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측근의 생존전략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5.05.18
hyun_taking_nap-305.jpg 지난 4월 24일과 25일 인민군 훈련일꾼 대회에서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왼쪽 원안)과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김정은 측근의 생존전략’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북한 군 내 서열 2위였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최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석한 군 행사에서 졸고 김정은에게 말대꾸했다는 게 주된 이유라는 게 한국 국가정보원의 분석입니다. 김정은 측근으로 살아남으려면 절대로 졸거나 말대꾸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불경죄는 불문곡직 처형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의 측근은 대부분 환갑을 넘은 고령자입니다. 특별히 강도 높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노곤하고 눈이 감기는 나이입니다. 군 행사와 같이 재미없고 딱딱한 행사에서 장시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으면 절로 눈꺼풀이 무거워져 내려갑니다. 그래도 졸거나 김정은의 말에 토를 달면 눈 깜짝할 사이 저세상 사람이 되니 어떻게든 생존 전략을 강구해야 합니다.

행사에서 졸지 않으려면 평소에 틈틈이 자두면 도움이 될 겁니다. 과거 남한의 대기업 회장이 바쁜 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하기 위해 토막잠을 자주 잤다는 일화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활용하다 보면 일상 업무에는 소홀해질 공산이 큽니다. 김정은 참석 행사에 정신이 집중돼 본인이 맡은 다른 중요한 일들을 제쳐놓게 됩니다.

토막잠이 별 효과가 없을 땐 행사 당일 단식을 병행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배가 부르면 졸음이 오니 배가 고프더라도 행사 당일만큼은 물만 마시며 버티는 겁니다. 물만 마시기 심심하면 아주 진한 커피를 마셔도 좋습니다. 혈압 상승의 부작용을 낳겠지만,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선 감수해야 합니다. 카페인에 둔감한 사람은 행사 직전 마약의 힘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선 마약을 구하기 쉽다고 하니 각성제로 쓰면 됩니다. 몸엔 나쁘겠지만, 깜빡 졸다가 목숨을 잃는 것에 견주겠습니까?

냉수나 얼음 주머니도 쓸만할 겁니다. 바지 안에 넣고 있다가 미지근해지면 부관을 시켜 교체하면 찬 기운에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김정은의 연설문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받아 적는 것도 졸음을 퇴치하는 한 방법입니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진동으로 해 놓고 있다 부관에게 5분마다 전화 걸라고 지시해도 어느 정도 졸음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권력다툼을 하는 경쟁자들의 감시망을 경계하는 것도 졸음을 쫓는 방법입니다. 졸다가 이들에게 걸리면 김정은에게 보고되고 극형에 처해질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래도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이럴 때를 위해 극약처방을 해놓습니다. 옷깃에 바늘이나 선인장 가시를 여러 개 꽂아 놓습니다. 고개를 반듯하게 들고 있을 땐 아무 문제가 없지만 졸다가 고개를 떨구면 바로 찔리게 하는 겁니다. 피를 보겠지만, 죽음에 이르는 피는 아니지 않습니까?

온갖 방법을 동원해 졸음을 극복해도 김정은 측근 자리가 보존되는 건 아닙니다. 김정은의 발언에 이러쿵저러쿵하면서 대꾸하면 안 됩니다. 김정은이 한마디 하면 신이 내린 계명처럼 받들어야 합니다. 김정은 말에 첨삭을 가하거나 이견을 제시하는 행위는 불경죄에 해당합니다. 김정은에 대한 불경죄는 신에 대한 도전과 동일하게 다뤄집니다.

과거 조선 시대에 왕의 발언에 대해 신하들이 ‘폐하,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라고 하기도 했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옳지 않은 정책에 대해선 “폐하, 천부당 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뜻을 거두어주시옵소서” 하며 반대했습니다. 그래도 왕이 고집을 피우면 신하들이 집단으로 몇 시간 동안 돌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왕에게 충언을 고하기도 했습니다.

건전한 반대가 활발하게 개진되는 나라는 대체로 건강하고 융성했습니다. 최고 지도자에게 말대꾸했다고 잡아 죽이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라 할 수 없습니다. 최고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으로 운영되고 아무리 좋은 구상이 있어도 빛을 보지 못하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중국 고대 삼국시대에 위나라의 조조가 결국 오나라의 손권과 촉나라의 유비를 제압하고 통일을 이룬 데는 신하들의 충언을 귀담아들은 게 상당 부분 기여했습니다. 조조 주변에는 탁월한 참모가 많았고 조조의 구상에 대해 활발한 찬반 토론이 있었습니다. 조조가 이를 허용한 것이지요.

정치 경험이 부족한 자신의 말에 토를 단다고 원로를 가차 없이 죽이는 김정은의 주위에 과연 충언을 할 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현영철 처형을 계기로 누구도 북한을 발전시킬 기발한 생각이 있다 해도 입 밖에 내지 않을 겁니다. 졸음을 유발하는 행사에서 존다고 죽이고, 최고권력자의 현실성 없는 발언에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다고 죽이는 나라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눈은 크게 뜨고 입은 굳게 닫는 것뿐입니다.

북한의 실력자들은 눈을 크게 떠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김정은의 뒤통수와 얼굴만을 뚫어지라 응시할 겁니다. 입을 열어 나라의 백년대계를 논하는 게 아니라 벙어리인양 입을 닫고 제 목숨을 부지하는 데 급급할 겁니다. 답답한 북한의 현주소입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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