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하노이를 선택한 이유는?

서울-박성우, 고영환 parks@rfa.org
2019-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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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미북 정상회담의 무대가 된 하노이 전경.
2차 미북 정상회담의 무대가 된 하노이 전경.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윁남)의 하노이를 원했던 이유를 분석해 봅니다. 오늘도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지난주에 베트남의 하노이가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개최지로 결정됐는데요. 먼저, 그 과정을 짧게 설명해주시죠.

고영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 미북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사이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것이라고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밝혔습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북 정상이 사상 처음으로 만난 지 8개월 만에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나 북한의 비핵화와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회담 개최 시기와 관련하여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의견 차이가 없었으나, 회담 장소에 대해서는 서로가 베트남의 다른 도시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은 휴양 도시이며 경제 발전의 상징 도시인 다낭을 선호하였으나, 북한은 대사관이 있고 수도로서의 상징성이 있는 하노이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회담 장소로 수도 하노이가 선정된 것은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북한에게 미국이 장소 문제를 양보하고, 실리를 중시하는 미국은 그 대신에 2차 미북 정상회담의 본질인 북한의 비핵화에서 진전을 이루고 싶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베트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리고 북한 지도부에게 하노이는 어떤 상징성이 있나요?

고영환: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북한의 노세대는 미국과 전쟁을 하였던 베트남, 그러한 베트남을 지원하였던 북한을 떠올리고, 반면에 젊은 세대는 베트남이 개혁과 개방을 하여 발전하고 있는 나라 정도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김일성이 두 차례에 걸쳐 방문했던 곳이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1958년과 1964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호지명(호찌민) 당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미국과 베트남이 전쟁을 할 때 북한은 군대를 보내 북부 베트남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도 미국의 요청을 받아 참전하여 남부 베트남 편에서 싸웠습니다. 남북한이 이국땅에서 서로 싸운 과거가 있는 것이죠.

김일성 주석이 파병을 할 정도로 유대관계가 강했던 양국 관계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냉각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베트남과 북한은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습니다. 이런 베트남을 할아버지 김일성의 뒤를 이어 약 55년 만에 김정은이 방문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베트남 방문이 미북 정상회담 외에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베트남이 북한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싸웠던 나라이지만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한 뒤에는 중국에 이어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정은이 이번 베트남 방문을 통하여 비핵화를 하면서 미국과 화해를 하고 베트남처럼 경제적 기적을 이루는 나라로 만드는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박성우: 김일성 주석이 베트남 파병 사실을 숨겼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사실인가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북한이 북부 베트남군 편에서 싸운 사실을 비밀로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김일성 주석이 미국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남한이 베트남전에 군대를 파병할 때 북한은 ‘미국의 총알받이’라며 한국과 한국군을 거칠게 비난하였는데, 북한도 베트남전에 파병하는 사실 자체를 북한 인민들이 알게 되는 경우에 ‘우리도 똑같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고, 이를 감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 때 공군 조종사와 수송부대 인력 등을 파병하여 북부 베트남을 도왔습니다. 1966년 9월 미그-17과 미그-21 전투기 조종사들을 파병하여 도와주겠다는 북한의 지원 요청을 북부 베트남이 받아들였고, 87명의 북한 미그기 조종사들이 베트남 상공에서 미국의 팬텀 전투기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당시 14명의 조종사와 정비사가 전사했습니다.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은 이국땅에 묻혀 있던 북한 공군 조종사들의 시신을 찾아와 열사묘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비밀에 부쳤던 북한군의 베트남 파병 사실을 당과 군 간부들에게 공개하고,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는 북한군의 베트남 참전 사실을 알려주는 전시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건 남한 사람들은 잘 모르는 내용이죠.

박성우: 북한과 베트남의 외교적 관계는 풍파가 좀 있었죠. 설명을 좀 해 주시죠.

고영환: 중국처럼 베트남도 북한과는 가깝고도 먼 나라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김일성 주석과 호지명 주석은 세 번이나 상봉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좋았던 북한과 베트남의 관계는 1978년 12월 통일 베트남이 캄보쟈(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극도로 악화됐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베트남이 같은 사회주의 나라인 캄보디아를 침공한 ‘배신자’, ‘의리 없는 국가’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킬링필드, 즉 죽음의 땅의 통치자로 유명한 폴 포트를 지원하였으며, 심지어 평양에는 폴 포트의 ‘민주주의 캄보쟈’ 대표부가 상주하게 하였습니다.

북한과 베트남 사이의 냉랭한 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9월 북한 건국 40돌 행사에 당시 베트남 주석이 참석하면서 양국 관계가 정상화됩니다. 이 사실은 당시 북한 외교부에서 베트남 주석의 방북을 추진하는 그루빠에 제가 속해 있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이 개혁·개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미국과 베트남이 1995년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양국 관계는 나빠지게 됩니다. 특히 북한이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독살 사건’에 베트남 국적 여성 도안 티 흐엉을 고용한 것으로 나타나자 양국 관계는 급속한 냉각기를 겪었습니다.

그런 베트남을 김정은이 방문하는 것입니다. 아시아 국가 중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 미국과 화해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김정은이 어느 정도까지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정상화 과정에 대한 경험을 받아들일지, 그리고 더 나아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비핵화에 대한 진지한 합의가 이뤄질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미국이 회담 장소로 베트남을 선택하면서 북측에 하고자 했던 말은 뭐라고 보십니까?

고영환: 2018년 7월 8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회를 잡는다면 미국과의 정상적 외교 관계와 번영으로 가는 베트남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은 과거의 적들과도 약속을 지킨다고 말하면서 1995년 미국-베트남 수교 이후 체험한 베트남의 경험이 수십 년간의 갈등과 불신을 겪은 북한에도 번영과 파트너십, 즉 동반자 관계가 가능하다는 증거가 돼야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미국의 AP통신이 보도했습니다.

북한과 베트남은 이전에 다 미국과 전쟁을 한 나라들입니다. 그중 베트남은 이미 미국과 화해하여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도 비핵화를 하여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하자는 의미에서 베트남을 2차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2월 28일 북한과 미국 사이에 정말로 진지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박성우: 남북한 현대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국가 중 하나가 베트남이라는 점을 오늘 방송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베트남에서 열리는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역사의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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