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자유에는 책임이 동반돼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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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자본주의 사회를 말할 때 흔히 함께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자유’입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체험하지 못했던 갖가지 자유를 경험하게 되는데 오늘 소개할 탈북자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합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남한생활 7년째가 되는 이행서씨의 얘기입니다.

이행서: 한번 위험을 무릅쓰고 온 걸음이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있는 것이고...

2001년 3월 몽골을 통해 홀몸으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이행서씨, 그 동안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간 남한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고향과 가족에 대한 생각은 벽에 걸린 수채화처럼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입습니다.

이행서: 자기가 옴으로 해서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저쪽 가족들이 탄압 받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가족형제들에게 죄스러움이 있는 것이고...

우선 그가 남한에서 경험한 것은 자유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소중한 특권이지만, 남용하면 위험한 것이란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행서: 자유를 위해 남한을 찾는 것이거든요. 저는 여기 오면 다 그냥 해결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유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고요. 자유가 좋긴 하지만 이를 누리려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고 능력을 갖춘 이후에는 자유에 대한 잭임을 본인이 꼭 져야 한다는 겁니다.

북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이 있고 당에서 하라는 것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지만 남한에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의 명령과 복종에 이미 30여년간 익숙해져버린 사고방식을 남한생활 몇 년 동안 전부 바꿔야 했습니다.

이행서: 저 자신이 많이 변한 것에 자신도 때로는 놀라고 하는데 저쪽에서 올 때 당시 제 인성, 성격 등 사나이 기질이라고 해도 좋은데 그런 것이 많이 변했습니다. 저쪽에서는 그런 기질이 사회생활 하는데 필요했던 것인데 여기서는 자유를 누리되 피해는 주지 않는 그런 자유. 자유에 책임이 있잖아요. 그런 것이 말로는 아는데 이해가 안 되던 지금은 행동으로 실현을 하는 겁니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못했지 남에게 피해를 주리는 자유는 하지 말자 그런 자신을 볼 때 어느 정도 사람이 되가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행서씨는 탈북해 중국 조선족 마을에서 2개월 정도 일을 하면서 남한 방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자신이 알았던 남한과 방송을 통해 알게 된 남한 사회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고 몽골을 통해 남한으로 갔습니다. 많은 탈북자들이 보통 탈북해서 남한으로 가기까지 평균 5년 정도가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이씨의 남한행은 너무도 신속하게 이뤄졌습니다.

북한에서는 기업소 자재인수원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당국에서 못하게 하는 개인장사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남한에서 살게 된 이상 좀 더 큰일을 해보자고 맘먹고 대학에 입학해 정치외교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행서: 저 같은 이북 출신들이 외교 쪽으로 공부를 해서 이쪽 사회에서 클 수 없을까? 또는 여기서 안 된다면 여기서 경력이나 학력을 쌓아 놨다가 나중에 이북이 열리게 되면 이북 가서도 정치 외교 쪽으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차원에서 공부를 한 것이 첫째고 이북 주민의 해방이나, 자유화에 관한 일을 열심히 해보고자 그런 뜻에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행서씨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지난 2005년 무난히 졸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30대 중반에 자신보다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학생들과 함께 통일에 대해 또 조국의 앞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일 때는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탈북해 남한에 간 것에 대해 사명감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이 끝나고 일반 사회로 나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행착오의 과정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행서: 학교 때와는 또 틀리네요.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꿈이나마 갖고 있었는데 졸업 후에는 취업도 잘 안되고 하니까... 일단 이 사회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비즈니스 쪽으로 뛰어 들었다가 많이 실패도 했고 그래서 그걸 접고 돌아온 거예요. 중국 가서 사업한다고 돌아다니다가요. 경륜도 중요하지만 돈이 있어야 돈을 밑천으로 해서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고 북한 주민을 위한 일을 하고자 해도 그쪽으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뛰어 들었다가 실패도 많이 본거죠.

이행서씨는 탈북에서 바로 이어진 남한입국 그리고 대학생활까지 어쩌면 일반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인생의 변화를 치루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뛰어다니고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목표를 향해 생활하지는 못한 것 같다며 그동안 자신의 남한생활에 대한 생각을 담담히 들려줬습니다.

이행서: 저 같은 경우는 빠르다고 옆에서는 얘기를 하는데 전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빠른 사람이면 사업한다고 무모하게 제 통장 다 털어서 해외 사업에 뛰어들고 하지 않았을텐데... 오히려 적응이 빠르지 않다고 한 사람은 한 직장을 지긋이 다니는 것이, 그런 것을 보면 인생이란 것이 참...

아직은 남한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정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일을 하든지 북한 출신으로 북한 주민들을 위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잊은 적이 없다고 이행서씨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시작한 것이 전단지를 풍선에 메달아 북한쪽으로 날리는 삐라 살포 작업입니다. 현재 이일은 자유북한인연합회를 통해 하고 있습니다.

이행서: 전단지에 많은 부분이 북한 사회의 현황, 독재자의 만행, 인민에 대한 기만행위, 독재자의 과거 경력 위조 이런 것을 북한 주민이 보면 많이 깨우침을 받을 것 같고 의식화 될 것 같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돼야죠. 한민족인데...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되데 문제는 빨리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는 겁니다. 통일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어버린 이행서씨는 힘들게 얻어진 제 2의 인생이기에 자신의 인생을 값지게 꾸며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행복의 시작을 단란한 가정에서 찾고 있었습니다.

이행서: 소박한 20-30평대 집이나 갖고 두 번째는 마음이 맞는 친구와 결혼을 해서 가족의 단란함도 그립고... 그렇게 되자니까 취업이 돼야 하겠는데.. 그런 쪽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하고 싶지만 이쪽에서의 정착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 직장을 주 5일 근무로 하고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 생활을 전단(삐라) 사업을 하면 어떨까... 제가 많이 요즘 고민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