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고통을 이겨내면 행복의 기회는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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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이 시간에는 지난 1997년 탈북해 2003년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박영철씨의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박영철: 먹지 못해서 왔다고 하니까 뭔가 부족한 미개한 사람이 왔는가 하고 생각을 해서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박영철씨에게 중국에서의 7년은 좋았던 기억 보다는 가슴 아픈 기억들이 대부분입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경험하는 생활이 아니었기에 지나간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당시를 떠올립니다. 그중에서도 무시당하는 느낌은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박영철: 제가 97년에 중국에 들어갔는데 우리보다 수준이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먹지 못해 왔다고 하니까 사람을 먹을 것도 구입 못하는 무능하고 저능한 사람으로 취급을 하더라고요. 그때는 북한 상황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자기들은 쌀밥을 먹고 하는데 먹지 못해서 왔다니까 그런 취급을 하더라고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을 뭔가 모자라는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반인륜적 패륜아 취급을 하는 것은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어떻게 같은 인간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할 수 있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자신이 처한 기구한 운명이 저주스럽기 까지 했습니다.

박영철: 부모자식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나온 그런 인간성이 없는 사람으로 막 욕을 하더라고요. 당신이 만약 부모님이 살아계시는데 부모님이 앓아 죽을 때 같이 죽을 수 있겠는가 물었습니다. 살기 위해서라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중국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족을 데리고 같이 나올 수가 없었다고 말을 했더니 시끄럽다고 빨리 가라고 해서 제가 그 말을 듣고 힘들었습니다.

26살 젊은 나이에 박영철씨가 중국 땅에서 경험한 천대와 멸시의 감정들은 북한 땅에서 배고픔으로 힘들어 했던 것보다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자살을 할까도 생각을 했지만 그럴때마다 자신을 지탱해주는 것은 북한에 계신 부모님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 죽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번 더 발버둥 쳐보자고 참고 견디며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던 세월속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기회가 자신에게도 찾아왔습니다. 남한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겁니다.

박영철: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느껴 보니까 우리가 너무 쓸데없는 것을 많이 배우고 했다는 것을 느끼겠더라고요. 내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쓸데없는 것을 많이 배웠고 습관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한에 와서는 이곳 사람들과 같은 습관일 가져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야 되고 배워야 하니까 그런 과정에서 책을 보다 보니까 잘 머리에 기억되는 20대 보다 못하니까...

30대가 돼서야 남한 땅을 밟게 된 박영철씨는 힘들게 찾은 행복이기에 삶에 대한 애착이 남다릅니다. 이제는 왠만한 일에는 화도 잘 내질 않습니다. 참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몸에 베어버린 겁니다.

열심히 살아서 하루라도 빨리 주위의 남한 사람들처럼 잘살고 싶은데 자신이 20년 넘게 배운 북한 체제하에서의 교육과 남한 체제가 너무도 달라서 마음만 급합니다.

박영철: 남한 사람들은 자기가 알아서 앞길을 계획하고 준비를 하는 자립교육을 강하게 받고 그런 훈련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사회적응을 하는데 좋은데 북한은 교육을 받은 것이 위에서 시키는데로만 하는 습관이 있어서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하는 것이 많이 약하죠.

남한 사회를 이해하려고 시민단체 활동에도 자주 참석을 하고 북한의 실상을 말해 달라는 강의 요청이 오면 보수를 기대하지 않고 달려갑니다. 남한생활이 이제 한 4년 됐으면 어느 정도 남한이 어떤 곳이라고 말할 수 있을법한데 아직은 남북이 쓰는 언어 차이에서 오는 벽을 쉽게 극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영철: 한국말을 하다가 영어가 나오거든요 영어 단어가 나오니까 그 두 마디를 신경 쓰다가 보니까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 70퍼센트만 이해를 하는 겁니다.

박영철씨는 탈북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많은 병을 얻었지만 그런 것이 자신을 더욱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 줬다고 말합니다.

박영철: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전에 힘든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이제 나도 병이 나도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앞으로 겪을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는 힘을 가져다 준 것으로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에게 모자라는 부분들을 채워가고 있는 박영철씨는 이제 열심히 일하고도 돈을 못 받고 쫓겨 다니는 일은 없습니다. 자신만 노력하면 출신 성분으로 차별을 받는 일도 없는 남한에서 겸손을 배우며 새롭게 새 인생을 시작 하고 있습니다.

박영철: 배가 고플 때는 잘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배고픔의 욕구가 해결 되니까 나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앞으로는 그런 시련이 내 인생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삶을 잘 준비하고 대비해야겠다. 인간으로서 주위에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들을 보니까 나도 노력해서 행복해야 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노력도 하고 있고요.

박영철씨는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고 경제적 안정을 찾으면 신부를 맞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신부는 얼굴이 예쁘지 않아도 좋으니 마음이 곱고 음식 솜씨는 좋았으면 한다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