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철도공장 용접공에서 세계적 조선소 일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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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북한에서는 정치범의 자녀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었던 한 청년이 이제 세계 10대 조선소 중 하나인 남한의 한진 중공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박무관씨는 현재 남한에서 세계로 수출되는 선박을 건조하면서 수출역군으로 또 아들과 딸 남매를 둔 한집안의 가장으로서 북한에서 포기해야했던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박무관: 큰 아이는 중국에서 낳아서 2개월 된 핏덩이를 안고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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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관 씨의 두 자녀- PHOTO courtesy of 박무관

함경북도 선봉군 출신의 박무관씨가 남한생활을 한지 이제 6년이 됩니다. 박무관씨가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초등학교 1학년인 딸과 6살이 된 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이제 미래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박무관: 아이들에게 얘기를 해줍니다. 꿈을 잃지 말라고 꿈을 가지고 생활을 하라고 ...너의 꿈이 꼭 실현되기를 기도한다고, 너는 꼭 큰사람이 될 거라고 계속 격려해 주고, 애들을 격려해주고 하니까 애들이 밝아지더라고요.

1974년생으로 34살인 박무관씨는 지난 1997년 탈북해서 중국생활을 거쳐 남한에 입국을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8살부터 철도공장 용접공으로 일했습니다.

북한 땅에서는 아무런 꿈도 가질 수 없었다는 박무관씨는 아버지가 동료들과 얘기를 하던 중 나라의 정치를 비방하는 말을 해서 시골로 추방을 당해 그곳에서 10년간 생활을 합니다.그리고 14살 때 다시 일반 사회로 나오지만 박무관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무관: 저는 정치범 자식이니까 대학도 군대도 못가는 처지가 되니까 학교 졸업하자마자 우리 동네에 있는 철도공장엘 들어갔죠.

박무관씨는 북한에서는 늘 정치범의 아들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녀 인생의 쓴물을 수없이 맛봤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래도 북한당국이 외쳐대던 구호들을 믿었건만 현실은 너무도 냉혹했습니다.

박무관: 그 나라에서 말하는 것은 ‘과거를 보지 않는다, 오직 본인만 잘하면 이 사회에서 인정해 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꿈을 접지는 않았죠.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우리의 뒤에는 정치범 가족이라는 누명이 따라 붙어서 포기를 했죠.

박무관씨는 지금 세계 10대 조선사 중 하나인 한진 중공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한진 중공업은 창립 70돌을 맞았는데 동양에서는 최초로 액화천연가스를 운반하는 선박을 건조하는 등 지난 1992년 이후 15년 연속 세계 최우수 선박 건조사로 이름을 떨치는 대기업입니다.

박무관씨가 하는 일은 거대한 선박의 전체 용접을 하는 겁니다. 북한의 철도공장에서 하는 일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최신 공법들이 동원이 됩니다.

저는 박무관씨와 얘기를 하면서 무척 안정감 있고, 마음의 여유를 갖은 사람이라 느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박무관씨가 있기까지 헤쳐나온 생활이 단단한 무쇠처럼 그를 단련시킨 탓일 아닐까도 생각을 해봅니다. 잠시 박무관씨가 중국에서 4년간 23번이나 이사를 다니며 살아야 했던 경험담을 들어보죠.

박무관: 하루, 하루 여기로 말하면 노가다를 했습니다. 겨울에는 석탄시장 가서 줄 창 서 있다가 사람들이 석탄사면 집까지 날라주고 여름에는 산사태 나면 흙이 흘러내린다고 돌을 쌓는데 그것하고 그런데 중국 사람이 일하면 10원을 주면 우리는 반값을 주죠. 그래도 그것에 감사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했죠.

박무관씨의 유년기 꿈은 군대를 가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북한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마음 편하게 두 다리 쭉 뻗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남한에서 살고 있는 박무관씨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더 큰 행복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박무관: 담배는 딸을 놓고 어린아이가 2,3개월 되는 것이 말도 못하면서 담배를 피면 찡그리더라고요. 그래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술도 회사생활 할 때는 좀 먹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딸하고 아들이 술 먹고 들어와서 애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 과격하게 노는가봅니다. 그래서 애들이 아빠 술 먹으면 안 놀아줄꺼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너희들보고 사는데 술 끊자 하고 끊어버렸습니다.

술 담배 안하는 것은 물론이고 매일 6시에 퇴근을 하면 한 시간 반 동안은 운동을 하면서 몸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자신의 환경과 과거 탓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박무관씨의 좌우명은 뭘까? 또 능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그만의 비결은 뭘까? 박무관씨에게 직접 들어봅니다.

박무관: ‘꿈이 있는 사람은 그 무엇도 참아낼 수 있다.’ 제가 생각해보면 탈북자들이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진짜 살자고 바둥,바둥 하면서 생활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 땅에서는 호구조사도 없지, 신분증 검열하는 사람도 없지, 잡아가는 사람도 없지 하니까 다 맥을 놓고 있습니다. 고기로 놓고 말하면 맥놓은 고기는 물살을 가르며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물쌀에 쓸려 내려가서 죽고 만다고요. 그런데 힘이 있고 진짜 팔팔한 고기는 폭포를 치면서 올라간다고요. 그리고 넓은 호수에 다 달아서 알을 놓고 자기 요람을 꾸리더라고요. 저 역시 우리 북한 사람도 맥놓지 말라고 우리는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