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여명학교 채혜성 교사 "학생들 중도 탈락할 때 가장 마음 아파"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 교육 시설인 ‘여명학교’가 다음 달이면 개교 5주년을 맞이합니다. 그간 여명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50여 명. 이들과 지난 5년간 함께 생활하며 좋은 일, 나쁜 일을 다 겪은 교사 한 분을 오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서울-박성우 parks@rfa.org
2009.08.11
이분은 학생들이 뒤늦게나마 자신의 충고를 깨달았을 때 가장 기뻤고, 학생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할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합니다. 서울 남산에 있는 ‘여명학교’에서 채혜성 선생을 만나보시겠습니다.

박성우: 채혜성 선생님, 안녕하세요.

채혜성: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여명학교의 개교기념일이 9월14일이에요. 다음 달인데요. 이 학교가 개교한 지 몇 주년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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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 교육 시설인 ‘여명학교’의 채혜성 교사.
RFA PHOTO/박성우


채혜성: 올해로 만 5년째입니다.

박성우: 지난 5년 동안 이 학교에 어떤 학생들이 다녔는지 궁금한데요.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알기 쉽게 설명을 부탁합니다.

채혜성: 북한에서 남한에 입국한 청소년들이 다니고 있고요. 17살에서 25살까지 학생들인데요. 공부를 하고 싶은데 (여건이) 좀 어려운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박성우: 17살에서 25살이면 나이가 좀 많은 편이네요.

채혜성: 나이가 좀 많고, 일반 학교에 들어가기엔 좀 어려운 경우죠. 그러니까 북한에서 중학교 1~2학년까지 다녔는데, 나이가 20살이 넘으면 남한 학교에 들어가기 어렵잖아요. 그런 학생들이 저희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됩니다.

박성우: 지금까지 여명학교를 거쳐 간 탈북 청소년은 몇 명 정도 됩니까?

채혜성
: 졸업생은 50명 조금 넘는 거 같아요.

박성우: 현재는 학생이 몇 명이지요?

채혜성
: 지금은 51명이에요.

박성우: 그럼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나눠서 몇 명씩인가요?

채혜성
: 중학교 과정은 1학기 기준으로 17명이고, 고등학교 과정이 14명이고, 나머지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대학 예비반입니다.

박성우
: 제일 어린 학생과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의 나이 차이가 어떻게 됩니까?

채혜성: 제일 나이가 어린 학생은 18세이고, 제일 나이가 많은 학생은 27세입니다. 9세 차이가 나요. (웃음)

박성우
: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부터 여명학교에서 일하셨습니까?

채혜성: 저는 개교할 때부터 있었어요. 2004년 9월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 어떤 계기로 이 학교에서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채혜성: 저는 역사를 전공했는데요. 제가 배운 역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그리고 저는 북한에 대해 늘 관심이 있었어요. 이 두 가지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이 학교여서 오게 됐습니다.

박성우: 지난 5년간 근무를 하셨고, 상당히 많은 학생과 수업을 하셨는데요. 기억에 남는 학생이 많으실 것 같아요. 한 명만 소개를 해 주신다면, 누가 제일 기억에 나십니까?

채혜성
: 저는 한 학생만 고르긴 어려워요. 대신 상황은 기억나는 게 있어요. 제가 처음에 2004년에 수업을 하는데, 조선시대를 가르치는 시간이었어요. 이성계에 대해서, 이성계가 나라를 어떻게 세웠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요. 북한에서는 이성계를 매우 나쁘게 보잖아요. ‘저 나쁜 놈’이라고 막말하면서 수업시간에 갑자기 굉장히 화를 내는 거예요. 그게 제가 피부로 느낀 남북한의 역사관에 대한 차이였어요. 그 시간이 지금도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아요. 매우 큰 충격이었어요.

박성우
: 여명학교에서 일하시면서 기뻤던 일, 슬펐던 일이 상당히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생각나시는 거 말씀을 부탁할게요. 먼저 기뻤던 일이 많으셨지요?

채혜성
: 네. 가장 보람 있고 마음깊이 뿌듯했던 일은, 작년에 저희 반 학생 중에 부모님 때문에 좀 상처가 많은 아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일에 굉장히 무기력한 학생이었는데요. 그 학생이 체육을 하고 싶어 했었어요. 사실 남한에서 체육을 하려면 굉장히 돈이 많이 들거든요. 그런데 제가 교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자원봉사자를 연결해주고, 그 학생이 그 순간부터 굉장히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 체대에 진학했는데요. 그 이후에 아이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많이 보람을 느꼈죠.

박성우: 체육대학교에 가려면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도움을 주실 분을 직접 구해주셨다는 말씀이군요?

