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을 중심으로 미국과 한국 등 국제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북한의 정치와 경제, 사회를 엿보고 흐름과 의미를 살펴보는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 시작합니다.
- 북한에서 생활총화 시간에 작성하는 생활 수첩의 내용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여성 동맹원과 군인의 생활 수첩에 따르면 '도로 닦기에 불성실하게 임했다', '복무 중 민가에 내려가 술을 마셨다' 등의 내용으로 자아비판 하며 상대방의 잘못도 지적했는데요, 북한 당국이 이를 북한 지도자의 우상화를 위한 사상 교양과 주민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생활 수첩의 의미는 10대 원칙이 북한을 지배하는 통제 시스템에서 제일 중요한 확인 도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형식적인 관행이 돼버린 생활총화는 북한 당국이 원하는 것처럼 사상 교양과 주민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기에는 한계가 뚜렷해 보입니다.
이 시간에 다룰 <오늘의 초점>입니다.
- '아시아프레스', 생활총화 수첩 실물 입수
- '도로 닦기 불성실'․군인이 민가에서 음주' 자아비판
- 비사상적․비정치적 내용으로 형식적 기록
- 북한 주민에 사상교육․인민통제 강요하는 도구
-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인권침해의 증거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생활총화와 수첩 등을 통해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의 실천'과 '유일 독재세습의 확립'을 위한 통제를 강요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의 언론 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2014년 말 북한 내부의 취재협력자로부터 2명에 관한 생활총화 수첩을 중국을 통해 입수했는데요, 이 수첩은 김정은 정권이 어떻게 주민을 관리하고 통제해왔으며, 주민이 강요당하는 정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아시아프레스'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제공한 생활 수첩 사진을 보면 세로 16cm, 가로 12cm의 크기로 붉은색 표지에 노란색으로 '생활 수첩'이라 적혀 있습니다. 하단에는 소속과 이름을 적어 놓았는데요, '아시아프레스'가 입수한 수첩의 주인 중 한 명은 군인이자 노동당 당원이고, 다른 한 명은 여성동맹에 소속된 주부입니다.
특히 북한에서 생활총화는 모든 사람의 의무로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데, 소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업무와 생활을 반성하고 상호 비판하는 모임입니다. 북한 당국은 이같은 반성과 비판의 자리를 북한 지도자의 우상화를 위한 사상 교양과 주민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의 설명입니다.
[Ishimaru Jiro] (생활총화는) 일주일 동안 자신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자신이 속한 조직 안에서 누가 어떤 실수와 잘못을 했는지 비판하는 모임입니다. 이곳에 모든 사람이 생활 수첩이라는 노트에 반성해야 할 점을 적어서 회의에 참가해야 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생활 수첩의 의미는 북한의 10대 원칙, 즉 김일성․김정일 시절의 '당의 유일사상 확립에 의한 10대 원칙'과 김정은 시대에 개정된 '당의 유일적 영도체제의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 이 두 가지를 일상생활에서 철저히 관철하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도구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잘 따라가고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건데요, 10대 원칙이 북한을 지배하는 통제 시스템에서 제일 중요한 확인 도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입수한 생활 수첩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생활 수첩의 종이는 갱지인데요, 그 위에 검은색 볼펜으로 빼곡히 적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쉽게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대충 써내려 간 듯한데요,
여성 동맹원 '리' 씨의 생활 수첩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트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소개, 노트 제공자의 안전을 위해 특정 부분은 ○로 표시)
'주 동맹 생활총화. 9월 ○일 목요일'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 8조 4항에는 다음과 같이 지적되어있다.
<<김정일 애국주의를 소중히 간직하고 혁명과업수행에 투신하며 혁명실천과정을 통하여 혁명화를 다그쳐야 한다.>>
'나타난 결함'
도로 닦기에 불성실이 참가하였다. 작업구간이 먼 것만큼 빨리 떠나야 되겠으나 집일이 많다는 구실로 늦게 나가서 자기 앞에 맡겨진 구간을 제때에 끝내지 못하였다. 앞으로 이런 결함들이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겠다.
호상(상호)비판. ○○○ 동무 작업에 빠지는 현상. (조직의) 분공, 과업. 외화 과제 메주콩 3Kg
또 국경 경비대 군인이자 당원인 '김' 씨의 생활 수첩 내용도 살펴봤는데요,
'○월 2주당 생활총화 2014.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습니다.
