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주 이후 북한 외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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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북한의 외교를 살펴봅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부원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북한의 외교를 상징하던 인물인 강석주가 지난 5월 20일 사망했죠. 이후 북한 외교의 새로운 진용이 구성됐는데요. 먼저 강석주에 대해서 살펴보죠. 어떤 인물인가요? 그리고 강석주의 사망이 북한 외교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고영환: 1990년대 북미 핵협상을 위한 고위급 회담 대표로 활약하며 북한의 대미외교를 장기간 총괄했던 강석주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지난달 20일 식도암으로 사망했다고 조선중앙방송이 다음날 보도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 불어과를 졸업한 뒤 당 국제사업부 지도원, 과장, 외무성 부상, 제1부상 등을 역임한 강 전 비서는 북미 대화가 처음 시작된 1990년대 북한의 대미외교를 상징하는 인물로 세계에 각인돼 있습니다. 그는 1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미 고위급회담 북한 대표로 미국 측 수석대표인 로버트 갈루치 당시 북핵 특사와 오랜 줄다리기 끝에 1994년 '북미 기본합의서'(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던 인물입니다. 강석주는 2014년 4월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로 임명돼 명실상부한 외교 사령탑 지위에 올랐습니다. 2015년 8월 이후에는 건강상 이유로 공식 활동을 중단했었죠. 김정일의 핵외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 강석주의 사망은 핵무기를 만들려고 애를 쓰며 핵보유의 이른바 불가피성을 설파하던 북핵외교의 1세대가 떠났음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박성우: 강석주의 사망과 관련해서 하나 더 여쭤보겠습니다.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는데, 김정은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을 대표하는 외교관의 장례식인데 최고지도자가 참석하지 않은 거죠.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그리고 최룡해가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강석주 전 비서의 장례식이 지난 달 22일 평양에서 국장으로 진행됐습니다. 국가장의위원회가 구성되고 최룡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장의위원장을, 황병서, 박봉주 등 53명이 장의위원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날 장례식에는 황병서, 박봉주, 최룡해 등 장의위원과 유가족이 참석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김양건 전 통일전선부장의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엔 조화만 보냈습니다. 같은 급의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사망했는데 한 사람의 장례식장에는 나타나고 다른 사람의 장례식장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은 분명하게 신임도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김양건 전 비서와는 각별한 친분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대남담당 비서였던 김양건이 김정은을 지난 해에 가장 많이 수행한 간부 중의 한 명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강석주는 그 동안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날이 많았고 그래서 직접 김정은과 만날 기회가 적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정은도 인간인 만큼 자신이 총애했던 사람의 장례식에는 찾아 갔고 그다지 신임이 두텁지 않았던 강석주의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최룡해가 강석주 전 비서의 장례위원장으로 된 것은 비서직의 후신인 정무국 부위원장 중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당 서열이 가장 높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됩니다. 향후 최현의 아들인 최룡해가 이른바 '백두혈통'의 화신으로 승승장구할지가 주목이 되는 부분입니다.

박성우: 강석주를 이어서 북한 외교를 대표할 인물은 리수용과 리용호입니다. 어떤 인물입니까? 그리고 이 둘의 조합이 잘 어울린다고 보시는지요?

고영환: 리수용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오랫동안 스위스에서 공사참사, 대사로 활동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스위스 유학 시절 뒷바라지를 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 일가의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김정은의 유학시절 그가 외출할 때마다 가족처럼 항상 동행하고 온갖 시중을 다든 일종의 김정은 후견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리수용은 2012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 부부장으로, 2014년 4월에는 외무상으로 승진하였습니다. 그리고 7차당대회에서 국제담당 부위원장으로, 정치국 위원으로 되었습니다. 외교 소식통들은 "리수용이 거의 현지인 수준으로 외국어에 능통하며 매너가 좋은 외교관"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된 리용호 외무성 전 부상은 최근 북한의 새 외무상에 기용됐습니다. 한국의 대북 소식통은 지난 달 10일 "기존 외무상이던 리수용이 이번 당 대회에서 당 중앙위 부장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리용호 부상이 외무상에 오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리용호는 올해 62세이고 그는 김정일 시대 숨은 실세였던 이명제 전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의 아들입니다. 평양외국어대에서 영어를 전공했으며 외무성에 들어온 후 미국국 부국장과 영국주재 대사를 지냈습니다. 2010년 외무성 부상으로 승진하였습니다. 1994년부터 미북 대화에 참석했고, 북핵 현안에 대해 외신과 영어로 인터뷰를 할 정도의 외국어 실력도 갖춘 인물입니다. 저는 이번에 리용호가 외무상으로 된 것은 리수용 당 부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리수용이 스위스 대사 겸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을 할 때 리용호 외무상의 부친 이명제도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으로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입니다. 이명제와 리수용의 친분관계가 있었고 이 연줄로 리수용이 김정은에게 후임 외무상을 건의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해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강석주-김계관 선보다도 리수용-리용호 선이 조합이 잘 맞고 호흡도 더 맞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리용호가 아버지벌인 리수용을 잘 받들 것이고 리수용도 친구 이명제 부부장을 보아 리용호를 잘 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성우: 리수용과 리용호의 최우선 임무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강석주 전 비서의 사망으로 북한의 외교 라인, 즉 외교통은 리수용 당 국제 담당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의 '쌍두 체제'로 재편됐습니다. 대북 전문가들은 리수용 리용호의 '리-리' 외교체제가 '강석주 시대'보다 유연하면서도 공격적인 외교를 펼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스위스와 영국 등 유럽에서 대사를 오래 지내 서방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 북한의 입장을 좀 더 세련되게 대변할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저는 김정은의 새 외교 쌍두마차가 북한의 핵보유를 정당화하고 이른바 "핵보유국의 전략적 지위"를 전세계에 알리며 핵보유국의 위치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김정은 우상화와 김정은의 '국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선전활동도 열심히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김정은 유일체제 하에서는 리수용과 리용호가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체제 특성상 외교 활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박성우: 최근 들어 크게 바뀐 북한 외교의 진용을 살펴봤는데요. 부원장님도 북한 외교관 출신이십니다. 북한 외교에 거는 개인적인 희망이나 기대는 무엇인가요?

고영환: 북한에서 외교관을 지낸 저는 리수용과 리용호 두 사람을 개인적으로 다 알고 있습니다. 두 분 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나고 개인적으로 품성도 좋은, 한마디로 능력 있는 외교관들입니다. 저는 리수용 리용호 쌍두마차가 외부세계에서 보는 북한, 외국에서 보는 북핵 문제, 세상 사람들이 희망하는 북한의 개혁 개방에 대한 바람, 외국인들이 보는 김정은에 대한 시각을 외교적으로 능란하게 북한 지도부, 특히 김정은에게 전달하였으면 합니다. 그래서 북한 지도자가 체제에 위협적인 핵을 포기하고 인민들의 의식주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개혁과 개방을 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박성우: 리수용이나 리용호 모두 국제사회가 북한을 어찌 생각하는지 가장 잘 아는 인물이라는 건데요. 부원장님 바람대로 이들의 외교활동이 북한의 개혁과 개방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고영환 부원장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