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수경
오늘은 캐나다 밴쿠버 의 한인 노인회 회장인 한성후(75)씨의 사연을 들어보겠습니다. 한성후 회장은 북한과 캐나다의 우호적인 외교 관계 덕분에 90년대 초부터 북한의 가족들과 꾸준히 서신연락을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캐나다는 남북 동시 수교국으로 지난 2001년 북한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현재 사시는 밴쿠버는 어떤 곳입니까?
캐나다 서쪽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거기도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까?
네 한 7만명 됩니다.
한 회장님은 이산가족 이신데요, 고향이 어디신가요?
평안남도 평원군입니다. 평양하고 가깝습니다.
고향은 언제 떠나셨나요?
6.25 전쟁 때에 피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하고 피난 나오셨나요?
가족하고 같이 온 것이 아니라 저 혼자하고 누나 가족하고 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당시 평양 사범 전문학교 학생이었고 우연히 휘말려서 거제도에서 누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고향에 남은 가족은?
어머님도 계시고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형님과 동생들 동생들은 둘이었는데, 지금 살아 계신 분은 형님하고 제일 막내 여동생이 살아 있습니다.
그럼 현재 북한에 계신 형제분들하고 소식이 닿고 있나요?
네 자주 소식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미국하고 달라서 북한하고 캐나다는 정식 외교 관계가 있어서 편지 왕래나 소포 또는 돈 송금도 가능합니다.
언제부터 그랬었나요?
오래됐습니다. 한 20년 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년도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한회장님이 가족들과 처음 연락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90년대 초니까 한 17년전 부터죠. 92년도에는 고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약 보름동안 평양에 있는 누이동생 집과 형님은 함경도에 있는데 두 가정을 2박 3일동안 모두 개별적으로 방문을 했습니다.
50년 만에 형제분들이 만났었는데 2박 3일이 부족하셨겠어요
모자랐죠. 그러나 직접 집으로 찾아가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그 후에 3-4년 전에 아리랑 축전 때도 갔었어요. 2번 방문했죠.
가족들의 모습이나 고향의 모습이 많이 변했던가요? 많이 변했습니다.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사실 의료시설이 낙후됐어요. 그래서 약을 좀 보내달라고 그래서 제가 약방에서 살 수 있는 비타민이나 감기약 옷도 보내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주 서신 교환을 하고 계십니까?
처음에는 자주 했는데 요즘에는 2-3개월에 한번 합니다. 제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자주 편지 왕래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불찰이죠. 편지는 자주 받는데 답장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편지에는 주로 어떤 내용이 적혀져 있나요?
가족 문안이죠. 첫째로. 김정일 동지께서 잘 보살핌으로 잘 살고 있다는 것 하구여. 그런 것은 편지 마다 꼭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러이러한 것이 부족하니 방조해 달라고. 심지어 낚시를 하고 싶은데 낚시대와 운동하고 싶은데 운동화를 보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낚시대는 길잖아요. 소포로 보내기 힘들거든요. 조립식을 겨우 구해서 그런 것도 보내주었고 운동화도 다 사이즈가 다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도 제 나름대로 작으면 동생이 신겠지 크면 형이 신겠지 생각하고 보내기도 합니다.
북한에 계신 형제분들이 한회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든든하시겠네요.
많이 도움이 되기 보다는, 저도 사정이 좋지 못해서 제가 사업을 하다가 은퇴해서 놀고 있어요. 형편 닿는 대로 조금씩 돕고 있습니다.
그래도 북한에 계신 분들에게는 큰 힘이 될텐데요. 아무래도 북한이 여러 가지가 부족하잖아요. 또 캐나다는 선진국이잖아요.
통계학 상으로는 캐나다 밴쿠버가 첫 번째니 두 번째니 신문이 납니다. 특히 밴쿠버는 지금도 푸르름이 있고 그러니까 모든 나무들이 아름답고 하나의 공원 도시에 사는 것 같죠. 다른 도시에 가면 내가 살고 있는 밴쿠버가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은 많이 느낍니다.
밴쿠버는 또 세계적인 관광지로도 유명한데요, 고향에 계신 형제분들 한번 초대하고 싶은 마음도 있으시죠?
물론입니다. 모두들 초대하고 싶고 이곳 사는 것도 보여주고 싶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여주고 싶은데 통일되기 전에 그것이 되겠습니까? 우리 세대는 힘들겠고 다음 세대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평화적인 통일이 되어서 가족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고 가족을 방문할 수 있기를 저의 욕심일 뿐 아니라 북한이 고향인 많은 분들이 바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