전과 이후가 아주 굉장히 명확히 대비가 됩니다. 1990년 이전만 하더라도 몽골과 북한 관계는 정치적 관계 외에도 경제적으로도 굉장히 밀접했습니다. 양국 간 매년 교역량이 1,000만 달러 정도를 상회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 이후 들어서는 10만 달러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몽골은 한국과 수교한 뒤 경제 협력관계가 긴밀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경사된 등거리 외교 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1999년 5월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처음으로 방문했을 당시, 나차긴 바가반디 몽골대통령이 한국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몽골과 북한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습니다. 북한은 김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지 3개월 뒤 몽골주재 대사관을 폐쇄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온 몽골과 북한. 그러나 그 소원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몽골주재 대사관을 철수한 지 정확히 3년 후인 2002년 백남순 북한 외무상의 몽골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새로운 협력의 영역에 대한 대화를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8월, 북한은 몽골주재 대사관을 다시 개설하기에 이릅니다. 2005년 1월 북한 경제대표단이 몽골을 방문하고, 2월에는 경제, 무역 및 과학기술협의위원회를 개최하는 등 양자 간 경제협력 관계가 긴밀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몽골이 쇠약해져 가는 북한과 굳이 대화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개혁과 개방 이전 당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에서 러시아 어를 가르쳤고 현재 미국 인디애나 대학에서 몽골학을 가르치는 레그덴 체렌춘트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레그덴 체렌춘트: (in English) 사회주의를 포기한 몽골은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어오고 있습니다. 몽골은 정도는 약하지만 북한과 비슷한 체제에서 살아왔습니다. 즉 몽골과 북한은 역사적, 인종적으로 공통점이 많다는 이야깁니다. 무엇보다도 몽골이 북한과 한국을 이어주는 중간자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몽골이 북한과 대화하는 더 큰 이유는 동북아시아지역의 ‘제네바’가 되기를 희망하는 몽골의 외교정책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입니다. 몽골이 결국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동북아시아지역에서 모든 국가와 좋은 관계로 남기 위한 노력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몽골은 평화와 번영의 지역으로 몽골 비전의 윤곽을 그리는 겁니다. 북한의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는 그래서 몽골에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수흐바타르 바트볼드 몽골 총리의 말입니다.

수흐바타르 바트볼드: (in English) 몽골은 북한이 완전히 고립되는 사태를 원치 않습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몽골은 6자회담 참가국이 아님에도 6자회담과 관련한 대화의 장소로 몽골의 영토를 제공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몽골은 2007년에 6자회담의 일환으로 북한과 일본 간 실무회담을 울란바토르에서 주관했습니다. 앞으로도 이같이 양자회담이나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간 협의가 열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런 몽골의 입장에 적극적인 성원을 보내야 한다고 미국 국무부 분석관을 역임한 몽골 전문가인 스티븐 뇌퍼 박사는 주장합니다. 북쪽과 남쪽으로 핵보유국이 위치한 몽골이 몽골 입법과 유엔 결의를 하나로 해서 일찌감치 ‘비핵지대 국가’의 지위를 확립한 경험을 가진 점은 향후 한반도에 비핵화를 실현시켜 동북아시아 평화정착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선례라는 설명입니다.

스티븐 뇌퍼: (in English) 몽골은 북쪽은 러시아, 남쪽은 중국, 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후발 신생 민주국가들, 그리고 동쪽으로는 북한이 자리한 지역에 있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라도 문자 그대로 동서남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중간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특히 몽골의 비교적 성공적인 정치 민주화와 시장경제 전환은 북한에 중국식 개혁 이외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각각 2000년대와 1990년대에 몽골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마크 민튼 씨와 알 라 포르타 씨의 입을 통해 과연 과거 공산주의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몽골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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