채혜성: 그렇죠. 그 학생이 그 순간에 그걸 하지 않으면 아주 삐뚤어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시급하게 조치를 했었는데, 그게 그 아이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다는 걸 제가 알았어요. 그게 잘 맞아떨어졌다는 게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죠.

박성우: 또 어떤 일이 기억나십니까?

채혜성: 글쎄요. ‘스승의 날’이었는데요. 저희 학생들이 표현을, 그 시간에 대한 감사를, ‘스승의 날’ 때 자신들 나름대로 표현해 줬어요. 일단 교사로서는 그 순간이 감동을 주었고요. 평상시에는 별로 말이 없던 아이들이 와서, ‘사실은 이랬다’라고 말해주고, 졸업한 아이들이 와서 ‘선생님이 그때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왜 그때 혼을 냈는지, 왜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 이야기했는지를 이제는 알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뒤늦게라도 깨달아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일상에서는 매일 기억이 새롭고, 좋은 일들이 있는데요. 이걸 일일이 말하려니까 조금 그러네요. (웃음)

박성우
: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성의 표시를 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수업하시다 보면 느껴지는 북한 학생들의 특징도 있을 거 같아요. 예를 들자면, 남한 사람은 북한 사람이 좀 무뚝뚝하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잖아요. 직접 대면하다 보면 그런 게 느껴지시나요?

채혜성
: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자신을 ‘무장해제’하고 교사와 만나잖아요. 그래서 사실 무뚝뚝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학생 중에 북한에서 군인으로 있다가 온 학생들은 아무래도 좀 무뚝뚝하고요. 여학생들은 굉장히 사근사근해요.

박성우: 알겠습니다. 지난 5년간 기억에 남는 일을 여쭤보고 있는데요. 기뻤던 일, 기억에 남는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반대로 지난 5년간 이 학교에서 근무하시면서 슬펐던 일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채혜성: 교사로서 제일 슬픈 일은 학생들이 중도 탈락하는 거예요. 그것만큼 슬픈 일은 사실 없죠. 북한에서 여기로 와서 공부한다는 게 참 쉽지 않잖아요. 돈 벌 수 있는 시간도 포기하고 공부를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은 공부하고 싶지만, 돈을 벌고 싶은 욕심도 매우 많고, 혹은 주변의 상황 때문에, 여러 가지 여건상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이 있어요. 장기적으로 무단결석을 한다든가, 그러면 가출한 아이를 찾아가서 데려오고, 집에도 찾아가고 그러는데요. 결국은 그 아이를 놓치게 되면, 사실 그것만큼 교사로서 힘든 일은 없는 거 같아요.

박성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중도 탈락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중도 탈락 없이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됩니까?

채혜성
: 일단 우리 학교는 학력 인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봐서 남한에서 인정하는 학력을 따야 하고요. 그러고 나서 대학을 가는데요. 저희가 대학을 권장하는 이유가 있어요. 남한 사회에 바로 나가면 돈은 벌 수 있지만, 좋은 문화를 누리기는 어려운 구조잖아요. 그래서 좀 더 건전한 문화를 배우고 습득하게 하려고, 그런 창구로 대학에 진학하도록 권하는데요. 저희와 같이 공부하게 되면,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 진학까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직업 상담까지 해서 이 학생이 직업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죠.

박성우: 검정고시를 치는 걸 도와주고 대학 가는 과정을 지원해 주신다는 말씀이신데요. 제가 듣기로는 여명학교도 대안학교를 벗어나서 일반 정규과정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규과정으로 인정받는 게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를 말씀해 주세요.

채혜성: 저희가 대안학교를 포기하는 건 아니고, 대안학교 형태로 학력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거고요. 그리고 왜 학력인정이 필요하나면요, 사실 검정고시에서 요구하는 지식은 남한 애들에게는 필요한데, 북한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게 있어요. (북한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사실 적응하는 게 먼저잖아요. 남한 사회의 문화를 습득하는 게 먼저라야 하는데, (검정고시는) 굉장히 불필요한 지식을 요구할 때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식 교육이 차근차근 단계별로 이뤄지기보다는, 아무래도 시험이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더라도 시험 때는 시험에 맞춰서 교육해 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교육이 사실 불가능한 부분이 정말 있어요.

박성우
: 그래서 정규과정으로 인정받는 절차를 밟는 걸로 이해가 되는데요. 진척은 좀 있으신지요?

채혜성
: 저희가 추구하고는 있는데요. 아직 단계가 많이 필요하고요. 최종적인 목표는 2011년 정도에는 시험 없이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박성우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명학교에서 연구주임으로 일하고 계시는 채혜성 선생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희망하시는 데로 2011년까지 여명학교가 정규 교육과정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말씀 감사드립니다.

채혜성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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