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 장군은 살수에 둑을 쌓아 하류의 수심을 얕게 해 수나라 군을 유인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군은 계속 뒤로 물렸습니다. 고구려군의 거짓 퇴각에 속아 기세 등등해 살수를 건넌 수나라군은 을지문덕 장군의 계략에 빠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는 군사를 돌려 다시 살수를 건너가려 했습니다. 군량미 보급선이 차단되고 먼 길을 온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 사기가 저하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를 기다리던 을지문덕 장군이 둑을 터뜨려 방류하자 강을 건너던 수나라군 30만 명이 거의 다 수장됐습니다. 을지문덕 장군의 '수공'은 세계 전쟁사에 기록될만한 탁월한 전술입니다.
땅이 좁고 산과 강이 많은 한반도는 물을 가뒀다가 한꺼번에 쏟아내 엄청난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형입니다. 북한의 황강댐 방류 사건을 남한에 대한 '수공'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지금까지 북측이 임진강 댐들의 물을 방류해 남측이 일곱차례나 피해를 당했습니다. 2001년엔 북측의 막무가내식 방류로 남측의 어민들이 그물과 통발 수억 원 어치를 잃었습니다.
남측의 강력한 항의로 북측은 2002년과 2004년 8월 방류 땐 사전 통보를 해왔었습니다. 또 2005년엔 북측이 댐 방류 시 사전에 통보한다는 남북 합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측은 2006년 다시 예고 없이 방류했습니다.
냉전시대에는 남북이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 간에 설치된 전화선도 여럿입니다. 북측이 댐 방류로 생길지 모를 남측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전화연락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바로 이런 상황이 북측의 '또 다른 의도'를 의심케 합니다. 남측이 이 사건과 관련한 성의 있는 해명을 재차 요구했지만, 북측은 묵묵부답입니다.
북측은 황강댐 방류사건과 관련해 "댐 수위가 높아져 방류했다"고 해명했지만, 이달 들어 댐 주변지역의 강수량은 0.2mm도 안됐습니다. 댐의 수문을 열 이유가 없었다는 겁니다.
한국 정부는 혹시 댐에 균열이 생겼거나 다른 기술적 결함으로 방류가 불가피하지 않았나 하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를 해봤지만 이렇다 할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황강댐은 높이 34m, 길이 880m, 저수량 3억 톤 규모의 대형댐입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 설치된 댐에서 방류할 때 지역 군부대나 상급부대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특히 황강댐과 같은 대형 댐은 북한 군부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수문을 여는 결정에 군부의 판단이 작용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북측이 새벽 시간에 방류한 것도 미심쩍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시간도 남측의 대응태세가 취약한 새벽이었습니다.
황강댐 방류로 4천만 톤의 물이 순식간에 하류로 밀려들어 남측은 인명 피해를 보았습니다. 임진강 하류에서 야영하던 남한 민간인 6명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남측의 군인과 경찰 2천500여 명이 현장에 투입돼 시신을 수습했지만 희생자들을 살려낼 수는 없었습니다.
강 하류지역에서 야영하던 30대 후반의 남자는 12 살 난 아들만은 살리려고 아이스박스(어름상자)에 태워 강가까지 밀어내고는 자신은 급류에 휩쓸려 갔습니다. 남편의 시신을 본 아내는 망연자실하다 실신했습니다. 댐이 넘칠 것 같아 방류했다는 북측의 해명은 희생자의 유족에겐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인 여기자 두 명이 북한에 억류되자 미국민은 크게 분노하고 온 나라가 여기자 구출에 힘을 모았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여기자들을 구하려고 북한에 갔습니다. 자국민의 생명이 그만큼 중요한 까닭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의 반응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북측은 남측의 인명 피해에 대해 일언반구 없습니다. 희생자 유족과 남측에 사죄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유감 표명도 없습니다.
최근 경기도가 북한주민을 살리려 10억 원어치의 옥수수 2천500톤을 지원했는데, 북측은 남측의 선의에 인명을 앗아간 '물 폭탄'으로 답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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