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김정은이 관람한 공연에 미국 영화 '록키'가 등장했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실장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지난 6일 김정은이 모란봉악단의 시범공연을 봤는데요. 공연 내용이 상당히 이례적이었습니다. 이걸 본 북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고영환: 김정은이 지난 6일 모란봉악단의 공연을 보았고, 북측 당국이 이 공연의 전 내용을 이례적으로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녹화중계를 하였는데요. 저도 이 공연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어요. 이전 시기 김정일이 기쁨조 공연을 보던 느낌마저 들었는데요. 물론 여가수들의 무대의상이 그때보다는 덜 파격적이지만 느낌은 같았거든요. 가슴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옷이 파이고, 무대를 자유롭게 왔다갔다하며, 흥에 겨워 노래를 하며 춤을 추고 말이죠.
놀라운 것은 배경화면에 북한이 그토록 저주하던 미국 문화의 상징인 영화 ‘록키’의 주요 장면들, 그리고 미키 마우스, 백설공주, 곰돌이 푸 같은 전형적인 미국 만화영화의 상징들이 나왔다는 겁니다. 또 미국의 유명한 가수인 프랑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도 연주가 되었어요. 더 놀라운 것은 김정은이 공연을 본 다음에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공연이 워싱턴에서 하는 건지, 서울에서 하는 건지, 아니면 평양에서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김정은이 왜 이렇게 했을까요? 제가 받은 첫 느낌은 이렇습니다. 미국 만화영화의 상징들인 미키마우스, 곰돌이 푸, 백설공주 등은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할 때 한참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것들이어서, 오랜만에 외국생활의 향수를 달래고자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나는 새 지도자로서 선대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북한을 이끌고 가겠다”는 의지도 보인 걸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공연을 보면서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저는 이렇게 봅니다. “대단하다, 멋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게 텔레비전으로 다 나와?”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고요. 다음은 아마 희망을 느꼈을 겁니다. ‘저런 것을 다 하는 것을 보니 지도자가 개혁을 하고 개방을 하려는 것 아니냐, 우리도 이젠 잘 살 수 있겠구나’ 이런 희망을 가지고 흥분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북측은 올해 강성대국을 한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아 실망하던 북한 주민들에게 저런 모습으로 희망을 새롭게 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박성우: 미국을 향해 하고 싶은 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요?
고영환: 이번 시범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은 미국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었어요. 미국의 디즈니 만화 상징물들, ‘록키’의 주인공을 통한 미국인의 강인함, 그리고 미국인의 창조성을 보여주는 것이었죠. 왜 이런 공연을 하였을까요? 저는 북한 지도부가 미국 사람들에게 ‘자 봐라, 우린 지금 미국과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그리고 그동안은 우리를 다치지 말라’ 뭐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이것이 북한 신 지도부의 진짜 의도인지, 아니면 미국인들을 혼란시키면서 시간을 끌 속셈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미국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이 소련 선수 이반 드라고를 링 위에서 다운시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요. 3분 가량의 분량이었습니다. 여기에도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넘어진 선수가 이미 없어진 소련을 상징하는 것 같지는 않고요. 지금 미국과 세계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중국을 의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니깐 미국 사람인 록키가 링 위로 쓰러뜨린 선수가 소련인이 아니고 중국인이 아니냐는 해석을 저는 외교관으로서 한번 해 봤습니다.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후 북한을 좀 냉랭하게 대하고 있지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후진타오 주석이나 원자바오 총리는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하고 인민 생활에 힘쓰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식량 등의 지원도 많이 줄이고 있습니다. 이에 북한 지도부가 많이 화가 나 있을 것 같고요. 이런 몹쓸 중국을 미국이 한 대 먹였으면 좋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성우: 알겠습니다. 김정은과 관련된 소식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요즘 김정은이 ‘세계적 추세’라는 말을 자주 하고 다니더라고요?
고영환: 그렇습니다. 김정은이 지난 1일 평양산원 유선종양연구소를 현지 방문하면서, 지난 3일 양말 공장을 찾아서, 그리고 지난 5일엔 순안비행장 확장 공사장을 찾아가서도 ‘세계적 추세’를 강조했습니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세계적 추세’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고, 그래서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관측들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 만화 영화의 상징을 보여주고 미국 영화의 주요 장면을 배경에 깔고 하는 것들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부친 김정일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후계자가 된 이후 2009년 12월 화폐개혁을 실시하였던 적이 있지요. 그러나 이 화폐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북한이 현재의 1인 지배체제를 그대로 두고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2002년 7월 1일 조치 같은 경제개선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합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도 많이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시기의 경험을 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불안감 역시 클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실제적으로 경제를 회복하려면 김정은이 중국의 등소평처럼 과감하게 1인 지배체제를 버리고 중국처럼 확실한 개혁, 개방을 하는 것만이 대응책으로 될 것입니다.
박성우: ‘고려항공의 기내식이 달라졌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개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뭔가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고 있어서 다행인 듯한데요. 실장님은 예전에 북한 외교관 생활하시면서 고려항공을 많이 타보셨을 텐데요. 어떻게 보셨습니까?
고영환: 고려항공은 소련제 비행기를 쓰지요. 지난달 9일 유튜브에 고려항공의 기내식, 그러니깐 비행기에서 식사 시간에 맞추어 나오는 식사를 한 외국인이 사진으로 찍어 올렸는데, 고기는 다 말라비틀어지고 남새(야채)도 형편없는 햄버거가 나와 세계적으로 망신을 산 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세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기내식이라는 평가를 내렸지요.
그런데 중국의 ‘소후닷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중국인 관광객이 최근에 고려항공의 기내식을 찍은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 사진에 의하면 기내식이 많이 좋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북한이 세계적인 비판에 적어도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무엇인가 개선하려고 하는 흔적이 보인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자신들만의 성을 높이 쌓아 놓고 자신들만의 것이 최고라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랑하는 것보다는 이번 경우처럼 외국을 바라보고 외국에서 어떻게 살며 ‘세계적 추세’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돌리는 것은 평가할만한 일입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북한 지도부가 ‘세계적 추세’를 따라서 인권 상황도 좀 개선하고, 주민들 먹고사는 문제도 좀 해결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전략정보실장과 함께했습니다. 실장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