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의 겉과 속] 말장난으로 끝난 ‘2012년 강성대국’

0:00 / 0:00

북한 언론의 진실과 허구를 파헤쳐 보는 북한 언론의 겉과 속 진행에 최민석입니다. 2012년에 강성대국을 선포하겠다던 북한이 그 목표를 슬그머니 뒤로 미루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조선중앙TV녹음>

조선중앙통신은 15일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이 수립된 소식을 전하면서 "2012년에 강성대국의 대문에 들어설 기틀이 마련되고, 2020년에는 앞선 나라들의 수준에 당당하게 올라 설 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펼쳐지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2012년까지 강성대국을 건설한다고 하던 북한이 갑자기 2020년에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청사진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2012년까지 강성대국 선포, 김일성 주석 생일 100돌이 되는 해에 "기어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우던 북한이 왜 갑자기 말을 바꾸었을까,

북한도 지금의 경제 상황으로 봐서 강성대국을 선포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2012년까지 강성대국 완성이 어렵다고 보고, '2020년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겠다'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강성대국론은 김정일 체제가 출범한 1998년 8월부터 등장했습니다. 당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인 '광명성 1호'를 인공위성이라고 쏘아 올리면서 북한은 군사강국이 됐다고 스스로 자랑했습니다. 90년대 중반 대기근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죽던 시기에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군사일변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강성대국 완성의 해를 김일성 생일 100돌이 되는 2012년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럼 왜 북한이 강성대국 건설을 뒤로 미뤘을까,

강성대국을 선포하겠다던 2012년까지는 1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살림은 말이 아닙니다.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해마다 쌀과 비료, 현금을 지원해준 덕분에 사람들은 밥을 굶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한의 지원이 끊어지고 경제난이 심화되어 도무지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습니다.

국가의 배급체계는 이미 오래전에 붕괴됐고, 장마당에서는 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습니다. 쌀 1kg에 2천원이 넘어 노동자 한 달 월급과 맞먹습니다. 모든 물가는 재작년에 단행한 화폐개혁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화폐개혁 때 북한은 장마당 물가가 너무 높아 화폐 단위의 동그라미 두개를 떼버리는 평가절상을 실시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쌀 가격은 2천원으로 화폐개혁 이전과 같아졌습니다. 쌀값이 100배나 상승한 셈입니다.

게다가 올해 겨울 '북극발 한파'가 북한 전역을 휩쓸면서 주민들은 땔감부족, 배고픈 고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 주민들은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죽는다고 "국경지역에 설치된 철조망 바닥을 파서라도 중국으로 나가야 산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 강성대국이라고 선포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굶어죽는 사람이 천지인데 강성대국이 무슨 말라빠진 강성대국이냐고 비웃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또다시 말장난을 부리고 있습니다. 선전선동에서는 북한 노동당을 당해낼 집단이 없습니다. 노동당 선전부는 김정일의 비위에 맞는 화려한 단어들을 골라내느라 고심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믿게 할 것인지 그럴 듯하게 포장합니다.

90년대 중반 유행했던 구호 중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선전문구도 당시 어려운 상황을 잘 반영했습니다. 김정일 자신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노동당 선전부의 기발한 착상에 허구픈 웃음을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원래 강성대국은 1980년에 열렸던 노동당 6차 대회에서 제시한 10대 전망목표만 달성해도 강성대국이 됩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풍족한 생활은 아니더라도 김 씨 왕조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고깃국에 이밥'만 먹여도 인민들은 '수령만세'를 부를 것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하루 세끼 강냉이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해 북한은 또다시 강성대국 목표 판을 10년 뒤로 끌어다 놓는 형국입니다.

그러면 과연 북한이 바라는 대로 과연 2020년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까,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국가경제개발 10개년 계획'에 속하는 주요대상들을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 (대풍그룹)'이 위임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국가경제개발 10개년 계획에 따르면 1천억 달러의 해외 자본을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10개년 계획을 수행하자면 미화 1천억 달러의 외국자본이 들어와야 가능하다는 소립니다.

