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요즘 세상이 컴퓨터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에서는 컴퓨터가 그렇게 흔한 물건은 아니죠. 컴퓨터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자리에 오른 김소연씨의 성공 이야기는 그래서 더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컴퓨터를 처음 알았고 지금은 남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약하고 있는 탈북여성 김소연씨를 만나봤습니다.
김소연: 처음에는 너무 재밌더라고요.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만 해도 싫지 않았고... 타자부터 시작을 해서 워드도 배웠는데 배운다는 것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올해 32살의 탈북여성 김소연씨는 오늘도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푹 빠져 생활하고 있습니다. 김소연씨의 꿈과 희망이 바로 이 컴퓨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김소연씨는 북한에 중학교를 갓 졸업할 무렵인 1992년에 컴퓨터를 처음 봤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학교에는 컴퓨터가 없었고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자동화 대학이 있었는데 거기 가서 하루 정도 실습을 받았던 정도입니다.
그 후 탈북해서 김소연씨가 중국에서 다시 접한 컴퓨터는 완전히 요술방망이와도 같았습니다. 컴퓨터는 김소연씨에게 원하는 정보를 모두 주는 보물 상자였습니다.
김소연: 처음에 제가 IT를 접했을 때 놀라웠던 것이 인터넷으로 방송도 듣고,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다양하더라고요. 정보가 전혀 없는 나라인 북한에서 있었잖아요. 근데 중국에 나와서 인터넷을 접하고 보니까 이런 것을 해서 북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소연씨가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먹고 살길을 찾아 떠났던 것은 지난 1999년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너무도 아픈 과거이기에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과정을 들여 주는 김소연씨 목소리는 가늘게 떨립니다.
김소연: 금방 북한에서 나왔을 때 ...인신매매꾼들한테 납치가 됐었어요. 북한에 있을 때 참 어렵게 생활을 해봤지만 그렇게 까지 제가 세상풍파에 던져질지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제가 갑자기 중국이란 이국땅에서 납치를 당하고 엄마는 생사도 모르고 저와 헤어졌고 그래서 혼자서 중국 대륙에서 전전 긍긍하면서 보냈었어요. 참 얘길 하려면 너무 많은 얘기가 있는데...
김소연씨는 중국에서 식당일부터 시작해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우선은 목숨을 연명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외부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자신이 살고 있는 중국사회와 북한의 현실이 자연스레 비교되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컴퓨터를 알게 됐고 중국에서 컴퓨터를 배워야 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김소연: 컴퓨터 학원을 등록했어요. 그때 처음 윈도를 접하고 한두 달 정도 배웠는데 일을 해야지 생활이 안돼서 일자리를 찾았던 것이 PC방이었어요.
김소연씨가 말하는 PC방은 컴퓨터 장비를 갖춰 놓고 전 세계를 연결하는 인터넷을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김소연씨는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하면서 컴퓨터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는 PC방을 택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김소연: PC방 주인이 밤일만 시켰어요. 3개월을 그렇게 일하는 데 힘들더라고요. 마지막에는 카운터 돈 계산이 안 맞는다고 월급도 안주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일을 찾게 됐어요.
김소연씨는 인터넷에 난 구인광고를 보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연길로 갑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김소연씨에게 찾아 온 또 다른 기회였습니다.
김소연: 처음에는 조선족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가르치다 보니까 한국 아이들이 참 많더라고요. 연길에 보면 연변 과기대가 있는데 알고 보니까 아이들이 대부분 과기대 교수님들 자제였어요. 한 1년 일하다가 학부형의 추천으로 과기대에서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분의 추천을 받아서 참가하게 됐어요. 4개월 정도 했는데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배운 시기였어요.
김소연씨는 연변 과학기술대학의 단기 컴퓨터 프로그램 과정을 마치고 취업도 됐지만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한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중국 땅에서 가짜 신분증을 가지고 숨죽이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한계에 이릅니다. 김소연씨는 고심 끝에 2005년 한국행을 결심했고 그해 12월 들어갑니다. 그리고 꿈을 향해 달립니다.
김소연: 한국 들어와서 직업훈련학교에 갔어요. 거기서 6개월 정도 정말 기초에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맨날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또 남아있는 사람들과 토론도 하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그런 것 가지고도 회사 가기는 어려웠어요. 그런데 다 마치고 여기 저기 취업 이력서를 내고 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회사에서 저에게 오라는 거예요.
올해 4월부터 남한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김소연씨는 지금도 밤에는 책을 보면서 모자라는 컴퓨터 이론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김소연씨가 포기를 모르고 생활을 하는 것은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에 가능한 것일지 모릅니다.
김소연: 제일 어려웠던 것이 제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는 겁니다. 기술적인 어려움을 매일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하루 종일 끙끙 댈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 그런 생각도 해보지만 그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지난날이었습니다. 이렇게 행복한데서 뭘 이겨내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나, 하나 다 이겨냈고... 처음 3개월이 제일 어려웠어요. 동료들과 대화할 꺼리도 없고 했는데 지금은 고비가 지난 것 같습니다.
훗날 정보가 차단된 북한으로 돌아가 북한 주민들에게 컴퓨터에 대해 알려주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김소연씨는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김소연씨는 누구나 좌절을 딛고 일어서 주변을 돌아보면 반드시 길은 있다면서 희망을 포기 하지 않으면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김소연: 그때 어려웠던 것이 하나도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순간, 순간 어려웠을 때가 그게 보물이었다는 생각이듭니다. 그 보물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북녘 땅에 있고 중국에 계시는 어려움에 처한 분들 절대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말고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가야 된다는 것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어려움을 이겨나갈 때마다 정말 크고 값진 것이 쌓여서 큰 것을 이룰 수 있는 모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마시고 살아남아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