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화 교재 수정본

워싱턴-박봉현 parkb@rfa.org
2015.04.20
rfeference_book_b 북한이 지난해 김정은 우상화 교육을 위해 배포한 초급중학교(중학교, 사진 왼쪽)와 고급중학교(고등학교)용 참고서의 표지.< 자유북한방송 제공 >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북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들을 진단하는 뉴스해설 ‘북한전망대’입니다. 이 시간엔 ‘우상화 교재 수정본’에 관해 이야기해 봅니다. 박봉현 기자입니다.

인류 역사에는 드물지만 천재가 등장합니다. 천재 음악가, 천재 화가, 스포츠 천재, 수학 천재, 천재 철학자, 천재 발명가, 천재적 군사전략가, 추앙받는 지도자 등 분야별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전기를 보면 타고난 능력에 노력을 가미해 해당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긴 겁니다. 요술 방망이를 두드리며 ‘돈 나와라! 뚝딱’ 하듯 그리된 게 아닙니다. 또한, 이 모든 분야를 망라한 천재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팔방미인’을 능가하는 ‘팔방 천재’가 북한에서 탄생했나 봅니다. 30대 초반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그리 지칭됩니다. 새 학기를 맞아 발행한 교사용 교재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참고서’는 김정은을 ‘팔방 천재’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천재라고 합니다. 북한 교재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은 인간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역사적 위인으로 기록될 겁니다.

우선 김정은은 ‘사격 천재’입니다. ‘3살 때부터 총을 쐈고 3초 내에 10발 다 목표를 명중시켰다’고 돼 있습니다. 소총은 3살배기가 들고 쏘기엔 너무 무겁습니다. 총을 질질 끌다 제 발등을 쏠 위험이 있습니다. 권총은 가볍지만, 격발 시 반동이 강해 어른도 두 손으로 잡고 쏘도록 훈련합니다. 첩보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이 몸을 뒹굴면서 한 손에 잡은 권총으로 백발백중 적을 제압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합니다. 3살 아기가 10발을 모두 명중시켰다는 것은 북한 인민군 최고 명사수가 김정은의 고사리 손을 잡아주고 쏘지 않고서는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이 대목을 ‘3살 때 세발자전거를 타고서 고무 물총으로 과녁을 쏘아 10번 모두 과녁을 적셨다’ 라고 고치면 사람들은 수긍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달랐네!’ 할 겁니다. 선군정치를 펴는 지도자의 사격솜씨를 현실성 있게 주장하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지 않겠습니까?

이어 교재에는 ‘3살 때부터 자동차 운전을 시작했으며 8살 이전에 도로를 질주했다’고 쓰여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을 하려면 면허를 따야 합니다. 보통 18살이 돼야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집니다. 북한에도 이런 규정이 있을 테니 김정은은 무면허 운전이었군요. 아니면 어른이 운전대를 잡고 어린 김정은이 그 앞에 앉아 운전하는 시늉만 낸 게 아닌지요? 교재의 이 대목을 ‘3살 때부터 혼자서 어린이용 자동차를 운전했으며 8살 이전까지 동네 길에서 아무 사고 없이 타고 다녔다’ 라고 고친다면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린이 자동차라도 타박상이나 찰과상 등 안전사고가 비일비재한 점을 감안하면 김정은의 5년간 무사고 운전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기록이 아니겠습니까?

교재는 또 ‘6살 때 사나운 말을 마음대로 길들여 타고 기마수보다 더 잘 달렸다’고 자랑했습니다. 6살 때 말을 길들였다간 말발굽에 차여 뇌진탕에 걸릴 겁니다. 그리고 6살 어린이가 기마수보다 더 잘 달린다면 김정은이 말을 잘 탔다기보다 기마수가 갑자기 심장마비에 걸렸든지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 부분도 ‘6살 때 조랑말을 혼자 타도 울지 않고 고삐를 움켜잡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정도로 손질하면 김정은의 담력을 포장하는 데 손색이 없을 겁니다.

교재의 우상화는 계속됩니다. ‘악기를 전문가 이상으로 연주하는 절대 음감의 소유자’ ‘못하는 체육 종목이 없는 스포츠 천재’라며 김정은을 칭송합니다. 농구와 스키를 좋아한다는 점은 알려졌지만, 수십 가지의 스포츠 종목을 섭렵했다거나 여러 악기를 전문가보다 잘 다룬다는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이 대목도 ‘음악을 좋아해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알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국가 체육 향상을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라고 수정하면 시비 걸 일이 아닙니다.

지적인 영역에서도 김정은은 천재적이라고 돼 있습니다. 교재는 ‘10대에 정치 경제 철학 역사 수학 물리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고 적었습니다. 교재를 만들 때 지성의 상징인 대학교의 주요 학과를 나열한 것 같습니다. 중학생 나이에 인류 학문의 정수를 통달했다는 겁니다. 북한 주민 대다수는 대학을 가지 못하니 이런 학문이 뭔지 잘 모를 겁니다. 그러니 교재 내용을 ‘10대에 자연뿐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에도 큰 관심을 갖고 공부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라는 정도로 수정하면 좀 떨떠름해도 눈감아줄 수 있을 겁니다.

교재에서 더욱 가관인 것은 ‘고난의 행군 시절 주먹밥과 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인민들과 동고동락했다’는 부분입니다.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을 때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당시 학교 측에 따르면 김정은이 말이 없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하니, 혼자 방에서 고국의 주민을 생각하며 주먹밥과 죽으로 연명했을까요? 당시 김정은의 사진을 보면 볼살이 통통합니다. 주먹밥과 죽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기름진 모습이었습니다. 너무 멀리 나간 교재 내용을 ‘일주일에 한 번 주먹밥과 죽을 먹었다’고 고치면 제한된 동고동락이긴 하지만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지만, 그래도 김정은을 우상화하고 싶으면 허무맹랑한 교재 원본보다 주민에게 와 닿을 아래 수정본이 낫지 않을까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은 3살 때 세발자전거를 타고서 고무 물총으로 과녁을 쏘아 10번 모두 과녁을 적셨다. 3살 때부터 혼자서 어린이용 자동차를 운전했고 8살 이전까지 동네 길에서 아무 사고 없이 타고 다녔으며, 6살 때 조랑말을 혼자 타도 울지 않고 고삐를 움켜잡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음악을 좋아해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알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국가 체육 향상을 정책적으로 추진했으며, 10대에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에도 큰 관심을 갖고 공부에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 시절 일주일에 한 번 주먹밥과 죽을 먹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봉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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