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 보고싶은 얼굴> 6.25 전쟁 이산가족 강치원씨

남북한 이산가족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산가족들의 나이가 고령화 되고 있어서 상봉가능성은 더욱더 희박해 지고 있습니다.

주간 기획 ‘보고싶은 얼굴’에서는 이산가족들의 애절한 사연과 이들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소망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6.25전쟁으로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과 생이별을 한 이산가족 강치원씨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강치원씨는 지금 미국 시카고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1931년 9월10일 생 강치원 이다. 본적지는 황해도 황주군 청수면 금강리 383번지. 아버지는 강수진.. 살아계시면 100세가 넘었을 것이다. 아마 살아계시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나이가 같았다.

내 밑에 여동생이 춘옥이 그 밑으로 남동생이 있었다. 남동생은 용삼이였다. 그당시 나는 이북정권때 인민위원회에서 있었다. 아군이 올라 왔었을때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있었다. 1950년 12월 4일, 1.4 후퇴때 남한으로 넘어왔다. 넘어온 뒤 군에 들어가 군생활을 약 15년했다. 부모님들은 2차대전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2차대전 끝날 무렵 북한으로 들어왔다. 만주에 있을 당시 아버지는 공산당이었다.

그런데 돌아와서는 민주당에 가입했다... 인민군 고급장교들도 많이 알았다. 만주에서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이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인민군 장교들과 친분이 있어서 오가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이 가까워 오면서 서로 연락이 끊겼다.

아군이 올라올 때 우리 형제가 남한으로 피난 간 이유로 처형되지 않았나. 혹은 만주로 피난가지 않았나.. 둘 중에 하나다. 서신 연락을 해도 답장이 없는 것 보면 둘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동생들이 살아있으면 만나보고 싶다....

미국에서 가족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강치원씨의 사연이었습니다. RFA 보고 싶은 얼굴에서는 이산가족들의 소식을 환영합니다. 저의 방송에서 들으신 사연이나 또 다른 사연들에 대해 연락을 주실 분들은 이메일, 전자우편 주소 choib@rfa.org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규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