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달렸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3-31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사진은 강원 홍천군 대표 가을 축제인 '인삼·명품축제' 모습.
사진은 강원 홍천군 대표 가을 축제인 '인삼·명품축제' 모습.
사진-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2의 고향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오늘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텐데 하고요. 오늘은 함경북도 출신의 떡 요리전문가 원순복 씨의 이야기 전해드립니다.

-------------------------------------------------

원순복: 일하는 순간은 매 순간 희열을 느껴요. 에너지가 넘쳐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솟는다는 원순복 씨. 유튜브 동양상 올라 올라온 인삼요리 축제 홍보영상 잠시 들어보시죠.

원순복: 안녕하세요. 저는 인삼요리 연구가 플라워떡케이크 지도자 마스터 쉐프 원순복 입니다. 제가 인삼축제에 선보일 요리는 인삼 떡 케이크와 인삼 꽃주 입니다… 여러분 2018년 이천 인삼 요리축제에 많이들 놀러 오세요.

우리에게 친숙한 떡 그리고 요리 전문가란 말이 귀에 쏙 들어옵니다. 그리고 인삼 얘기도 나오는 데요. 너무도 바쁘게 살고 있는 원 씨가 탈북한 것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순복: 제가 고춧가루 장사 망해서 좀 밑천 마련하려고 중국에 갔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제가 정착한 데는 시골 쪽이라 모든 면에서 처음에는 중국에 있을 때보다 못했죠. 중국에서는 뭔가 풍요로웠잖아요. 중국에서는 열대과일도 있고 했는데 한국에선 내가 경제적으로 안되다 보니 사먹지 못 하고 풍요롭지는 못했는데 그때부터 열심히 산 것 같아요. 없으면 제힘으로 벌어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탈북해 중국에서 10년을 살아서인지 북한에서 남한으로 직행한 사람과 비교해 남한생활이 낯설다는 느낌조차 없었고 오히려 즐거움의 나날이었다고 말합니다. 인삼의 도시 충청남도에서 첫발을 내딛은 것은 그의 나이 35살때로 식당일로 시작합니다.

원순복: 그때도 제가 신문 보고 들어갔어요. 저는 그러니까 항상 혼자서 막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소개도 없이. 식당 다닐 때 그때도 한국 생활이 너무 재밌었어요. 왜 그런가 하면 써빙 잘해서  팁도 많이 받았어요. 고깃집에서 일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러니까 식당 생활이 힘들다 해도 너무 재밌고 그러니까 식당 생활이 힘들다 해도 너무 재밌고 하니까 식당을 2년 다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그리고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고 대학교 다니고 자격증을 따고요. 2010년부터 공부를 본격적으로 했어요.

보통 탈북자들이 남한에 가면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이나 학교를 다니다가 취업을 하는데요.  원 씨의 경우는 그 반대입니다. 식당에서 일하다가 회사에 입사를 한 거죠. 물론 그 뒤로 생활이  완전히 바뀐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원순복: 인삼공사인데요. 그전에는 한국생활 혼자 시작하다 보니 공부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거든요. 일하면서 정보를 얻어서 공부를 하게 됐거든요.

기자: 대학에서는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원순복: 사회복지요. 사회복지를 4년 하고 그 다음에 또 대학원 가고 지금도 회사 다니면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어요.

기자: 자격증도 많이 따셨다고 했는데 어떤 건가요?

원순복: 사회복지사 자격증, 상담사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 그리고 지금 제가 하는 떡에 대한 관련 자격증이요.

기자: 떡이라고 하셨나요?

원순복: 떡도 1급 자격증이 있거든요. 떡 전문 강사 자격증이요.

기자: 인삼공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는 겁니까?

원순복: 저희가 하는 일은 삼을 선별하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좋은 삼, 나쁜 삼 이런 식으로 정배, 절편 이런 식으로 삼 분류를 하고 있어요. 선별사죠.

기자: 그런데 떡 요리를 하는데 자격증이 필요합니까?

원순복: 그것은요. 그런 자격증이 있어야 교육도 하고 교육장도 운영을 하거든요. 제가 사회복지 공부를 하면서 우연하게 시작한 일이 지금도 공부하면서 하고 있네요. 지금 떡 디저트에 대한 논문 때문에 박사과정을 하고 있거든요

인삼제품 회사에 다니면서 떡 요리로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원 씨는 내년에 졸업할 예정입니다. 정말 쉬지 않고 숨차게 달려온 세월입니다.

원순복: 10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하니까 10년까지는 하루만이라도 쉬는 날에 낮잠을 자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요.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 대뇌에 인식이 돼서 저를 일어서질 못하게 만들잖아요. 그래서 항상 나는 성공한다. 힘들지 않다고 세뇌를 하니까 지금은 가는 시간이 아까워요. 그리고 이 시간에 못했는데 시간은 흘러가니까 시간이 아깝죠.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장사를 하다가 망해서 장사밑천 마련을 위해 탈북했다는 원순복 씨. 중국에서의 불안한 생활을 마치고 10년만에 찾은 남한생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짧은 하루가 야속하게 느껴집니다.

원순복: 시간 관리는 아침 7시에 출근하고요. 저녁 5시반에 퇴근하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야간 잔업이 없거든요. 대학교 다닐 때는 6시부터 대학교 저녁 공부하고요. 그리고 토요일에는 대학원 가고 일요일에는 떡에 대한 공부를 하고 그러니까 24시간이 부족하죠. 8시간 회사일이  끝나야 저의 시간이거든요.

워낙 시간에 쫓기듯 사는 터라 기자와 전화통화를 한 것도 점심 시간 짬을 내서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사는 순복 씨를 아는 지인들은 너무 여유 없이 빡빡하게 사는 모습을 안타깝게 보기까지 합니다. 모든 것이 중국이나 북한과 다른 남한생활에 힘든 시기도  있었을 듯 싶은데 순복 씨는 아니었습니다.

원순복: 힘든 순간이 지금 보면 어디가 고비였던지 잘 모르겠어요. 너무 바쁘게 지금까지 살았으니까요. 힘들다는 생각조차 못해봤어요. 회사에 2010년 입사해서 2013년부터 공부를 했거든요. 3년동안 회사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서 책도 사고 생활도 하면서 시간을 너무 쪼개 쓰면서 생활했거든요. 낮에는 출근하고 밤에는 학교 가고 새벽에 조금 자고 다음날 해야 하는 과제를 하고 해서 힘든 것 보다 내가 너무 어떤 때는 게으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좀 덜자고 빨리 성공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북한과 달리 자신이 노력만 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순복 씨. 하나를 이루면 또 그 다음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갑니다.

원순복: 북한이나 중국이나 남한이나 자기가 노력하면 다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남한은 자본주의니까 내가 노력한 것만큼 북한과 달리 내가 가질 수 있잖아요. 누구를 가르칠 수도 있고요. 제가 왜 지금 회사를 다니는가 하면 대학원 다니면 4대보험 가입과 재직 증명서가 필요하거든요. 그러니까 내년에 졸업이면 회사를 안 다녀도 되고요. 그리고 제 이름으로 된 교육장이 있어요. 그래서 교육장 운영하면서 탈북자로 구성된 팀으로 국내 대회 세계대회에 나간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국내에서는 북한팀으로 활동하면서 대회에 나가고 있어요. 메달도 따고 상장도 타고 있고요. 그리고 올해는 5월에 열리는 국제요리 경연대회에  제가 이끄는 팀이 이번에 선발됐고요.

제 2의 고향 오늘은 떡 요리 전문가 원순복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