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오늘] 연평도 훈련에도 차분한 북한

서울-문성휘, 박성우 xallsl@rfa.org
2010.12.20
tongil_gate-305.jpg 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이 시작한 20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군인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성우 :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문성휘 기자와 함께하는 ‘북한은 오늘’입니다. 최근 북한의 생생한 소식 , 문성휘 기자를 통해 들어보시겠습니다. 저는 진행에 박성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입니다.

- 연평도 사격훈련이 다시 시작된 20일, 북한 내부는 예상외로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 북한 당국의 집중적인 검열에도 불구하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통한 밀수, 밀매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습니다.

1. 연평도 사격훈련에도 북한 내부는 차분해


박성우 :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문성휘 : 네, 안녕하세요?

박성우 : 북한군의 포격도발로 중단되었던 한국군의 연평도 인근해상 사격훈련이 20일, 재개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북한이 핵전쟁까지 거론하면서 위협수위를 높여왔는데요. 북한 내부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문성휘 : 네, 한국군의 사격훈련에 대비해 북한이 연평도와 백령도 대안에 해안포와 방사포까지 배치해 놓고 위협수위를 높이고 있는데요. 하지만 북한 내부는 예상외로 평온하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도발을 일으킨 북한이 도발 직후 한국군의 초강경 대응에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요.

지난 1993년 사태 당시와 대비해보면 너무도 이례적이라는 생각까지 들어서 도대체 북한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박성우 : 1993년, 그때가 북한이 미국과 영변핵시설을 놓고 마찰을 빚은 때였죠? 당시 북한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문성휘 : 네, 6.25전쟁 이후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전쟁분위기를 느낀 것이 두 번이라고 하는데요. 한번은 지난 1976년 8월 18일에 있었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였고 또 한 번이 바로 1993년 3월에 있었던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위협이었습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사건에 대해 지금도 북한은 미국의 군사적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당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태세를 보이자 북한 당국은 전민방위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민간인들까지 모두 전쟁준비에 내몰았습니다.

그때까지는 6.25전쟁을 경험한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민간의 반응도 아주 예민했는데요. 주민들은 덮고 있던 이불까지 뜯어서 버선과 솜옷을 만드는가 하면 비상식량 마련에 분주했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1993년 3월,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을 때에도 북한은 17세 이상의 모든 청소년, 대학생들에게 인민군대 탄원서를 쓰게 했습니다. 주민 비상연락망 체계도 항시적으로 가동하도록 했고요. 뿐만 아니라 장마당에 앉는 주민들까지 모두 위장그물이 있는 옷을 입도록 하고 시내 곳곳에서는 군용트럭과 오토바이에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요란하게 선동방송을 했습니다.

박성우 : 그때 문 기자는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문성휘 : 저도 그래, 저의 부모님들,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과 직장동료들도 몹시 긴장되고 우울한 분위기였습니다. 미국이 영변원자로를 폭격하면 영락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어는 밤낮으로 조국통일을 외치던 인민군들마저도 공포에 질린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박성우 : 그렇겠죠. 전쟁이 난다고 하면 기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때의 상황에 비해볼 때 이번 한국군의 연평도 포격훈련과 관련해서는 북한이 이례적으로 조용하다 이런 말인가요?

문성휘 : 그렇죠, 지난 11월 23일, 북방한계선 남측해상에서 진행되던 남한군의 군사훈련을 구실로 북한이 연평도에 대한 포격도발을 감행하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연평도 포격사건은 6.25전쟁 이후 북한이 처음으로 직접 남한을 공격한 사건으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나 1993년 3월 영변 핵 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더욱이 북한은 핵전쟁까지 거론하며 북방한계선에서 남한이 다시 군사훈련을 시작할 경우 2중, 3중의 물리적 보복을 하겠다고 위협했는데요. 하지만 북한이 남한 영토에 직접 포격을 가하면서까지 강력한 경고를 보냈음에도 남한군은 20일, 북방한계선 남측 해상에서 예정대로 훈련을 강행했고요.

북한은 2차, 3차의 보복타격을 운운하면서 해안포들과 방사포들을 대거 준비했지만 정작 남한이 훈련을 강행하자 아무런 대응도 못했습니다. 결국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키고 그 책임을 남한에 돌리던 북한이 오늘 한국군의 훈련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국제사회 앞에 스스로 저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성우 : 20일, 한국군은 연평도 해상훈련을 통해 북한이 또다시 도발을 감행할 경우,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힘과 의지가 있음을 명백히 과시했는데요. 북한 주민들도 한국이 20일에 연평도에서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습니까?

