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보금자리: 북에 내 친구들은 굶어죽었다 한 벌목공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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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들은 초기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대체로 3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남한사회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탈북자 지원단체들의 통계자료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탈북자 이설림씨도 남한생활 처음 3년간은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노동당 당원으로 90년대 러시아벌목공으로 갔다 온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 눈을 떠 북한을 탈출한 이설림씨는 현재 남한의 한 건설회사 운전수로 일하면서 작가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정착생활 이야기를 전하는 남한의 보금자리 이설림씨의 얘기입니다.

이설림: 단지 식량문제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99퍼센트가 식량문제로 탈북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조그만 체구의 다부진 탈북자 이설림씨는 이제 남한 생활이 만 5년이 됐습니다. 함경남도 출신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했던 지난 1997년 탈북한 이설림씨는 이제 더 이상 먹을 것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도 초기 정착에서는 다른 탈북자들이 경험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는 정도가 됐습니다.

이설림: 체제가 서로 다르니까 정말 힘듭니다. 4년째가 되면서부터 한국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8시간 노동하고 들어가는데 여기서는 이것저것 하니까 왜 나만 시키는가 하고 불평도 많았지만 5년 세월이 지나니까 알게 됐죠. 북한처럼 정해진 것만 하면 안 되고 1인 2역을 해야만 되는 사회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지시하는 것만을 하고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것은 요구하지도 않았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사회인 남한에서는 남보다 한걸음 앞서나가고 잘살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겁니다. 이설림씨는 같은 탈북자들이라도 남한입국 동기들 다시 말해 남한생활 기간이 비슷한 사람들과만 말이 통하기 때문에 남한생활을 갓 시작한 탈북자들과는 어울리질 않고 있습니다.

이설림: 지난 7월 나온 사람을 만났는데 정말 통하질 않습니다. 내가 한국 사회를 먼저 알았으니 내말을 들어라 했지만 듣지를 않습니다. 사장님도 그 사람 정착 시켜주려고 도와주지만 듣지를 않습니다.

이설림씨는 잠시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탈북을 하게 된 동기를 말합니다. 노동당 당원으로 북한체제를 위해 일했던 그가 외부 세계를 경험하면서 현실 세계에 눈을 뜬 이상 배고픔과 싸우면서까지 더 이상 북한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설림: 30살에 러시아 가기 전까지는 북한이 제일 좋고 지상천국이다 라고 생각하고 러시아 벌목장을 향했는데 두만강 철다리를 들어서니까 그때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이 이렇구나 북한은 고립되고 거짓말 사회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막노동을 안하고 사람들을 교육시키던 사람인데 러시아 가니까 달라졌어요.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 제가 30대 후반까지 살았는데 한국에 나와 보니까 정말 후회가 듭니다. 내가 왜 일찌감치 나오지 않았을까, 여기서 태어났다면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설림씨는 현재 남한의 한 건설회사 운전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건설 자재를 운반하는 일을 하지만 쉬는 날이면 자신의 꿈인 작가가 되기 위해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하는 습작일도 열심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남한 계간지인 휴먼 메신저에 두 편의 시를 선보였습니다.

이설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처자에 대한 그리움, 내 나라에 대한 그리움. 남북 땅이 전 다 내 나라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전 남북도 없고 똑같은 조선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차를 몰면서도 시상이 떠오르는 것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통일의 열차를 놓고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출 날은 꼭 올 것이다. 이런 시를 쓰고 또 구상하고 있습니다.

단독으로 탈북한 이설림씨는 북한에 가족을 남한으로 데려가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북에 있는 처가 도대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푼푼이 돈을 모아 생활비를 북으로 보내던 것도 이젠 그만 뒀습니다. 나름대로의 극약 처방을 내린 겁니다.

이설림: 지금도 북에는 처자가 있습니다. 이념이 달라서 그런지 오라고 해도 안 옵니다. 전쟁도 아닌데 이런 비극이 있다는 것은 비극이죠. 텔레비에서 납북자, 실향민 상봉행사가 있을 때마다 저는 화면을 끕니다. 언제면 이런 비극이 없어지겠는가 이런 것뿐이죠. 그동안 중국을 통해서 집으로 돈을 보냈습니다. 최근에도 돈을 보내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런데 매정하게 짤랐습니다.

이설림씨는 이제 남한에서 당당한 직업인으로 또 예비 작가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처럼 키가 작다고 꿈을 접어야 하는 설움도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는 아직도 키가 155센티미터였기 때문에 북한에서 무대에 설수 없었던 것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북한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 남한생활을 한마디로 전할 수 있겠는가 부탁을 했지만 이설림씨는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설림씨가 북한 사회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설림: 내가 러시아 갔다 와서 친구 만나서 남조선에 가자고 했더니 그 친구가 남한가면 남산 지하실에다 놓고 다 죽인답니다. 나이도 같고 같이 군대 생활한 친구인데 그럽니다. 그래서 내가 머저리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믿질 않았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굶어죽었습니다. 친구 3명이 굶어죽었습니다. 내 처를 통해서 다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같이 다닌 친구들인데 다 굶어 죽었습니다.

이설림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3.5톤 트럭을 몰면서 남한 사회를 누비고 다닙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또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