<<당의 경비사업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여야 합니다.>>
결함: ○월 ○일 감시군무 중 자유주의하여 사회 집에서 술 먹는 현상
원인: P(혁명)의 전초선에선 군인이라는 자각 망각
대책: 국경경비 방침관철을 위한 사업에 앞장서겠음.
호상(상호)비판: 당원 ○○○동무 비판.
결함: ○월○일 군복 정돈하지 않고 취침.
원인: P(혁명)적 군기를 세울 데 대한 당의 방침 가슴에 새기고 군무 생활을 진행하지 못하였기 때문
대책: 철저한 군사 기풍을 세우고 군무 생활
이렇게 두 명이 쓴 생활 수첩의 형식은 서두에 김일성․김정일의 말씀을 적거나 '10대 원칙'의 한 구절을 인용한 뒤 그 내용에 따라 자신이 잘못하게 된 원인과 대책을 적었습니다. 이후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호비판이 이어지는데요, 이 형식은 노동당의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생활총화를 할 때 10대 원칙, 즉 지도자의 말씀을 인용해야 하고 미리 노트에 적으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인데요, 또 북한 당국이 생활총화를 반성과 비판의 자리로 만들고 집권자의 우상화를 위한 사상교양과 주민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Ishimaru Jiro] 실물을 입수해 내용을 봤는데, 내용 자체는 매우 형식적입니다. 한 군인은 "일반 사람들 집에 들어가 술을 먹었다", 아주머니는 "자기가 담당했던 도로 수리에 제시간에 나가지 못했다"라든지... 지배 사상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을 적었습니다. 주 생활 총화는 일주일에 한 번 있지 않습니까? 여기는 무조건 참가해야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기비판․ 상호비판은 '미리 생각해서 대충 하면 된다'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지도하는 당 간부들도 생활 총화 자체가 매우 고통스럽다는 것을 아니까 진심으로 자기가 반성하는 것이 아니고 '생활 총화 시간을 무사히 지내면 된다'는 형식주의가 만연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생활총화의 내용은 처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생활 수첩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 검사만 할 뿐, 제출 요구도 없는데요, 하지만 이시마루 대표는 "생활 수첩은 북한 주민이 일상생활에서 10대 원칙을 얼마나 철저히 관철하는지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도구"라며 "주로 비사상적, 비정치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Ishimaru Jiro] 탈북자와 북한 내부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여기에도 하나의 기술이 있다고 합니다. '지도자가 말하는 10대 원칙에 어긋나게 행동했다는 것'을 매주 하나씩 얘기해야 하는데, 여기서 정치․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문제가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비사상적, 비정치적인 문제만 제출하고 '이것을 생각해보면 지도자의 말씀, 지도자의 10대 원칙을 관철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 이것이 기술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북한 주민이면 누구나 다 암기해야 하는 것이 '10대 원칙'입니다. 또 북한 주민에게 언제, 어디서나 이를 따르고 관철해야 함이 요구되는데요, 특히 생활총화 시간에 10대 원칙을 언급하며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비판하는 모습은 일상생활에서 행해지는 심각한 인권침해의 증거란 지적도 있습니다.
또 이같은 모습을 외부 세계에 전혀 공개하지 않는 북한 당국으로서도 '10대 원칙'의 모순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요,
[Ishimaru Jiro] 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10대 원칙'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외부 세계에는 비공개입니다. 그러니까 북한 체제 스스로 '10대 원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독재의 강령이고, 유일 영도라는 것은 독재를 말하는 것이잖아요. 다시 말해 '현대사회에서 이런 것을 알면 안 좋고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10대 원칙을 잘 지키는지 관리하고 확인하는 생활총화는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고, 생활 수첩도 공개할 수 없죠. 인권 차원에서 보면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인권침해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북한에서 '자아비판'은 오랜 세월, 북한 주민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북한 주민은 10대 원칙에 근거해 자신과 상대방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이미 형식적이 관행이 돼버린 생활총화, 북한 당국이 원하는 것처럼 북한 지도자의 우상화를 위한 사상 교양과 주민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기에는 한계가 뚜렷해 보입니다.
노정민의 <라디오 세상>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