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오늘] 북, 재일동포 자녀 인질 삼아 송금 강요

서울-박성우, 문성휘 xallsl@rfa.org
201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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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_nkorean_protest-305.jpg 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 등 3개 단체 회원들이 2006년 11월 히비야 공원에서 재일동포들의 인권 생활권을 보장할것을 요구하는 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성우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최근의 북한 소식,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북한 당국이 북송 재일동포 자녀를 인질로 삼아 일본에 있는 가족들로 부터의 송금을 강요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 함경북도 길주군과 명천군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꽃제비 봉사조’가 주민들의 큰 동정을 얻고 있습니다.

1. 북, 재일동포 자녀 인질 삼아 송금 강요


박성우 :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 ‘지금은 재끼들의 수난 시대다’ 북한에 이런 말이 돌고 있다는데요. ‘재끼’란 말이 재일동포 귀국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라면서요?

문성휘 : 네, 이게 ‘재일 귀국자’라는 말이 줄어서 굳어진 발음인데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송 재일동포들은 북한주민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아왔습니다. 일본에서 가져온 재산도 일정하게 있었고 또 일본에 있는 친척들이 보내준 돈으로 북한에서는 가장 안정적이고 부유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는데요.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재일동포들의 생활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하면서 일본 정부가 북한에 송금을 제한하고 또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도 ‘총련(재일조선인 총연합)’이나 북한에 등을 돌리면서 지원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까?

박성우 : 아, 그러니까 납치문제, 이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거군요?

문성휘 : 네, 그렇죠. 그렇게 되면서 한때 잘 나가던 대부분의 북송 재일동포들은 북한에서도 가장 가난한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북한 당국은 북송된 재일동포들을 인질삼아 일본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해 노골적인 협박까지 일삼았다고 하는데요. 지원을 하지 않으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엄청난 보복을 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례로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10년이라는 형을 받고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지난 4월에 출소한 재일교포 자녀 한모씨의 예를 들 수 있는데요.

한모씨가 체포되게 된 배경을 설명하자면 지금부터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0년 4월,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는 ‘깜대부대’로 소문난 조폭조직을 소탕하는 검거작전이 있었는데요.

당시 ‘깜대부대’라고 하면 회령시에서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친다고 할 만큼 무서운 폭력조직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회령장마당을 무대로 폭력과 함께 밀수행위, 수많은 강간범죄를 저질러 악명을 떨쳤다는데요.

북한 당국은 30여명에 달하는 ‘깜대부대’ 조폭들을 모두 숙청하면서 여기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온 11명을 회령 22호 정치범수용소에 보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사건에 휘말려 재일동포출신인 한 씨도 10년 형을 받고 전거리 교화소에 수감되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다행히 정치범수용소행은 면했지만 10년이라는 판결이 너무 억울했다는 거죠. 한 씨는 조폭조직 성원은 아니었고 폭력배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하게 그들을 접대했다는 겁니다.

결국 조폭들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10년 형을 받았는데 당시에도 주민들 속에서는 한 씨의 형기를 두고 ‘너무하지 않냐?’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 씨의 아버지는 그동안 일본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회령시를 꾸리는 사업에 투자했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회령신발공장 설비들이라든지, 회령곡산공장을 꾸릴 때에도 한 씨의 아버지는 일본에 있는 친척들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지원받아 공장 설립에 기여했고요. ‘13차 청년학생 축전’을 앞두고 평양시 꾸리기가 한창일 때에도 수십만 달러를 북한 당국에 지원했다고 합니다.

당시 ‘고난의 행군’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했던 북한은 한 씨를 전거리 교화소에 보내면서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북한을 지원하도록 수차례 회유했다고 합니다.

한 씨의 아버지도 아들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지원해 줄 것을 일본에 있는 가족들에게 지속적으로 호소했지만 납북자 문제가 불거지던 때여서 그런지 일본에 있는 가족들은 일절 지원을 거절 했다고 합니다.

한 씨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집까지 팔아 보안원들에게 뇌물로 바치면서 아들을 빼내기 위해 애썼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한 씨는 10년이라는 형기를 고스란히 마치고 올해 4월 중순에 출소했습니다. 그 사이 집은 완전히 파산해 가족들은 뙈기밭을 가꾸면서 근근이 살고 있고요. 출소한 한 씨도 죽물로 간신히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씨가 출소하자 회령시 주민들 속에서는 또다시 논란이 분분하다고 하는데요. 그 사이 북한 당국은 민심을 얻기 위해 수많은 대사령(특사)을 실시했지만 한 씨에게만은 이러한 혜택이 전혀 차례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회령시 주민들은 한 씨가 괘씸죄로 만기형을 살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데요.

