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북한의 실세 3명이 남한을 찾았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지난 토요일 일입니다만, 다루지 않을 수가 없는 사안이죠. 황병서를 비롯해서 북한 권력자 3명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여를 명목삼아 남한을 찾았습니다. 위원님, 먼저 의도 분석부터 해 주시죠.
고영환: 지난 토요일, 그러니까 지난 4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비서, 김양건 비서가 한국을 불시에 찾아 왔죠. 한 사람만 와도 충분한데 실제 권력 2인자와 3인자 그리고 10위권에 드는 사람까지 포함해 최고위급 간부들이 세 명이나 한꺼번에 한국에 온 겁니다. 당, 정, 군의 최고 실세들이 온 셈이죠. 이건 정전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보입니다.
북측은 하루 전인 지난 3일 남측에 고위급 3명을 보내겠다고 요청하였고, 남한 정부는 외교적 관례나 규범을 뛰어 넘는 이런 요청을 흔쾌하게 받아들여 하루 만에 북측 대표단이 인천에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방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남측이 북측에 고위급 세 명을 내일 보내겠으니 받아달라고 했다면 북측이 과연 받았을까? 그리고 그런 환대를 받았을까?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들였고 극진하게 환대하여 돌려보낸 거죠. 그들을 맞이한 남측 관료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이었고, 정홍원 총리도 그들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불시에 왔으나 환대를 한 것입니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은 방문 기간에 “이번엔 오솔길을 냈는데 앞으로 대통로를 열어 나가자”고 말했고, 김양건 대남 비서는 제2차 고위급 접촉을 이번 달이나 다음 달 초에 열자며 “더 늦어지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실세 3인방이 온 목적은 우선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김정은 명의로 치하하고, 이를 김정은의 업적으로 포장하며, 한 달 이상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김정은의 와병설을 잠재우고,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열어 다른 대외관계 확대에도 연동해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이유를 더 든다면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북측 3인방이 인천에 머문 시간은 12시간 가량이죠. 위원님은 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던가요?
고영환: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한국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거의 전 기간 두 손을 꼭 쥐고 귓속말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황병서는 북한군 서열 1위이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식 석상의 연설들에서 “남조선을 짓밟아 버리겠다”며 협박하였던 인물입니다. 그가 한국의 안보를 책임진 김관진 안보실장과 손을 꼭 잡고 소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주 앉으면 말도 통하고 그러면 신뢰도 생기는데 저런 모습이 자주 보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황병서가 두 번째로 한국의 정홍원 총리를 만날 때 총리의 두 손을 잡고 열렬히 흔드는 모습은 거의 충격이었습니다. ‘북한군 최고 지도자의 한 사람이 저런 모습을 보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 생각이 물밀듯이 들었습니다. 김양건 비서와 류길재 장관이 손을 꼭 잡고 폐막식 내내 귓속말을 주고 받으며 미소짓는 모습도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북한 대표단은 12시간을 한국에 있었고, 그 시간 중에 회담한 시간이 185분, 그리고 한국 대표단과 같이 있었던 시간은 6시간이 넘습니다. 이런 접촉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박성우: 황병서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위원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고영환: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차수 군복을 입고 경호원, 북한 용어로 하면 친위대의 경호, 즉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 ‘확실히 그가 북한의 2인자구나’ 하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황병서는 색안경을 쓴 건장한 경호원들의 밀착 경호를 받았고, 승용차도 한국산 최고급 에쿠스 리무진 1호를 타고 다녔습니다. 북한에서 그런 건장한 사람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선글라스, 즉 색안경을 쓴 사람들의 호위를 받는 사람은 김정은 한 명 뿐인데, 황병서가 김정은급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오찬을 할 때 김양건 대남 비서가 “총정치국장 동지의 승인을 얻어 제가 말씀 드리겠다”고 발언하였는데, 저는 그것을 보면서 ‘북한에서 당중앙위원회 비서에게 발언 승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 뿐인데 왜 저렇게 발언을 할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번 황병서의 방남을 보면서 황병서가 확실하게 김정은의 신뢰를 얻었고 그가 이전에 장성택 행정부장이 누렸던 그런 2인자 노릇을 하고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한국 사람 일부는 ‘왜 황병서가 인민군 차수 군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한국 정부가 승인해주었냐, 한국군 대장이 북한에 가서 대장 군복을 입고 평양 시내를 다닐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요. 저는 한국이 그런 문제들을 허용할 정도로 북한에 성의를 표시하였고, 한국 사회도 그런 것을 허용할 만큼 성숙되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이번 일을 계기로 양측은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합의했는데요. 그런데 서로 상정하고자 하는 의제가 다르죠. 대화가 순조롭지만은 않을 듯 한데요. 위원님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영환: 물론이죠. 남북한 사이에는 여러 본질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북한 핵문제, 인권 문제, 이산가족 상봉 문제, 군사적 긴장 상태, 금강산 관광 문제 등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한국 방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말로만 그럴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실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시기에 합의를 하고난 뒤에 또 도발을 하여 정세를 긴장시키는 행위들을 해 왔습니다. 북한 고위 대표단이 왔다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지난 7일 북측 해군 경비함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함포를 쏘고 돌아 간 것도 역시 북한의 이중적인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남북이 마주앉아 서로 원하는 모든 것들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쉬운 것부터 해결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요. 한꺼번에 문제를 풀려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서서히 풀어나가면서 신뢰를 쌓아 나가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이것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로동신문이 북측 선수단의 귀환 소식으로 도배가 됐던데요. 아무래도 김정은의 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이겠지요?
고영환: 저도 봤는데요. 지난 6일 로동신문 전체는 마치 체육 전문 신문인 것 같았습니다. 총 6면의 로동신문 지면 중에 4면이 아시안게임 등 체육 부문에서 거둔 성과를 축하하는 장면의 사진들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황병서를 포함해 세 명의 고위급 관리가 인천을 다녀간 목적 역시 잘 싸운 북한 선수단을 격려하는 김정은의 감사를 전달하는 것이었다고 보고요. 이제 북한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이 거둔 성과를 두고두고 선전하고 인민에게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종합 7위를 거둔 것이 김정은의 덕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치적을 칭송하고 이를 통해 김정은의 통치 기반을 공고히 발전시키자는 목적이 분명히 들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종합 2위를 하였습니다. 인구 1억이 넘는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인 일본을 인구 4,500만의 한국이 꺾고 중국에 이어 2위를 하였습니다. 남북이 딴 메달을 합치면 거의 중국 수준에 도달합니다. 남북 다 합쳐 7,500만이 채 안 되는데 인구 13억의 중국만큼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번 경기를 보면서 한민족이 참으로 위대하다, 대단하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성우: 그렇습니다. 위원님 말씀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북측 3인방이 뜻밖에 인천을 찾는 바람에 아시안게임 폐막식이 상당히 주목받았습니다. 남북한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죠. 이런 분위기가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도 이어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10일 남측의 탈북자 단체가 북측으로 날린 전단을 문제 삼으며 북측 군대가 고사총을 발사하는 걸 보더라도, 지적하신대로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