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합의,북에 시간만 벌어준 실패작

서울-박성우, 고영환 parks@rfa.org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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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 주최로 워싱턴DC에서 열린 '제네바합의 20주년' 세미나에 1994년 당시 협상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참석했다.
지난 20일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 주최로 워싱턴DC에서 열린 '제네바합의 20주년' 세미나에 1994년 당시 협상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사진단 한반도’ 시간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미국과 북한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네바 합의’를 체결한 게 지난 21일로 20년이 됐습니다. 오늘도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박성우: 위원님, 지난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고영환: 잘 보냈습니다.

박성우: 요즘 갑자기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데요. 이게 다 ‘제네바 합의’ 20주년을 맞이해서 특집기사도 쓰고, 학술회의도 열리고, 그랬기 때문이죠. 위원님, 먼저 우리 청취자들을 위해서 설명을 좀 해 주시죠. ‘제네바 합의’가 무엇입니까?

고영환: 제네바 합의라는 것은 정확한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이 맺은 합의(Agreed Framework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인데요. 1994년 10월 21일 미국과 북한의 외교관들이 제네바에 모여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내용으로 맺은 일종의 계약서 같은 것입니다.

제네바 합의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북한은 흑연감속로를 경수로로 대체하고 원자로 운행을 중단하며 경수로가 지어질 때까지의 난방과 전력생산을 위한 중유는 미국이 북한에 공급하는 동시에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하지 않는다고 공식 약속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고 핵확산금지조약인 NPT에 잔류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이, 미국측에서는 로버트 갈루치 북핵 특사가 참여하여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고, 이 합의 이후 강석주는 북한에 돌아가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회담을 잘 했다’고 칭찬을 받고 훈장과 선물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 제네바 합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고 미국은 북한에 경제적 지원과 관계 정상화를 해준다는 그런 목적 하에 진행되었는데, 20년이 지나도록 북핵은 더 발전하고 미북 사이에 경제지원이나 관계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박성우: 제네바 합의 20주년을 맞이해서, 이게 ‘성공한 합의’였는지, 아니면 ‘실패한 합의’였는지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요. 위원님 의견은 무엇입니까?

고영환: 제네바 합의는 1993년 3월 북한이 NPT에서 탈퇴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거부하면서 발생한 제1차 북핵 위기를 수면 아래로 봉합했던 합의입니다. 일반적으로 제네바 합의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긍정적인 평가는 전쟁 위기로 치솟던 제1차 북핵 위기를 안정시키고 북한의 핵능력 진전을 어는 정도 지연시켰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평가는 북한에 시간만 벌어 주어 핵개발을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핵능력이 더 배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잠깐 말씀드리자면, 제네바 합의가 성사된 후 미국은 북한에 중유를 공급하기 시작하였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는 성과를 냈으나, 시작 8년만인 2002년 농축 우라늄 문제가 발생하면서 합의가 파기되었습니다. 여러 차례 접촉이 있은 후 2003년 8월 북핵 6자회담이 시작되었고, 2005년에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은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내용을 골자로 한 9월19일 합의, 줄여서 9.19 합의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2008년 12월에 6자회담은 좌초하고, 북한은 2006년, 2009년, 2013년 3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강행하였습니다.

저의 기억에 생생한 것은 제가 북한 외교관으로 있을 때 김일성 주석이 수차례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김일성 주석 때부터 핵무기를 개발해 왔고, 김정일 시기에는 수차례 미국 등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연이어 파기하면서, 경제적 지원 등 얻을 것은 얻어내고 뒤로는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제네바 합의가 북한에 시간만 벌어 준 실패한 합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국제사회를 속이면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하는데, 쓰지도 못할 핵을 개발해서 뭘 하고, 핵개발 때문에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제재로 인해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고 그래서 주민들이 잘 먹지도 못하게 된 것이 잘한 일인지, 그리고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 것도 잘 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박성우: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핵 협상은 ‘합의’와 ‘파기’의 악순환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고영환: 정말로 북핵 협상은 수많은 합의와 파기의 악순환을 겪었습니다. 큰 것만 보더라고,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 2012년 2.29 합의 등 얼마나 많은 합의들을 해 왔습니까? 그러나 그런 합의들, 공동 성명과 공동 선언들은 모두가 다 깨졌고, 이제는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파기와 합의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 기본 이유는 북한이 앞으로는 핵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는 뒤로는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다가 국제사회의 감시망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인간 사회는 신뢰의 사회입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인간 관계, 사회적 관계가 다 무너집니다. 개인 사이도 그런데 국가 간에 맺어진 공동성명과 합의문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런 국가를 누가 믿고 합의를 만들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은 외국과 맺은 조약과 합의를 지키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어내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우: 마지막으로 이 질문도 드리고 싶습니다. 핵 문제와 관련해서, 북측에서는 협상에 직접 참여하거나, 아니면 배후에서 협상을 지휘하는 인물이 똑같잖아요. 그런데 남한이나 미국에서는 자주 바뀌거든요. 협상의 측면에서 보자면, 북한이 더 유리한 것 아니냐, 이런 지적이 있습니다.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고영환: 북한 외교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현 강석주 노동당 국제비서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죠. 강석주는 제가 북한 외교부에서 근무할 때 외교부 제1부부장으로서 김정일의 큰 신임을 받았고, 저하고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인물입니다. 임기응변이 강하고, 생각이 깊고, 판단이 빠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은 전형적인 외교관입니다. 강석주는 1993년 제1차 북핵 위기, 2002년 제2차 북핵 위기 때에도 북한측 대표로서 북한의 입장을 잘 고수한 인물이고, 2002년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방북을 실현하고 고이즈미-김정일 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김계관 역시 외교부에서 잔뼈가 굵은, 밑에서부터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 간 입지전적인 인물이고, 글도 잘 쓰고 머리도 좋고 말도 잘하는 외교관입니다. 저도 잘 아는 사람인데요. 그가 외교부에서 근무한 지도 이제는 40년이 넘습니다. 이런 외교의 베테랑들이 북한 외교의 곳곳에 포진하여 수십 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북한 외교가 강한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수년간 한 자리에 있다가 다른 자리로, 또는 대사로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장관이 되고, 그렇게 자주 바뀌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아무래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수십년 한 사람하고 근방 와서 공부하고 회담에 나가는 사람하고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협상에서 북한 외교관이 대체로 강하다는 것은 다 인정합니다. 반대로 북한측의 약점은 한자리에 계속 앉아 같은 업무를 하다보니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경직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실제로는 누가 진정성을 가지고 신뢰감 있게 협상을 하느냐, 이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박성우: 위원님이 북한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에 누구 보다도 더 정확한 평가를 하고 계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외교에는 진정성과 신뢰가 우선이라는 점, 북측도 잘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고영환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위원님, 오늘도 수고하셨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영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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