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자신의 분야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35세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백의의 천사로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탈북여성 황경희씨의 인생은 더욱 값져 보입니다. 이진서의 “꿈은 이뤄진다” 오늘은 부산 세웅종합병원 간호사 황경희씨의 얘기입니다.

황경희: 수술할 것 같으면 복부를 다 열고 피가 철철 나와도 순간적으로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피를 피로 보면 안돼요. 처음에는 저도 많이 비위도 상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하는 것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황경희씨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북한에서는 6년 군복무를 마치고 회계원으로 일했던 여성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한에서 자신이 일했던 분야와는 전혀 다른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직업을 찾는데 나이라도 어리면 마음의 여유라도 있으련만 남한입국 때부터 황경희씨의 주변 여건은 급하게 돌아갑니다.
황경희: 나라에서 딱 35세까지(학비를) 대준다고 해서 제가 사실은 다음해에 선택을 하면 4년제에도 들어가고 할 수 있었는데 그 해에 선택의 여지도 없이 내가 기숙사 생활을 한 이유도 2월 달에 나왔는데, 3월1일부터 개학인데 딱 한 학교밖엔 자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경북 김천에 있는 간호전문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죠.
현재 남한정부는 탈북자들이 다시 학교를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고등학교는 만 25세, 전문대 이상은 35세까지 학비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 많은 일중 어떻게 간호사가 되고 싶었을까? 어릴 때 꿈이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황경희씨의 대답은 너무도 현실적이기만 합니다.
황경희: 다른 일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요. 읽어봐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병원이라고 생각을 하면 사람이 살아 있으면 어느 때던 병원은 존재할 것이다 해서 일단은 먹고 살자고 시작을 했죠. 그런데 하다보니까 간호사가 단지 먹고 사는 생계수단을 떠나서 일이 보람 있는 일이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꼈고...
남한사람들도 공부할 때를 놓치고 뒤늦게 학교를 가거나 취업을 위해 나이와 상관없이 재교육 훈련기관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사람들에게 그 성공의 비결을 물어보면 꼭 이런 대답을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황경희: 쉽지는 않았습니다. 힘들었어요. 제일 힘든 것이 의학 전문용어가 영어라 힘들었습니다. 학교 다니는 3년 기간은 밤에 많이 자는 날이 3시간 반, 보통 2시간이고 안자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냥 밤에 커피 계속 마시면서 커피로 버티면서 공부를 했어요. 그래도 그때는 안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넘어가더라고요. 또 견딜 수도 있었고 거의 잠을 안자고 시간을 바쳐가면서 하니까...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 죽기 살기로 뭔가에 매달리는 사람 앞에는 당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것을 황경희씨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황경희: 1학년 때 공부가 힘들었고 2학년부터는 조금씩 뭐가 뭔지 눈에 들어오고 또 애들은 주로 암기 위주로 했고요. 저는 이해를 위주로 많이 했어요. 그래서 3학년 때는 거의 성적이 한 50퍼센트 안에 들었거든요. 저희 학교가 간호사를 1년에 250명씩 배출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100등 안에 들었으니까 절반 수준에 들었죠. 그래서 국가고시 보니까 되더라고요.
하나의 관문은 잘 통과를 한셈인데 정작 이제는 취직이 문젭니다. 학교를 들어갈 때도 나이가 걸리더니 직장은 더합니다. 황경희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부산에서 제일 큰 병원중 하나인 대학병원에 지원을 합니다. 이사장이 실향민이란 사실 하나만을 믿고 찾아가 최종면접까지 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도합니다.
황경희: 내 딴에는 새 옷도 사 입고 갔는데... 결국 안됐어요. 그쪽 간호부장님도 미안해 하시고... 그 쪽에 될 수가 없었어요. 다 금방 졸업하고 한 사람만 가는데...(어린 간호사들이) 다 저를 쳐다보죠. 어디 이런 아줌마가 와서...
포기하는 사람에게 남는 것은 절망뿐이겠지만 그 고비를 넘긴 사람 앞에는 언제나 희망찬 미래가 있습니다. 황경희씨는 포기 하지 않았고 아는 분의 소개로 병상이 60개 정도인 외과전문 병원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보다 더 큰 병원으로 옮겨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황경희: 300베드 정도 되는 준 종합병원이고요. 여기는 간호사의 수가 모자라고 하니까...그리고 제가 경력이 1년 정도 있으니까 좋다고 했습니다. 여기로 옮기게 된 이유도 제가 처음 들어가서 수술실에 있었는데 수술방에서 수술을 할 수 있는 종류가 한정이 됐어요. 외과분야니까 맹장염, 탈장, 치질 그런 몇 가지 밖에는 안했습니다. 그래서 1년 있으니까 그쪽은 다 알겠더라고요.
황경희씨는 항상 새로운 목표를 세워놓고 쉼 없이 달리는 열차처럼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이쯤하면 됐다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황경희: 저는 솔직히 간호사가 싫어서가 아니고 여기서 만족이 안 되네요. 처음에 시작할 때도 벌어서 생계를 유지해야겠다 해서 시작을 했지만 지금도 생각을 하는 것이 공부를 좀 더해서 미국에 간호사로 취업을 할까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쪽으로 도전을 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5년 안에는 준비를 해서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이 옳은 선택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언제나 꿈이 있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내 운명의 주인인 사람에게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자신의 더 큰 꿈을 만들어 나가는 황경희씨는 뭐든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단지 환자의 아픔을 옆에서 간호해주는 백의의 천사이기 전에 황경희씨가 절망하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의 희망인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황경희: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은 자기한테 무궁무진한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또 미처 발견을 못해서 그런거지 ...누구든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서 도전을 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실이 이뤄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설사 내가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꿈을 꾸지 않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좋은 삶을 마련해 주겠습니까? 꿈을 꾸고 꿈을 향해서 도전하고 노력을 바칠 때 언젠가는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