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북한인권을 위해 뛰는 탈북자들 박상학


200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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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기획 '남한의 보금자리' 이 시간에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남한입국 탈북자 중 몸을 아끼지 않고 남한에 벌어지는 각종 북한인권 관련 행사에 모습을 보이는 탈북자 박상학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지난 해 7월 남북 장관급회담 반대 기자회견 때 과잉 단속한 것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환자복 차림으로 참석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박상학 사무국장 - RFA PHOTO/이현기

박상학씨는 지난 1968년 양강도 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책 공업대 무선공학과를 졸업하고 김일성사회주의 노동자청년동맹 청년돌격대 선전 지도원으로 평양에서 활동한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의 사람입니다. 지난 2000년 남한에 입국한 그에게 몸을 던져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한다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지난해 7월 남한의 항구 도시인 부산에서 제 19차 남북 장관급 회담이 열렸을 당시 장관급 회담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남한 경찰에 강제연행 됐고 그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 까지 불사해 부상을 당하는 모습이 남한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입니다.

박상학씨는 결코 자신은 과격한 사람이 아니라면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뚜렷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상학: 김정일 독재 타도죠. 다시 말하면 김정일 수령 독재정권의 종식이 맞죠.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죠. 독재정권을 꺼꾸러트려야 그래야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든지 아니면 중국식 개혁 개방처럼 유연한 정권이 들어서든지 하지 그 잔인한 수령 독재를 두고 어떻게 북한주민의 인권개선이나 민주주의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박상학씨는 현재 탈북자들로 구성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지난 2003년 6월 창립 발대식을 갖고 이전에 활동하던 북한 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의 사명을 이어간 것입니다. 박씨는 자신의 생활안정 보다는 남한에 정착한 북한출신으로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남한국민들이 북한의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나타냈습니다.

박상학: 사단법인 단체가 된지 3년 됐습니다. 그리고 사단법인 단체 중에서 지정 기부금 단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부에서 승인을 해준 단체입니다. 기업이나 민간인이 기부금을 내면 어느 정도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기업이나 교회 등에 도와달라고 공문을 보내고 했지만 단 한곳도 답변 온 곳이 없습니다.

여기 풀타임으로 나오기 전에는 서울대학교 모바일 연구소에 있었거든요. 거기서 3년 일했습니다. 그리고 강철환, 안혁과 함께 단체를 만들면서 여기에만 전념하게 됐는데 대한민국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상품인 것처럼 순수한 동포의 인권차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하는 것도 있고 또 국민 대중적으로 관심도 가지지 않고 찬밥 신세죠 지금.

박상학씨가 대표로 있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북한의 인권 실상을 알리는 일은 물론 남한내 탈북자들의 인권보호에도 적극 앞서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활동을 잠시 살펴보면 2004년 4월에는 미국에서 있었던 유엔인권위원회 대북인권결의안 찬성 촉구 결의대회 참석차 20여명의 탈북자들로 구성된 대표단과 함께 미국을 방문 의회에서 북한인권의 참상을 증언 했으며 같은 해 시월에는 대북 삐라를 담은 대형 풍선이 북풍을 타지 못하고 방향을 잘못 잡아 남한의 도심을 흐르는 한강 주변에서 터지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뒤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대북 삐라는 남한 대통령이 살고 있는 청와대 인근에서 다시 발견돼 그들의 활동을 다시 한 번 남한 국민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중국내 탈북자의 강제북송 저지 운동 등으로 미의회 산하 인권단체인 NED 즉 민주주의를 위한 전국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박상학: 우리가 미국 NED에서 북한인권 조사 사업과 신문 발행 등을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받아서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후원도 작년 10월에 끊겼습니다. 금년 3월에 다시 후원을 받을 수 있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우리로서는 거의 생명줄과 같았습니다. 그런데다가 우리 강남 대치동에 있는 사무실도 천일 장학회에서 3년 동안 무상으로 쓰게 했는데 1월 중으로 사무실을 비워 줄 것을 장학회에서 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왜냐면 교육부에서 장학사업 이외 사업에 비용을 지출한다는 이유로 천일 장학회를 압박을 한다는 것이죠. 교육위원회에서 그랬는지 아니면 천일 장학회에서 3년 동안 지원을 해주다가 부담을 느껴 그랬는지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습니다. 천일 장학회 쪽에서 얘기 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박상학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단체에 대한 외부 지원이 없어 활동은 물론 개인생활에도 어려움이 많다는 남한생활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털어 놨습니다.

박상학: 소위 현 정권이 추진하는 햇볕정책, 한반도 포용정책 등으로 해서 북한인권문제는 빼고 김정일 정권을 지원하는 것이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돼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있다 보니까 북한 인권활동을 한다는 것이 힘듭니다. 결국은 자기를 희생하면서 하지 않으면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도 가끔은 관두고 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납니다. 정부에서 후원을 받나 기업에서 지원을 받나...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는 엄청 발전한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비례해서 너무 집단이기주의, 개인이기주의가 심하지 않는가. 북한은 너무 전체주의 사회고 여기는 지나친 개인주의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박상학씨는 남한에서 만난 탈북여성과 결혼해 아들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집안에서는 좋은 가장이 되기를 원하지만 아직은 그러질 못하고 있다면서 그저 훗날을 기약했습니다.

박상학: 우리 집사람한테 미안합니다. 개인을 위해서 생활을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개인을 위한다는 것이 가정을 위해 생활한다는 말도 되겠는데... 대한민국에서 성실한 세대주가 되려면 월급을 많이 들여놔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휴식 날이면 어디 놀러도 가고 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을 못 가졌습니다. 여기 남한에서 잘 알아준다거나 이름이 난다거나 그런 것을 바랬으면 이런 일이 아니라도 다른 일이 있겠죠. 여기 온 탈북자들은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비해 괜찮습니다. 엄청난 가난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두고 온 북한 동포들 그분들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나중에 고맙다 당신들이 남한에 가서도 우리를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그것이 위안이고 바램이겠죠.

박상학씨는 2007년은 더욱 많은 전단지를 에드벌룬 즉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내 외부의 소식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하는 것을 주 사업을 설정하고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이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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