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북한에서는 동의사라고 말하는 직업은 남한에서는 한의사라고 합니다. 탈북자 1호 한의사는 박수현 씹니다. 박수현씨가 남한에서 인기 직업중 하나인 한의사가 된 과정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뼈를 깎는 듯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박수현: 마음만 굳게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 어떤 것도 해나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나이도 상관없습니다.

서울의 위성도시인 성남이란 도시에는 ‘묘향산 한의원’이 있는데 이곳은 바로 탈북자 출신 제1호 한의사인 박수현씨가 6년째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28살의 나이에 남한에 간 남한 사람도 공부하기 힘들다는 한의과 대학을 가겠다고 했고 결국 한의사가 됐습니다. 북한에서도 군복무시절 1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청진 의과대학 한의학부를 다니기는 했지만 박수현씨의 결정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정말 회의적이었습니다.
박수현: 내가 경희대를 간다고 하니까 아예 꿈을 꾸지 말라는 겁니다. 너 같은 얘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진짜 어렵고 설사 들어가도 공부는 못할꺼다. 아마 몇 달 있다가 쫓겨날 것이라고 보는 사람마다 그렇게 얘길 하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어렵기는 어려운가 보다 그런 생각으로 굉장히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학교에 입학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는 고등학교 때 성적이 전교 1 퍼센트 안에 드는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는 곳이 한의과 대학이고 한의과 대학 중에서도 박수현씨가 지망한 곳은 최고의 명문대학입니다.
남들이 아무리 만류를 해도 다른 한의사들처럼 똑같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국가시험을 거쳐서 한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박수현씨가 남한에서 일한 첫 직장인 화장품 회사에서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수현: 94년 9월에 태평양에 들어갔는데 거기 학술개발실에 들어갔었습니다. 학술개발실 연구개발팀인데 거기 들어가니까 더군다나 제가 하는 일은 없었거든요. 이렇게 하면 허성세월을 보내고 한국에 와서 아무런 의미가 없이 내 인생이 너무 허막(허망)하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는 일은 특별하게 없었습니다. 학술개발실에 들어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 사이에 묻혀서 살아가는 것이 편할 수는 있지만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에게 도전이란 말은 항상 버릴 수 없는 그림자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박수현씨는 그의 평범했던 생활이 불안했던 겁니다.
박수현: 전철타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이게 반복이 됐고 제가 한국에 왔을 때 28살이었는데 장가도 가야하겠는데 데이트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북한에서 왔다고 하니까 완전히 외계인 보듯 했고 내가 대한민국 회사에 다닌다고 해도 어딘가 물에 뜬 기름과 같은 인상을 강렬하게 받고 내가 뭔가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겠다.
결국 화장품 회사에서 수습기간 5개월을 끝으로 다시 한의학 공부를 합니다. 지난 1995년 경희대학교 한의대 예과 2년에 들어갔고 6년 과정을 무사히 졸업한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박수현: 일단 친구들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94학번 내 친구들하고 같이 다니지 않았으면 졸업을 못했을 겁니다. 영어가 어려웠기 때문에... 한국 친구들은 영어 원서를 우리나라 글같이 읽는 거예요. 저는 전혀 모르니까 그런 것을 다 번역해주고 족보 만들어 주고 해서 ... 그 친구들이 없었으면 저는 졸업을 못했을 겁니다. (기자)졸업과 동시에 한의사 국가시험에 합격을 했나요? 박수현: 바로 됐습니다. 2001년 시험을 봐서 4월에 한의원을 개업했습니다.
단번에 한의사 자격시험에 합격을 하고 바로 한의원을 개원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시작한 박수현씨는 자신의 한의원 문을 열면서도 경제적인 걱정은 없었습니다.
박수현: 여기가 처가 건물이었으니까 장인어른이 세가 안 나오면 안 받고 할테니 아무런 부담도 없이 그냥 편한 마음으로 하라고 해서 그냥 개업을 했습니다. 한의원을 다 꾸려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개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 주변에는 또 그를 돕는 많은 조역자들이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수현씨는 한의원의 이름인 ‘묘향산 한의원’에 대해 묘향산에서 군대복무 8년을 했고 군에서 대학을 추천받아서 청진 의대를 갔다며 그때 초발지심으로 다시 대한민국에서 첫발을 내딛는다는 심정으로 묘향산 한의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합니다.
남한생활 14년에 한의원 원장으로는 6년, 지금도 박수현씨는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박수현: 한의학 쪽에서 한의사는 됐지만... 한의학 석사는 마쳤거든요. 그래서 지금 박사과정 2학기를 들어가고 있는데 북한에서 많은 사람도 오고 하니까, 남북통일도 된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먼 훗날 일이고. 내가 잘할 때 북한에서 오는 후배들이 나를 보면서 많은 심신을 가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귀순자들도 아파서 많이 오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내가 진료를 하고 잘돼있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기뻐하고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그렇게 돼야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전에는 남북통일에 대해 막연하게 추상적인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내 차체가 굳건히 살 때 다른 사람이나 내 형제들도 그렇고 다 바른 길로 되겠다는 그런 꿈이라도 가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수현씨는 자신의 이름 앞에 늘 붙어 다니는 탈북자 1호 한의사로서 또, 11살 된 아들과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을 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지금 현재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불가능이란 단어는 가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박수현: 자기 마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다 궁지에 몰려있고 이것이 나락이라고 생각을 했을 때는 그것이 다른 시작점이라고 생각을 하면 되거든요. 내가 정말 어렵다고 거기 주저앉아서 쓰러지기 보다는 여기가 끝이니까 다른 세상이 열리는구나 하고, 지금 서 있는 것이 시작점이라고 생각을 하고 마음만 굳게 먹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그 어떤 것도 해나갈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