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여성들의 정치사상적 책임과 의무 강조”

서울-오중석, 이현웅 ohj@rfa.org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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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세계 여성의 날'(3·8 국제부녀절) 109주년 중앙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8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세계 여성의 날'(3·8 국제부녀절) 109주년 중앙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통일전략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오중석입니다.

오중석: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오중석: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네. 노동신문 3월 8일자 1면에 수록된 “조선여성들은 사랑과 헌신으로 사회주의조국을 받들어 가는 참된 애국자들이다” 라는 사설입니다. 이 사설은 북한 여성들이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고,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은 ‘탁월한 수령’(김일성)과 ‘위대한 장군’(김정일)을 높이 모셨기 때문이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리고 북한 여성들은 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수행을 위한 증산돌격운동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하며, 당의 영도아래 여성으로서의 주어진 사명과 본분을 다해나가야 한다고 선동했습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이 북한 여성들의 김정은 정권에 대한 ‘무한 충성과 헌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관련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실까요?

이현웅: 네. 북한 여성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덕분에 봉건질곡과 일제식민지하의 비참한 삶에서 해방되고, 반만년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됐다는 것입니다. 또한 북한 여성운동은 김정은을 높이 모심으로써 빛나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며, 수령보위, 당 정책관철의 선도자, 사회주의대가정의 참된 일꾼이 될 것을 요구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영원한 태양으로 우러러 모시고, 북한을 천하제일강국으로 만드는 투쟁에 모든 것을 다 바치라고 강요했습니다. 이어서 김정숙을 귀감으로 삼아 김정은을 목숨으로 결사 옹위하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경제발전 5개년 전략목표수행을 위한 증산돌격운동에 떨쳐나서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룩하며, 만리마 속도 창조운동의 불길을 지펴 올려 주체조선의 대 비약을 과시하는데 적극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중석: 북한매체들은 북한여성들이 “김일성에 의해” 남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은 1946년에 ‘북조선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제정하여 여성들이 국가와 사회, 가정에서 남성과 평등하다는 법령을 제정했습니다. 북한은 이 법으로 인해 여성들이 일제잔재와 봉건유습으로부터 해방되었으며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게 되었다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김일성이 이 법을 만든 진정한 이유는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여성들을 동원하는 데 있었습니다. 즉 ‘여성의 사회주의 근로자화’가 법제정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기존의 책임과 의무 위에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노동력 제공 의무를 하나 더 추가한 것입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 경제실패로 배급제가 무너진 이후 사회주의 ‘국가책임’이 ‘가족책임’으로 전가(轉嫁)되면서 여성들은 가족의 경제적 부양 책임까지 떠 맡게 됩니다. 북한의 ‘남녀평등’ 주장은 선전내용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은 정치사상적 차원에서 북한 여성들의 역할과 의무를 유난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까요?

이현웅: 이번 사설의 문제점은 ‘공산주의’가 현실세계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이미 판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실현을 전제로 부여했던 여성들의 역할과 책임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이 정권도 수립하기 전에 여성들의 노동력 동원을 위한 법령제정을 감행한 이유는 ‘공산주의 이상사회 실현’이라는 ‘불가능한’ 목표 때문이었습니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이상실현’을 선포했지만, 경제적으로 최빈국 수준에서 ‘필요에 따른 분배’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생산량 증대’가 급선무였습니다. 여성동원은 이처럼 ‘정치사상적 동기’에서 비롯됐습니다. 김정숙을 ‘귀감’으로 삼으라는 주장 역시 자녀들을 ‘공산주의 형 인간’으로 양육하고 ‘가정혁명화’의 책임을 다하라는 것으로, 지금의 북한 ‘가정경제 구조’에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이 여성들의 ‘정치사상적 역할과 의무’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과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북한경제는 2017년 국내총생산(GDP)에서 마이너스 3.5%를 기록한 데 이어 2018년 지난해에는 마이너스 5%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최초로 야심차게 내놓은 ‘경제발전 5개년 전략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높아진 것입니다. 이를 의식한 북한은 ‘경제발전 5개년 전략계획’ 수행 4년째인 올 해를 5개년 전략계획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의의’를 갖는 해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2차 미북정상회담의 결렬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지난 70여 년간 유지해온 ‘자력갱생’ 방식의 경제운용기조를 밀고 나가야 할 딱한 처지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곳은 ‘주민노력동원’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성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경제성장률을 저지해보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오중석: 이번 사설이 북한 주민들과,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현웅: 네. 북한의 여성들의 인권과 사회적 권리는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상태에 있습니다. 모두 다 아시는 바와 같이 북한 경제가 완전히 무너 진지 30여 년이 다돼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생계를 책임진 여성들은 초근목피로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험한 산과 들을 헤매기도 했으며, 집안의 온갖 물건을 장마당에 내다 팔아 끼니를 때웠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중국의 인력시장으로 밀려나간 것도 북한 여성이었습니다. 심지어 태국, 몽고, 라오스와 같은 수억 만리 생면부지의 이국 땅에서 불안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검거되어 북송(北送)된 여성들에 대해 북한 당국은 불법 인신구금과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유엔총회는 이런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인권보장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정치사상적’ 책임만 강조하고 있는 이번 사설은 여성들의 정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폭넓게 자아낼 것입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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