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거리, 3대 세습 구축 위한 희생물

서울-박성우·이현웅 parks@rfa.org
2017.04.26
tape_cutting-620.jpg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에서 테이프 커팅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노동신문 다시 보기’.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노동신문을 읽은 북한 전문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박성우입니다.

박성우: 이현웅 위원님 안녕하세요.

이현웅: 안녕하세요.

박성우: 오늘은 어떤 기사를 살펴볼까요?

이현웅: 오늘 살펴볼 기사는 노동신문 4월 18일자 4면에 실린 “노동당 시대에 넘쳐나는 복 받은 인민의 환희”라는 조선중앙통신 명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태양절을 이틀 앞둔 지난 4월 13일 준공식을 갖고 17일 입주를 시작한 평양 ‘여명거리 살림집’ 건설과 입주자들의 반응을 김정일이 1991년에 발표한 ‘건축예술론’의 입장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박성우: 건축예술론에 입각하여 기사가 작성되었다고 했는데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시죠?

이현웅: 북한의 건축예술론은 어떤 건축을 하더라도 그 건축은 ‘혁명적 수령관’으로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건축이란 수령의 위대성을 높이 칭송하기 위한 사상적∙정신적 담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건축 조차도 통치자의 우상화와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게 북한의 현실인 거죠.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맡기고 가신 사랑하는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만복을 안겨주시는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를 사회주의 가정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여”라는 구절은 ‘여명거리 건축’을 ‘혁명적 수령관’으로 연결한 대표적인 예라 할 것입니다.

둘째, “어머니당의 은혜로운 손길 아래 노동당 시대의 선경으로 웅장하게 일떠선 여명거리”라는 표현이나 입주자들이 “조선노동당 만세! 우리식 사회주의 만세! 소리를 외치었다” 등은 당적 지도와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강조해야한다는 원칙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셋째, “애민헌신의 자욱을 새겨가시는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에 대한 고마움에 솟구치는 격정” 또는 “절세위인들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만해도 쌓으면 하늘에 닿으련만”,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살림집을 안겨주신 위대한 어버이의 하늘 같은 은덕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등은 건축이 김정은의 업적과 위대성을 부각하기 위한 수단이며 김정은을 잘 모셔야 한다는 수령 결사옹위의 사상정신적 담보로 되어야한다는 ‘건축예술론’의 지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규모 건축 준공과 관련한 기사들이 참여한 근로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거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극복한 각종 노력과 희생을 높이 평가하며 건물의 용도와 목적 등을 널리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과 적나라하게 대비 되고 있습니다.

박성우: 북한 김정은은 2012년 5월 창전거리 살림집을 시작으로 2013년 9월 은하과학자거리, 2015년 11월 미래과학자거리에 이어 올해 4월 완공한 여명거리 살림집까지 대규모 고층 아파트 건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현웅: 김정은이 ‘기념비적인 살림집’ 건설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건축예술론’의 지침에서 밝히고 있듯이 김씨 일가의 봉건세습왕조를 정당화하고 이를 계속 이어가려는 데 있다 할 것입니다. 북한의 통치 엘리트들과 토대가 좋은 핵심계층 300만여명이 살고 있는 평양은 지역과 공간차원에서 김씨일가 세습독재 체제의 최후 보루입니다. 초고층 살림집 건설을 김정은의 업적과 위대성으로 포장하고, 입주자들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관련 교육기관 종사자들로 선별함으로써 이들로 하여금 김정은에 대한 끊임없는 충성을 이끌어 내어 김정은 결사옹위 정신을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정치사상강국과 군사강국을 이미 이룩했다고 자랑하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마지막 경제강국 건설의 과제는 김정은 정권의 최대 숙제일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마천루와 같은 초고층 살림집 짓기는 김정은이 경제강국을 이룩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창출함으로써 통치력을 강화하는 하나의 방편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대외적으로 최근 미국의 군사적 압박 수위 고조와 중국의 경제적 제재 강화 조치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굴하지 않고 핵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한 것으로도 분석됩니다. 특히 준공식에 외국기자들의 참석을 허용한 것은 핵무기 개발과 테러공포 통치로 인해 ‘깡패국가’로 낙인이 찍힌 이미지를 탈피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 받는 계기로 삼으려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성우: 초고층 살림집을 짓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많았다고 하죠. 과연 저 아파트들을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위원님은 어찌 보십니까?

이현웅: 북한은 이번 여명거리 살림집을 수령관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올해 태양절 이전 완공을 목표로 설정하고 근로자들의 노력을 쥐어 짜내기 위해 속도전 구호로 ‘만리마정신’을 강조해 왔습니다. 공사기간이 짧아 날림식으로 짓게 된 것이지요. 이러다 보니 70여층 높이의 건물이 외관상 우뚝 서있는 것은 맞지만 품질과 안전면에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초고층 아파트 시설을 정상 가동하기 위해서는 전기가 충분히 공급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전력생산이 원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2012년에 건설한 창전거리 살림집을 가동하기 위해 그 인근지역에 공급되고 있던 가스와 전기를 모두 끊어 주민들의 불만을 자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번 여명거리 살림집의 경우도 이러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할 것입니다.

오늘 살펴본 노동신문 기사는 북한의 건축이 입주민의 안정과 편의, 쾌적성과 효용성, 그리고 전체 인민의 복지성을 도외시 한 채 오직 3대 세습 구축을 위한 정치적 희생물이 되어버렸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북한 건축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우: 북측 당국은 태양절을 앞두고 뭔가 그럴듯한 업적이 필요했겠죠. 특히나 올해는 꺾어지는 해라서 더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외신기자들까지 불러놓고 준공식을 가졌을 텐데요. 일단 입주는 시작했다고 합니다만, 과연 전력공급을 포함해서 여명거리 살림집이 잘 유지될 것인지도 지켜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노동신문 다시 보기’, 지금까지 이현웅 안보통일연구회 수석연구위원과 함께했습니다. 오늘도 감사드리고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현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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