문성휘 : 아니,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훈련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일, 2시 30분까지도 특별한 군인들의 이동이나 민간군사무력의 움직임 같은 것이 없었고 주민들은 한국군이 훈련을 단행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킨 북한이 한국군의 대응조취에 그만큼 당황해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내부적으로 그렇게 조용한 것은 자칫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일 경우 예민한 상태에 있는 한국군이 무력도발로 오인해 대응타격에 나설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 아닌가 해석되기도 합니다.

2. 국경 단속에도 여전히 탈북, 밀수 성행해


박성우 : 네, 이번엔 다른 소식입니다.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탈북과 밀수행위에 대해 공개처형까지 거론하며 강력한 단속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국경연선에선 여전히 주민들의 탈북과 밀수행위가 성행하고 있다는 데요. 예년에는 검열이 있다면 주민들이 한풀 꺾이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어서 북한 내부 상태가 궁금해집니다. 어떻습니까?

문성휘 : 남한에서는 기업 관리자로 이름만 등록해 놓고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켜 ‘바지사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요새 북한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젠 다 됐구나. 완전히 ‘바지사장’이 되고 말았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성우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바지사장’이면 권력이 후계자 김정은에게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말인가요?

문성휘 : 차라리 그렇게라도 되었다면 새로운 사장이 된 김정은이 어떻게 대책을 세우겠죠? 그러나 지금은 모든 간부들이 김정은에게 줄서기를 하느라 김정일의 지시를 우습게 여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계자로 나선 김정은이 함부로 지시할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권력에 공백이 생긴 거죠.

박성우 : 지금 진행되는 검열에도 권력 공백이 드러난단 말인가요?

문성휘 : 네, 그렇습니다. 김정은 후계자 선출 이후 중국으로 탈북하는 북한 주민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를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은 지난 11월 20일 부터 비사회주의 그루빠, 중앙당 검열, 국가보위부 검열을 비롯한 2중, 3중의 겸열대를 파견하여 국경지역을 봉쇄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또 탈북을 하거나 밀수를 하다가 걸리면 공개처형까지 한다고 인민반회의를 통해 주민들을 위협하고 나섰는데요.

이렇게 검열이 강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지난 11월 23일, 양강도 대홍단군 홍암분장에서 제대군인 1명과 젊은 농장원 2명이 중국 화룡현 농촌마을에 침범해 주인을 살해하고 돈이 될 물건들을 챙기다가 공안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런가하면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구에서는 탐사대 마을에서 살던 한 가족이 두만강을 건너 탈북하려다 기동순찰대에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북한 당국은 이들 부부를 온성군 보위부로 이송하고 그들의 탈북을 방조한 혐의로 삼봉 국경경비대 하사관과 병사 한명도 함께 체포했다고 합니다.

박성우 : 그렇게 처벌을 받을 줄 알면서도 주민들이 목숨을 건 탈북이나 밀수행위에 나선다는 건 생활난이 그만큼 가중되고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문성휘 : 물론 겨울철을 맞으며 식량이나 땔감을 비롯해 어려운 점들이 많겠지만 한꺼번에 여러 검열대가 들이닥쳤음에도 탈북이나 밀수행위가 줄지 않는다는 것은 검열의 강도가 상당히 약하다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형식적인 검열에 그치고 만다는 거죠. 이는 그만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이 약해졌고 북한에서 상당한 권력누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박성우 : 문 기자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그러한 권력누수 현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여집니까?

문성휘 :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대강 올해 3월부터였는데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노동당 재정경리부장 박남기가 처형당한 이후부터입니다. 간부들 속에서는 지난해부터 국가보위부 사업을 맡아보는 김정은이 박남기의 처형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했다고 소문이 돌고 있는데요. 이러한 소문이 김정일의 권력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박성우 : 후계자 김정은에게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김정일의 입지가 상당히 약화됐고, 반면에 아직까지 완전한 권력기반을 확보하지 못한 김정은이 함부로 지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면서 권력누수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말로 정리할 수가 있겠습니다. 문기자 오늘 북한소식 잘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을 또 기대해 보겠습니다.

문성휘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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