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한 여름철 뜨거운 바깥공기보다 더 더운 세탁소에서 일하는 탈북자 최광득씨. 그래도 최씨는 아들 셋 뒷바라지를 하는데 꾸준한 수입을 보장하고 있는 자신의 세탁소 일이 고맙기만 합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오늘은 부산에서 2년 전 세탁업을 시작한 최광득씨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최광득: 그저 더위와 투쟁이지요. 다른 것은 힘든 것이 없습니다.
더운 것은 더운 것으로 다스린다는 한자말인 이열치열이란 용어도 있기는 하지만 무더운 여름철 좁은 공간에서 그것도 하루에도 수 십 벌의 옷을 다려야 하는 세탁소일은 분명 여름철에 즐길만한 일은 아닐 겁니다. 남한생활 5년차가 되는 최광득씨는 동네 세탁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죠.
최광득: 여름에 이안에 보일러가 있어서 스팀이 나오지 대단합니다. 실내 온도가 30도 정도 됩니다. 에어컨 안 켜면 더워서 일을 못합니다. 오전만 하면 일이 없습니다. 바지 와이셔츠 합해서 한 50장 들어오면 끝입니다.
최광득씨는 남한에서 용접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후 힘든 일은 할 수 없게 됐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있던 중 친구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놀러갔다가 또 한 번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최광득: 북에서는 탄광일을 했습니다. 여기 와서도 허리 디스크 와서 회사 생활을 못하거든요. 중국으로 보따리 장사도 하다가 친구가 세탁소를 하는데 보다가 학원에서 한 달 배우고 세탁소를 했습니다.
최광득씨는 동네손님을 대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크게 경기를 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세탁소 일은 아무래도 계절의 영향은 받게 되지만 1년 평균으로 치면 손님이 꾸준하다면서 사업성공에 비결을 들려줍니다.
최광득: 자기 노력이죠. 어떻게 발로 뛰고, 노력을 어떻게 하는가가 기본이지 하다가 때려 치우고 하면 세탁소 일도 못합니다. 세탁소일이 시간이 많이 요구되거든요. 자기가 약간이라도 껄렁껄렁해서 내일로 넘기면 일이 밀려서 못합니다. 저는 집이 가게하고 좀 멀어서 주말 부부라고 합니다. 집사람은 저녁이면 가고 제가 여기서 자고 그렇게 합니다. 제가 여기서 자니까 거의 문을 열다시피합니다. 저녁 10시면 사람이 없죠. 그러면 자죠. 그리고 8시 반이나 9시면 문을 엽니다.
최광득씨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최씨에게는 아들만 셋이 있습니다. 큰아들은 20살 그 다음이 11살, 12살 연년생입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큰 보물이라도 숨겨 놓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한데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안타깝습니다.
최광득: 지금 우리 큰애는 북한에 있을 때도 인민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왔습니다. 중국에서 한 4년 반 있다가 오다 보니 여기 와서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보냈는데 영어와 기초 지식이 딸립니다. 그래 공부를 하려고 안합니다. 따라가지를 못합니다. 막내는 6살에 오다 보니까 한해 유치원에 다녔고 둘째하고 같이 학교를 보냈습니다. 자기 이름자도 못쓰지 자기 나이도 못 세는 것을 어떻게 학교를 보냅니까.
최광득씨 가족이 탈북을 한 것은 지난 1999년 북한의 식량난이 심할때입니다. 그리고 남한에 입국하기 전까지 아이들의 교육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강제북송을 당하지 않는 것이 급선무였고 먹고 살기가 바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한에서는 신변안전에 대한 불안감도 없고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이 됐는데 배워야 할 시기에 학교를 보내지 못했던 최씨는 아버지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더욱 아들 공부에 최선을 다하라고 아이들에게 욱박지르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마음이 언제나 아들에게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최광득: 큰애하고 완전히 원수지간입니다. 큰애가 공부는 안하고 게임만 하자 들어서 계속 욕하는 게 그겁니다. 공부를 하라는데 자기는 따라 못 가는지, 자꾸 실망을 하는지...우리 애가 다니는 학교가 좀 수준이 높은 학교거든요. 그래서 실업학교로 올해부터 바꿔서 보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강하게 요구를 합니다. 무조건 공부를 해라 공부해야 먹고 살지 못산다. 아버지처럼 노가다 하고 세탁소에서나 일하려면 공부하지 말라고 계속 주입을 하거든요 그래도 어째 안 됩니다.
최광득씨는 주 6일은 세탁소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하기 때문에 단 하루 쉬는 날에는 모든 가족이 함께하길 원합니다. 아이들과 얘기도 나누고 고민도 들어 주면서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도 해줍니다.
최광득: 일요일은 아이들 데리고 바닷가에 나갈 때도 있고, 외식을 할 때도 있고... 우리 큰애는 나이가 많다 보니까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조끄만 애들은 초등학교 4학년인데 벌써 친구들끼리 놀겠다고요. 아버지하고 안나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일요일만 시간이 있으니까 무조건 잡아서 데리고 나가죠.
최광득씨는 가족의 행복은 각자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해갈 때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자신은 가장으로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은 학교 공부에 충실하고 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그는 요즘 이제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언론을 통해 북한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하루빨리 북에 있는 가족과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날을 기원해봅니다.
최광득: 요즘도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방문을 한다니까 고향 생각이 더 납니다. 북한에 동생이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북한에 비가 많이 왔다는데 피해가 없는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