그러면 그 많은 돈을 누가 투자해줄까,

지난해 1월 북한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중국 조선족 사업가 박철수를 내세워 대풍그룹을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대풍그룹은 북한의 잇단 핵개발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사건 등으로 국제적 제재에 부딪쳐 외자를 끌어들일 수 없었습니다.

'대풍그룹' 사정에 밝은 홍콩의 한 소식통은 "지금도 '대풍그룹'이 외자 유치를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금융 제재로 뚜렷한 실적을 거둔 것이 없다"고 얼마 전 밝혔습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유엔결의 1718호, 1874호를 더 엄격히 시행하고 불법자금이 북한 지도부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하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북한의 추가적인 핵실험과 천안함, 연평도 도발로 인해 국제적인 대북금융제재 망이 촘촘하게 짜이면서 대풍그룹이 뚫고 나갈 구멍이 없어졌다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입니다.

'대풍그룹'이 소재한 홍콩 정부도 홍콩 내에 '대풍그룹'과 '조선개발투자펀드' 등 북한 기업의 정보를 사법당국에 넘기며 위법 행위를 주시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조선대풍투자그룹'은 사무실이나 직원도 없는 유령회사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장부상에 이름만 있는 회사에 나라의 주요 경제계획을 일임했다는 것 자체가 과연 2020년에도 선진국 진입이 가능하겠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90년대 중반, 북한 주민들이 한창 굶주릴 때 하던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공산주의를 건설하자고 했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공산주의가 슬그머니 왔다 갔다"고 말했습니다. 나그네 마냥 스쳐지나간 공산주의가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비관의 목소리였습니다.

인민들은 총알을 생필품으로 쓴다?

얼마 전 북한 언론 매체들이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현지 시찰한 군수공장들에서 "인민생활에 필요한 질 좋은 소비품들이 쏟아져 나온다"고 선전했습니다.

지난 1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부자가 압록강 계기종합공장, 수풍베아링 공장, 압록강일용품공장 등을 현지지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공장들은 평안북도 삭주군 인풍구, 판막구 등 갱도 안에 건설된 군수공장들입니다. 예를 들어 압록강계기공장은 1960년대 북한에서 군수공업이 한창 건설되던 시기에 세워진 공장으로, 미사일 부품에 들어가는 각종 전자부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그런데, 조선중앙텔레비전은 압록강계기공장을 찾은 김정일이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필요한 질 좋은 각종 계기들을 대량적으로 생산하는데 대해 만족을 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총알을 전문 생산하는 압록강일용품공장에 가서도 "인민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용품을 더 많이,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격려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 선전매체의 말을 되짚어보면 김정일 부자가 군수공장에 가서 "인민소비품 생산을 주문"했다는 말이됩니다. 지금 인민이 바라는 것은 쌀이지, 총알이 아닙니다.

올해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경공업 발전을 핵심 화두로 꼽았습니다. 그래서 북한 언론매체들은 김정일이 방문한 군수공장을 경공업 공장으로 둔갑시켜 선전하고 있습니다.

'견제대상' 장성택 공개 활동에서 사라졌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던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작년 한해 김 위원장을 가장 많이 동행해 '그림자'로 통했던 장 부장이 올해 들어와 현지지도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북한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1월 12일 남포유리병공장을 현지지도 했고, 14일에는 평안북도 군수공장을, 15일에는 대관유리공장, 1월18일에는 1월 18일 종합계기공장 등을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는데요, 최근 한국의 조선일보는 "김정은 후계작업이 본격화 되면서 노동당 작전부장 오극렬과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 세력이 본격적인 견제 대상이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초에 약 200여명에 가까운 고위간부들이 국가보위부에 잡혀가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수감됐다"고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그 중에는 장성택의 핵심라인으로 분류되는 노동당 재정경리부와 군부의 외화벌이 간부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어 김정은이 장성택의 손발을 자르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생겼습니다.

한국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일도 후계구축 과정에 삼촌 김영주와 권력투쟁을 벌였듯이, 김정은이 장성택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불양립(勢不兩立)', 부자지간에도 권력을 나눠가질 수 없듯이, 결국 김정은의 권력 상대가 누구든 무사치 못할 것임을 예고하는 전조라 하겠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최민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