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도발론’과 ‘신중 도발론’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6.12.06
un_pass_nk_hr-620.jpg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3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이성철 참사관이 회의 도중 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분석해보는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조기 도발론과 신중 도발론’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위험천만한 도발을 더는 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관심사는 도발 여부보다는 도발 시점입니다.

북한의 도발 시점은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분기점으로 해 나뉩니다. 대강 지금부터 취임인 내년 초까지의 ‘조기 도발론’과 취임 후 대북 진용이 꾸려지고 정책윤곽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도발하는 ‘신중 도발론’으로 대비됩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11월30일 새 대북제재결의를 채택하자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측은 “불공평한 제재 결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어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담화에서 “보다 강력한 자위적 대응조치를 불러오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또한 북한 국제문제연구소는 “누가 백악관 주인으로 되든 조미(북미) 대결에서 미국의 패배는 숙명”이라고 강변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군 부대를 9차례나 시찰하면서 ‘남한을 초토화시키겠다’는 위협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당선인 취임 전에 무언가 사단을 낼 것 같은 강경 발언입니다.

한국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유엔 제재, 한미일 독자제재, 미국 정권 교체, 한국 정정 불안 등을 호기로 판단해 지금부터 내년 초까지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과거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설 때 북한이 도발한 전례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트럼프 행정부를 시험하고 협상에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취임에 즈음해 도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한국의 한 국회의원은 김정은이 지난 11월 서해 최남단 방문 시 연평도 타격 계획을 승인해 내년 1-2월께 도발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조기 도발론’에 동조했습니다.

반면, 북한이 차분하게 사태를 지켜보면서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신중 도발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단 한국 정세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혼돈 속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도발 카드를 꺼냈다간 되레 박근혜 정부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자중할 것이란 겁니다. 한국 시위대의 촛불은 친북이거나, 김정은 정권을 보고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을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연히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모습이 역풍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이 도발을 보류할 것이란 시각입니다.

북한은 내년 초까지 미국과의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만일 여의치 않아 무력 시위를 하더라도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대신 주목 받기 용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저강도 도발 선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5차례나 북핵 실험을 경험한지라 웬만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는 판을 뒤엎지 않고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신중 도발론’에 따르면 북한은 일정 기간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 파악에 집중할 겁니다. 지난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한 외교 관리들과 만난 미국의 전직 관리들은 북한 측이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제네바 회동 후 북한 외무성은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북한의 핵보유 지위 직시’를 요구했지만, 대놓고 떠들지 않고 비망록 형식으로 의사를 표출했습니다. 도발을 결정하기 전 탐색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이 조기 도발을 할 경우 미국의 대북정책을 강경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취임 후 대북정책 수립 과정을 지켜보다가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유도하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김정은은 새 제재의 이행과정도 살펴야 합니다. 수출규모를 약 4분의 1이나 줄이는 강력한 제재가 실제 북한 정권과 민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보고 대책을 강구하는 세밀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그러니 성급한 도발은 사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 뿐이라는 지적입니다. 이는 또한 북한 국내사정과도 연결됩니다. 제재로 돈줄이 말라 간부관리가 엉망이 되고 민생이 더 피폐해져 간부와 민심이 흔들리면 정권 결속을 위해 도발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제재의 여파를 측량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 3의 변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대만을 미국이 1979년 단교 후 처음으로 인정하는 듯한 상황이 최근 벌어졌습니다. 트럼프가 대만 총통의 당선축하 전화를 받고 국가원수를 칭하는 총통이란 단어를 쓰면서 중국이 발끈한 겁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앞으로 중국과 할 무역협상이나 북한문제 협상에서 대만카드를 사용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러므로 트럼프의 대만카드가 중국의 대북제재 이행을 강화할지 아니면 약화시킬지 속단하기 어려운 만큼 성급한 도발은 북한정권에 이롭지 않을 거란 지적입니다.

‘조기 도발론’과 ‘신중 도발론’ 중 어느 가상이론이 현실화할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든 또 한 번 세상 사람들의 가슴을 저밀 것이란 사실입니다. 도발 없이 대화로 문제가 풀리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말입니다.

댓글 달기

아래 양식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십시오. Comments are moder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