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에서 상영된 ‘탈출기’란 영화를 찍을 때 영화의 효과를 높기기 위해 진짜 열차를 폭파하도록 허락을 해줬다고, 고 신상옥 감독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영화제작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는 김 위원장이지만 북한에서 꿈나무들이 영화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 삶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남한의 보금자리‘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탈북 대학생 김영철씨의 얘기입니다.
북한 사람이 한국에 어떻게 와요. 저 같은 사람이..어쩌다 보니까 왔어요. 기적이예요 기적, 저는 다시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북한에서 지난 1996년 식량난으로 인해 13살 때 탈북을 한 김영철씨는 아직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인민학교 과정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김씨는 지금 남한에서 영화감독의 꿈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김영철: 북한은 신분 사회다 보니까 그런 공부는 하고 싶어도 못했고 한계가 있었고 어릴적 꿈이었죠. 그리고 어쩌다 보니까 한국에 왔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거고, 아무 이유 없이 택한 거고 두 번째는 북한에 관련된 일을 하려다 보니까 아무래도 다른 쪽은 내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까 많이 막힐 것 같고 그래서 예술 쪽을 택했어요.
김영철씨는 현재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2학년으로 연기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7년을 살았고 남한으로 왔을 때는 이미 성인이 돼있었습니다. 남한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와 중.고등 학교 12년 과정의 졸업장이 필요했습니다.
김영철씨는 정규교육 과정보다는 검정고시를 보는 길을 택하고 중학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3년에 끝냈습니다. 혼자 노력해서 대학을 가기 위한 조건은 만들었지만 남한사회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영철씨에게 해주는 사람은 주위에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된 지금도 남한사회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김영철: 왜 이런 혼란을 겪어야 하나 ...자유라는 개념도 서로 다르게 인식해야 하고 복잡해져요. 대학생이고 많이 배워야 하고 알려고 하는 것이 많다보니까 그런가 봐요.
김영철씨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쉼 없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철: 저의 숙제인 것 같은데 일단 영화로 표현한다면 목적이 통일이니까. 어떻게 하면 60년의 세월을 헤어져 있었기에 앞으로 서로 이해하기 위해 영화로 보여주자면 일상생활, 그러니까 정치를 벗어난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북한하면 미사일, 악하고 질기고...그런데 지도를 그리면 남한만 그리지 않잖아요. 결론적으로 북한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겁니다.
김영철씨는 영화제작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살았던 북한의 현실과 현재 남한에서 살고 있는 만 여 명의 탈북자들의 삶을 편견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얼마나 많은 남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봐줄지에 대해 생각하면 두려움이 앞섭니다.
김영철: 북한에 대해서 아예 관심이 없어요. 지금 젊은 사람들은 통일? 난 모르는 일이야 이런 식이어서 아예 대화가 안 되고요. 드문이 물어보는 것이 북한 여자 예쁜가? 그런 거예요. 관심조차 없으니까...
김영철씨는 남한에서 상영이 되고 흥행을 한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나 뮤지컬, 가무이야기에 대해 스스로 평가해보면서 자신이 만들게 될 영화 주제와 이야기 구성 등에 대해 나름대로 차근 차근 밑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구상과 관련해, 영철씨는 남북한 사람 모두 재밌어하는 것은 같지 않겠는가 하고 같은 사람들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김영철: 예술이다 보니까 과장하고 나쁜 쪽으로 많이 갔는데 북한 사람들도 사람이잖아요. 월컴투 동막골 영화처럼 인간적인 면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서로 죽여야만 하고, 살려두면 안되고, 너는 빨갱이고 너무 정치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면이 있고... 공동경비구역의 경우는 인간적으로 그렸잖아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나 지금은 배우는 과정이고 꿈이죠.
김영철씨는 남한 생활이 5년 정도 되지만 아직도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24살의 성인이 돼버린 그는 앞으로 자신의 꿈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과 함께 어떻게든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 없이 남한사회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김영철: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영화 하나 만들어지는 것이 지금 기본이 여기 돈으로 10억, 미국 돈으로는 100만 달러라고 하는데 내가 30-40이 돼서 만든다면 그때는 아마 100억이 돼야 만들지 않을까 생각도 하는데 내가 돈이 있어서 서울예대를 들어 온 것도 아니고 ...
하지만 김영철씨는 당장 한편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돈 대주겠다는 후원가가 나서서 그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오는 날을 그냥 앉아서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을 위해 성실하게 실력을 쌓고 꾸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영철: 손이 닳도록 발이 닳도록 물어보고...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지겨워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그런데도 너무 부족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