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이야기: 엘리콧 시티 거주 실향민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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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수경 lees@rfa.org

오늘은 미국 메릴랜드주 엘리콧시티(Ellicott city)에 거주하는 다섯 분의 실향민을 만나봤습니다. 이들은 서로 고향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머나먼 타향에서도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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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랜드주에 거주하는 다섯 분의 실향민, 좌로 부터 유선길, 신중근, 김창재, 이영상, 신창훈 -RFA PHOTO/이수경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나무가 울창한 아름다운 도시 '엘리콧 시티'가 나옵니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크다는 베델한인교회에서 다섯 분의 실향민을 만났습니다. 평남 안주가 고향인 올해 77살의 김창재씨, 역시 평남 안주가 고향인 78살의 이영상씨,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77살의 유선길씨, 황해도 옹진이 고향인 77살의 신중근씨, 그리고 황해도 송림시가 고향인 75살의 신창훈씨가 이날 만남의 주인공인데요, 이들은 모두 북한이 고향이라는 이유로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날도 막 골프를 치고 오셨다면서 모두들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기자를 맞이하셨습니다.

"우리 일주일에 세 번은 만나지. 오늘도 사실 골프 치고 온 거야." "우리는 사고와 경력이 비슷해서 가까워 질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어." "이제 늙어 가면서 바쁜 일이 많아요. 노인회 가야지 재향군인회 가야지 황해도민회 가야지 교회도 출석해야지 골프 쳐야지" "이래도 모이고 저래도 모이고 얼마나 바쁜지 몰라"

서로 만나면 옛날 얘기서부터 시작해서 손자손녀 자랑까지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고 하는 데요, 이날도 해방 직후 있었던 추억들을 서로 나누며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신중근) 해방되고 해주 학교에는 소련군이 절반, 학생들이 절반이었는데 소련군들은 주둔해서 행하는 것을 보니까 한손에 시계를 대 여섯 개씩 차고 있었어요. (이영상) 시계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내가 일정 때 별로 좋은 게 아닌 것을 하나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소련 애들 시계를 보니까 좋은 시계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다만 태엽을 안 감아서 멎어 있더라고. 내 것은 잘 가고 있고. 그래서 그놈이 찬 시계가 좋아 보여서 바꾸자고 했지. (김창재) 그런 소련 놈들을 김일성은 해방자라고 하고 조국을 소비에트 로시아라고 하고 엉터리 같은 시대였지.

특히 이영상씨와 김창재씨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동창으로 머나먼 미국에서 다시 만난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인연인 만큼 소중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영상) 둘이는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해방 되서 헤어지고 미국 와서 다시 만난 것입니다. 세상 태어나서 어려서 같이 있었고 이제 세상 떠나려고 하니까 같이 있는 거예요.

실향민들은 남쪽 사람들과는 나눌 수 없는 아픈 추억과 경험들을 갖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다시는 갈 수 없는 고향, 그리고 외로운 타지에서의 고생. 그런 얘기들을 실향민끼리는 구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잘 알기에 더욱 가까워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영상) 미국에 와서도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이북에서 나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북 사람들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향 얘기를 하게 되고 그러니까 서로 모이게 됩니다. (김창재) 그리고 미국 이 근방에 평안도 도민회가 있고 함경도 도민회가 있고 황해도 도민회가 있고 각 도민회가 있어서 언젠가는 통일이 되는 것을 기원하고 서로 친교를 다짐해 나가고 있죠.

어릴 적 북한을 떠나 이제는 노인이 된 이들의 공통된 소원은 죽기 전에 고향에 한번 가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끔 이뤄지는 고향방문의 기회도 이들에게는 불만일 뿐이었는데요, 이유는 대부분이 고향방문이 아닌 평양방문으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창재) 냉면하나 먹이면서 보여줄 것만 보여주지 어디 가서 접촉을 할 수가 없어요. 전연 바깥세상 모르는 사람들하고 대화도 하고 자유롭게 택시타고 다닐 수 있다면 돈이 얼마나 들어도 가겠어. (이영상) 이건 뭐 김일성이 관련된 곳만 데려다 놓고 그렇지 않으면 산속으로만 갔다가 그것만 보고 오고 내가 뭐 하러 그런데 가. (유선길) 꼭 자고 오지 않아도 고향만이라고 한번 보게 해주면 얼마나 좋아. (신중근) 아는 사람이 북한 갔다 와서 얘기하는데 자기 누이동생이 셋이 있는데 고향에는 못가고 평양에서 누이동생을 만났는데 몇 천불을 주고 왔데. 그랬더니 동생이 "오빠 그 돈 가지고 지금 이북의 부자예요" 그랬데요. 그런데 고향에는 왜 못 가냐고 물었더니 고향에는 산사태가 나서 엉망이라 이거야 그래서 고향에는 안 보낸데 (이영상)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그 돈을 보내줘서 잘 산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데 고향에 가면 잘 사는지 못사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것이 핵심 문제지 산사태가 문제가 아닙니다.

돈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서로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는데요, 이산가족들은 북한의 가족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가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유선길) 내 경험으로 봐서 돈 주는 문제는 가족들에게 직접 몇 백 불 주는 것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그것을 회수해 가서 인민폐로 바꿔서 나눠서 주는데 (이영상) 그것도 한 번에 안 주잖아. 예를 들어 천불을 주면 처음에 50불을 주고 한 두 세달 있다가 50불을 나눠서 준단 말이야. 그것을 환산해서 인민폐로 주거든. 그 50불 받아서 무엇을 살 수 있나 말이야. (김창재) 내가 아는 사람은 처음 갈 때는 기분 좋게 돈 주고 왔는데 두 번째는 상대방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고 그래서 기분이 언짢았는데 그 다음에는 돈을 요구한단 말이야. 돈이 있으면 직장을 옮길 수가 있다고 그러면서. 그래서 이양반이 골치가 아파서 돈을 더 줘봐야 의심이 가고 그래서 나중에는 딱 끊었어요. 피눈물 나지만 동생하고의 관계 편지 다 끊었다고. 그것이 마음이 편하더라 하더라구. (유) 그 다음에는 가족이 당하는 거야

심지어 어떤 경우는 미국의 부유한 친척들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해 거짓 편지를 하는 북한 가족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북한 주민들의 처지를 아는 실향민들은 오늘도 북한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창훈) 그곳에는 자유가 없는 것을 잘 압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영상) 그저 죽지 말고 꾸준히 살아가면 어느 때에는 세상이 뒤바뀔 수도 있고, 좋은 세상을 볼 수도 있고, 그러니까 희망을 같고 죽지 말고 살아가세요. (김창재) 마음 놓고 살고, 표현하고, 여행하고, 종교를 가지고, 풍요롭게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기쁜 날이 오기를 바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