박성우 : 지원을 해달라고 했는데 안했다는 거죠?

문성휘 : 네, 그렇죠. 이러한 사례는 한 씨 사건 말고도 북한에서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양강도 혜산시에서 만도 지난 1999년에 귀국동포였던 ‘혜산 자동차 수리공장’ 지배인의 아들 김광성 씨와 그의 사위를 처형하고 가족들을 모두 추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도 결국 괘씸죄가 있는데요.

북한 당국은 이들 가족들을 통해 일본에 있는 친척들에게 자동차 수리설비들과 자전거 공장을 설립할 수 있는 설비들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가 모두 무시당하니까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상대로 잔인한 보복을 저질렀고요.

‘혜산 병언맥주공장’도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인 김병언 씨가 1980년대 맥주공장 설비들을 지원해 설립된 것인데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맥주공장 설비들이 다 낡아서 새로운 설비들로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북한 당국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복송된 김병언 씨의 가족들이 운영하던 ‘혜산병언맥주공장’을 2005년에 완전히 빼앗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또 지난 2007년 청진시 남강무역회사 지배인 사건도 이와 비슷한 사례인데 뭐 이렇게 일일이 다 꼽자면 정말 수를 셀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박성우 : 알겠습니다. 외화 몇 푼에 목말라 있는 북한이라지만 고국을 찾아 귀국한 재일 귀국자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다.

2. 동정 받는 ‘꽃제비 봉사조’


박성우 : 자, 이번엔 다른 소식인데요. 문 기자가 얼마 전에 ‘꽃제비 봉사단’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요. ‘꽃제비 봉사단’, 뭡니까? 구체적인 설명을 좀 해 주시죠?

문성휘 : 네, 함경북도 길주군과 명천군 사이를 오가며 농촌주민들에게 봉사하는 네 명의 꽃제비들에 대한 사연인데요. 이들이 어디 출신이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이도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주민들로 한 가족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이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6월경부터라고 하니 아마도 북한 당국이 강행한 ‘화폐개혁’으로 가정이 몰락해 꽃제비가 된 주민들이 뭉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이 길주, 명천을 무대로 주민봉사에 나선 것도 이곳이 석탄을 비롯한 땔감이 비교적 풍부하고 또 농사도 잘 돼서 다른 곳에 비해 인심이 좀 후하다는 그런 이득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박성우 : 이름이 ‘꽃제비 봉사단’이고 문기자도 방금 주민봉사를 하고 다닌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봉사를 한다는 말입니까?

문성휘 : 네, 이들 네명은 모두 각이한(다른) 재간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 분은 신발수리를 기막히게 잘 하고요. 다른 한분은 마사진(망가진) 비닐그릇이라든지, 물이 새는 장화 같은 것을 땜 때기 하는 재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 수리를 잘 하는 분도 있고요. 막내격인 40대 중반의 꽃제비는 이것저것 심부름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박성우 : 아, 그러니깐 서로 가진 기술로 주민들을 봉사하면서 산다는 거군요?

문성휘 : 네, 주로 농촌을 돌며 각종 수리를 해주는 대가로 쌀이나 국수, 밥 같은 것들을 조금씩 받는다고 하는 데요. 재산이라고는 변변치 않은 수리공구들과 이러한 공구들을 옮길 수 있는 손수레가 전부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 마을, 내일은 저 마을로 떠돌면서 벌어먹고 밤이면 농촌에 있는 짚 더미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무엇이나 헐값으로 깔끔하게 수리를 해주고 또 돈 없는 주민들에 대해서는 무료로 봉사도 해준다는데요.

박성우 : 아, 무료로요?

문성휘 : 네, 그래서 ‘꽃제비 봉사단’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행위에 고마움을 느낀 주민들도 무엇이든 한 가지라도 도와주려고 몹시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박성우 : 네, 아마 자신들도 가진게 없는데 무료로 남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신들 처지도 어려운데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이분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문 기자, 오늘 이야기 잘 들었고요. 다음 시간 또 기대하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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