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자신들의 탈북과정을 말하는 책들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남한에 정착한 탈북여대생이 자신이 태어난 함경북도 아오지에서의 어릴 적 추억을 남한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책을 냈습니다. 이진서의 “꿈은 이뤄진다” 오늘은 “금희의 여행”이란 책을 쓴 탈북자 최금희씨의 얘기입니다.
최금희: 여기서 고향이 어디예요 해서 아오지라고 하면 굉장히 놀라더라고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듣는 저에게는 그 자체가 굉장히 불편한거예요.

남한 사람들은 북한의 아오지라고 하면 북한에서도 가장 춥고 배고픈 곳으로 죄수들이 강제추방을 당해 탄광에서 죽을 때까지 노동을 해야 하는 그런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오지가 고향인 탈북여대생 최금희씨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흘렀던 마음 넉넉한 곳입니다.
최금희: 고향이기 때문에 따뜻했고, 그리운 고향이고 여전히 그 속에서는 너무 보고 싶은 때는 가끔씩 꿈속에서 나오는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그런 곳 같습니다.
1983년 생으로 이제 25살인 최금희씨는 현재 남한 외국어 대학교 중국어과 3학년 학생입니다. “금희의 여행” 이란 251쪽의 책에서는 오늘의 최금희씨가 있기 까지 아오지에서 서울까지 7,000km의 거리만큼이나 다양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담겨있습니다.
최금희: 제가 있던 고향에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썼어요. 학교생활 어떻게 하고 유치원 때는 어떻게 하고, 방학에는 뭐하고 봄, 여름, 겨울에는 뭐하고 놀고 이런 것을 자세하게 쓰고 물론 고난의 행군 때 힘들었던 시기도 썼구요.

최금희씨는 고등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과 언니 두 명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여섯 식구가 모두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말입니다. 중국과 제 3국을 거쳐 지난 2001년 남한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정착 초기 생활은 말 그대로 좌충우돌의 시기였습니다.
최금희: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부정적인 것이 많았었어요. 누가 말을 걸면 왜? 왜? 이런 식으로... 제가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제 마음을 줬던 그런 한국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었어요. 몸무게도 49kg 나가고 살도 많이 빠지고 3개월 동안 처박혀 있고 하니까 왠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힘들게 고향을 떠나고 중국에서 4년 동안 어려움도 이겨냈는데 고작 이런 상처를 받았다고 이런가 하니까 ...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가지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그때부터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내가 북에서 왔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어요. 고향이 어디에요 하면 당당하게 북한에서 왔어요 하고 용돈도 벌고...
한창 거울도 많이 보고, 생각도 많고, 감수성도 예민했던 청소년기를 막 벗어난 시기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행복이 최금희 가슴에는 와닿질 않았습니다.
최금희: 저는 여기 와서 잘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해서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그것이 저에게는 구석으로 모는 거였어요. 처음 여기 와서 내가 잘사는 방법이 뭘까 하니까 돈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20평에서 30평짜리 집을 사고 싶어 하고 30편에서 50평 좀 더 비싼차, 외제차 이러는데 그걸 저도 쫓아가다 보니까 힘들더라고요. 진짜 행복한 것은 내 자신을 아는 것이더라고요. 내 자신도 모르면서 남들을 안다고 하고 나의 아픔도 모르고 반항하고 슬퍼하고 그러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절대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면서도 때로는 맘처럼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 하루는 최금희씨가 펑펑 울며 남한생활이 힘들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을 때 “금희 너는 북한 사람 2천만 명 중에 여기 온 사람이니까 특별한 사람이야“라며 2천만분지 1일이라고 들려준 얘기는 언제나 부모님의 절대적 믿음과 사랑으로 최금희씨에게는 힘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학생활에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최금희: 즐거운 일이 너무 많아요. 전에는 유명한 책이라고 읽어도 하나도 몰랐는데 지금은 다시 그 책을 봤을 때 그게 이해가 되고 감동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 하고도 처음에는 말이 안 통했는데 지금은 누굴 만나도 북에서 왔다는 표가 안날 정도고 어느 정도 소통에 문제도 자연스러워지고, 지금은 어느 누굴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있어요. 1학년 2학년 때까지는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유럽을 시작해서 몽골 중국으로 다녔는데...그러면 뭔가 길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을 해보니까, 여러 가지를 따져봤어요. 돈도 벌어야 하고 싶은 것도 해야 되는데 좀 더 북한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금희씨는 현재 남한에는 만 명이 넘는 탈북자들이 살고 있지만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 같다면서 남한과 북한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자신이 언젠가는 분명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최금희: 제가 북한에서 살았다고 해서 북한을 아는 것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더 잘못 알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면 저희가 북에서 배운 것은 체제 내에서의 주입식 교육을 배웠고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 와서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흥분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나쁘다고만 하니까 뭔가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북한 사람이 적더라고요. 오히려 북한에 대해 적대시 하면서 나쁜 것을 말할 수 는 있는데 왜 북한 사회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아직 못 봤어요. 그래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북한을 말할 수 있게 대학원을 가려고합니다.
고향 아오지에서의 추억을 고이접어 마음 한편에 접어두고 최금희씨는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또 대학에서 친구들과 함께 소중한 자신의 인생을 가꿔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